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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사람들

감사했던 사람들에 대한 몽글몽글한 기억 소환


[1. 표지].jpg 인스타그램 연재글 @woodumi


고백건대, 살면서 좋아했던 사람들보다 싫어했던 사람들이 더 많은 나였지만, 그래도 살면서 감사했던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었다. 나를 대단한 위험에서 구출해주거나, 잊지 못할 우정을 나눠서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에 대한 고마움은, 그들이 기억하지도 못할 아주 사소한 말과 행동들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았더랬다. 너무나 복잡한 인간관계 속. 뾰족한 말들과 크고 작은 투닥거림 속에 지칠 때가 많지만, 그래도 내게 둥글고 따스한 말을 건넨 고마운 사람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한편이 따땃-하게 데워진다.




내 기억을 따뜻하게 물들인 사람들 (사진출처:핀터레스트)


영단어를 외우지 말라던 선생님 A

고등학교 때였다. 그분은 문학 과목을 맡으신 A선생님이셨는데 그의 첫인상은 참 무서웠었다. 혹시라도 혼나는 일이 없기 위해 긴장을 바짝 하던 새 학기, 수업을 이어가던 중 A선생님이 물으셨다.


“얘들아, 너희들 등하교할 때 버스에서 주로 뭐하니?”


입시만이 삶의 목표이던 우리 여고생들. 우리는 선생님을 만족시킬 대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자투리 시간도 아껴서 공부를 해야 했으니까 아마도... 영단어 외우기? 오답노트 보기? 여러 답들이 아이들로부터 터져 나오고 있는데, 아이들의 대답을 다 듣고 난 선생님이 이렇게 말하셨다.


“영단어도 좋고 다 좋은데, 얘들아. 버스에 있을 땐 그냥 창밖을 봐. 밖에 단풍이 지는지, 피는지, 무슨 꽃이 피는지, 하늘은 어떤지 그런 걸 보고 느끼는 것도 중요해. 난 너희들이 그런 시간을 좀 가졌으면 좋겠어”


그때 그 답변이 내 머리를 강타했던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껏 겪은 선생님들 중 그런 말을 하는 선생님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모의고사 성적을 1등부터 20등까지 잘라, 학생 이름을 등수로 부르는 선생님도 있던 시절이었다. 그런 무채색의 세상에서 그의 말이 물들인 마음속 단풍은 찬란했다. 아, <죽은 시인의 사회>의 ‘존 키팅’ 같은 선생님이 실제로도 있구나...,


원래도 버스를 타고 다닐 때 영단어 같은 건 외우지 않던 공부와 거리가 먼 나였지만, 감사하게도 그 이후 나는 내가 영단어를 외우는 대신 창밖을 보는 입시생이라는 것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는 언니의 아는 동생 B


이십 대 초반, 힘든 연애가 한 차례 끝난 후 나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제대로 된 우산도 없이 실연의 폭풍우가 그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그때. 알고 지내던 친한 언니는 실연당한 나를 나무랐다. 네가 그렇게 질척거리니까 나가떨어진 게 아니겠냐고. 남성들에게 인기가 많던 그녀의 눈에는, 고작 남자 때문에 우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바보 천치였던 것이다.


그러던 나를 위로한 건 뜻밖의 인물이었다. 친한 언니의 아는 동생이라던 B언니. 나하고는 서너 번밖에 보지 않은 사이였고, 그마저도 다 같이 어울린 단편의 기억뿐이었는데, 그 언니는 내가 힘들어한다는 소식을 듣더니 내게 이런 카톡을 보내왔다.


“듬지야, 언니도 맨날 실연당하고 힘들어하고 그랬었어. 지금은 무슨 말인지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그럴수록 내가 나를 더 사랑해줘야 해. 네가 얼마나 예쁜데. 언니는 남자 친구한테 차일 때마다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보고 나한테 이야기했어, 활짝 웃으면서. 나는 정말 예쁘다, 정말 정말 소중하다, 이렇게. 듬지도 한 번 아침에 일어날떄마다 거울을 보고 그렇게 이야기해봐. 듬지는 정말 예쁘고 소중하다는 걸 스스로에게 알려줘”

어떻게 몇 번 보지도 않은 동생에게 그렇게 자상한 말을 해줄 수 있는지, 그때 받았던 위로는 참 큼직하게 다가왔다. 나는 그녀의 말대로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고 웃으면서 되뇌어보았다. 나는 예쁘고 소중해. 나는 예쁘고 소중해. 별것 아닌 것 같은 이 주문은, 하루하루 켜켜이 쌓여 자존감의 밑동처럼 자라났다. 어떤 남자가 나를 떠나갔건, 내가 나를 소중히 여기면 실연이 아니라 이별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날이었다. B언니에게 참 오래 고마웠다.




다른 이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나와의 신의를 지키는 사람 C

직장을 다닐 때였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좋건 싫건 간에 한 무리의 사람들과 어울리게 된다. 그 직장에서도, 같은 직급의 사원들 대여섯 명이서 우르르 몰려다니며 지내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데 그중 동료 ‘뾰족이’가 유독 모나게 굴며 직원들과 싸움을 일으킬 때가 있었다. 뾰족이의 화살은 꽤 여러 명에게 번갈아 꽂히다가, 어느 날은 얼토당토않은 일로 나에게 꽂혔다. 그저 내 순서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선택해야 했다. 잘못한 일 없이 사과를 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무시할지. 그러나 나도 내심 그 사람의 각 진 인품을 비난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개무시를 선택했다. 그 이후 나는 뾰족이와 단 한마디도 섞지 않은 채 퇴사를 하게 되었는데.


시간이 오래고 흘러 그때의 직장동료들을 다시금 볼 때가 있었다. 그러나 뾰족이와 나의 관계 때문에 다른 이들이 찢어져서 만나는 수고를 해야 했고, 나는 그게 두고두고 동료들에게 미안했다. 그런데 뾰족이의 분노는 끝난 게 아니었을까. 퇴사를 하고도 뾰족이가 사람들에게 내 흉을 엄청나게 보고 다녔다는 사실을 우연히 듣게 됐다. 사실 나는 그 애의 흉을 볼 것도 없을 만큼 기억에서 지워버렸기에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는데..., 그러는 한편으로 궁금했다. 뾰족이가 그렇게나 싫어하는 나하고는 사람들이 왜 연을 끊지 않는지가. 하루는 너무 궁금해서 동료C에게 슬그머니 물어보았다.


“뾰족이가 제 있는 욕 없는 욕 다 하고 다니는 것 같던데, 왜 편들어주지 않고 저를 만나요? 그렇다고 제가 딱히 사람들이랑 잘 어울리는 편도 아닌데...,”


그러나 돌아온 동료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겠어요. 뾰족이가 듬지씨에 대해 무슨 욕을 한들, 그건 제가 겪은 게 아니잖아요. 전 저하고 듬지씨의 관계만 생각해요. 듬지씨가 저한테는 좋은 사람이니까 그걸로 됐죠”


내 미련방퉁한 질문에 오히려 쿨하게 대답하는 동료의 모습이 어찌나 멋지던지. 나와의 신의를, 다른 사람의 험담으로 더럽히지 않는 그녀에게 고마웠다. 더불어 생각했다. 흔들리지 않는 에이스 침대처럼 단단하면서도 온유한 그 태도를, 본받고 싶다고.





글쓰는 우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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