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모님 앞에서 술 취해 왈왈이가 된 SSUL.
나는 이른바 알쓰다.
나는 이른바 알쓰다. 알콜 쓰레기. 전적은 화려하다. 호기롭게 매화수 다섯 병을 마시고 기절하다시피 한 적도 있고, 회사 회식 때 어르신들이 따라주는 술을 넙죽넙죽 받아마시다가 신발을 택시에 벗어놓고 귀가한 적도 있다. 내 주량을 모르고 덤벼댔던 패기 넘치던 20대 때는 그래도 귀엽다는 소리라도 들었다. 그러나 서른 줄이 되고 나니, 자신의 주량을 모르고 ‘개’가 되어버리는 것은 이제 민폐.
수많은 경험을 통해 체득한 나의 적정 주량은, 알콜 5도짜리 맥주 500ml로 따졌을 때 두어 캔 정도다. 컨디션이 좋으면 세 캔까지도 즐겁게 마실 수 있지만 보통은 두 캔 정도 마셨을 때가, 나도 기분 좋고 남들 앞에서 흑역사도 남기지 않는 적정 주량이다. 내 주량을 인지한 뒤부터는, 여러 곤란한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되도록 맥주 두 캔 또는 와인 두 잔 정도의 주량을 잘 유지하며 지내는 중이다. (소주는 왜인지 구토를 유발해 입에도 대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나. 어떤 술자리는, 나의 통제능력을 상실케 하고 만다. 그 통제능력의 상실은 안타깝게도 이번 명절 시댁에서도 꽃피고 말았다. 시댁 식구와 모인 저녁상에서, 도련님의 친구가 가져온 안동소주를 마신 것이다. 푸근한 하회탈 모양의 그 술은 사악하게도 알콜 도수가 무려 45도란다. 나는 그걸 겁대가리도 없이 홀짝댔고 그 결과로... 어느 순간부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중에 들어보니 안동소주 이후 소맥과 와인을 더 마셔재꼈다고. 내가 미쳐.)
블랙아웃이 무서운 건 그 증상이 내 뇌 건강을 해쳐서가 아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때의 그 어마무시한 공포 때문이다. 하얘진 기억과 함께 ‘와 씨, 어제 사람들 앞에서 무슨 추태를 부린 거지?’ 하는 생각은, 장담하는데 영화 <곤지암>보다 훨씬 무섭다.
안동소주로 기억을 잃은 뒤 다음날 시댁에서 눈을 뜬 나는, 대체 어떻게 씻고 들어가 머리를 뉘었는지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아 오소소 소름이 돋고 말았다. 그리하여, 일어나자마자 눈을 비비거나 양치도 하기 전에 부엌에 계신 시어머니께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이이!!!! 죄송해요. 저 때문에 놀라셨죠”
늘 그렇듯 어머니는 상냥하게 “술 마시면 그럴 수도 있지이-” 하셨지만 나는 알았다, 전날 밤의 나는 분명 보나 마나 미친년이었으리란 걸. 얌전한 평소와는 달리 적정 수준 이상으로 취하면 목소리 톤이 급격히 높아지고 워딩이 세지고, 급기야는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하는 내 주사를.... 시부모님들이 분명 코앞에서 목격했으리라. 어쩌면 며느리의 당황스러운 모습에 아들을 내어준 걸 잠시나마 후회하셨는지도 모른다.
하아.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미 엎어진 물은 담을 수 없고, 나는 화끈거리는 얼굴로 시부모님과 명절을 보내야 했다. 다시는 그따위로 무식하게 술을 삼키지 않겠다고 백만 번째 다짐하며.
인생이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면, 어쩌면 ‘나를 안다는 것’에는 나의 주량도 포함될는지 모른다. 내가 어떤 음악을 좋아하고, 어떤 영화를 싫어하는지 나이가 들며 분명해지는 것처럼, 술에 대한 내 면역과 기호를 알아가는 것도 하나의 자기 탐색이 아닐는지.
아닌 게 아니라, 내 나이쯤 되면 거의 모든 이들에게는 경험으로 터득한 주량이 있기 마련이다. 어떤 친구는 소주 맥주는 다 괜찮은데 양주만 마시면 개망나니가 되어버려서 양주는 입에도 안 댄다던 친구가 있었고, 어떤 친구는 맥주를 마시면 배가 아프다던지 막걸리를 마시면 머리가 아프다던지 각자 몸과 맞지 않는 주종들이 있기도 하다. 소주를 두 병만 마시면 괜찮은데 세병을 마시면 기억을 잃는 사람도 있고, 들어가는 양에 따라 괴팍해지거나 울적해지거나 특정 주사가 튀어나오는 사람도 있다.
같은 의미로, 자신에게 맞는 주종과 주량을 넘어선 알콜 섭취가 이루어지는 날엔 여러 비극들이 탄생하기도 한다. 회사에 지각하고, 술자리 공식 민폐로 등극되는가 하면, 헤어진 연인에게 부재중 전화 33통을 남기거나, 돌이킬 수 없는 말실수로 사람을 잃기도 한다. 물론 이 모든 과정들은, 음악이나 책 영화처럼 접해보고 반복해봐야만 나랑 뭐가 맞는 건지 알 수 있다는 점. 그래서 다들 파란만장한 흑역사를 기록한 끝에야, 내가 무슨 술을 얼만큼만 마셔야 개가 되지 않고 온전한 사람으로 술자리를 끝낼 수 있는지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니 나는 주창하는 바다.
그러니 나는 주창하는 바다. 어른과 마실 땐 고개를 반대방향으로 해서 마셔야 한다던지, 두 손으로 공손히 따라야 한다던지 하는 많은 술 예절과 함께 자신의 주량과 기호를 아는 것도 퍽 중요하다는 것을!
이를테면
소주 세 병 이상 금지 : 회사 대형지각 경력 있음.
막걸리 한 잔 이상 금지 : 머리가 띵해서 하루종일 타이레놀 먹었음.
양주 금지 : 기억을 잃거나 사람을 잃음. 또는 둘 다 잃음.
과 같은 것들. 나의 주량과 기호를 탐색하고 학습하여 술에 대한 이런 적절한 기준을 마음속에 딱 세워둔다면, 모름지기 조금 더 안전하고 윤택한 술자리를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가이드라인은 어디까지나 가이드라인일 뿐, 매번 꼼꼼히 지켜지기야 힘들다. 우리는 사람이고, 상황은 언제나 유동적으로 흐르기 마련이니까. 막걸리를 마시면 머리가 아픈 걸 알지만 가끔 산 밑에서 부침개를 먹을 때면 어쩔 수 없이 막걸 리가 당기는 때가 있고, 좋은 사람들과 모처럼 술자리가 흥겹게 무르익을 때면 내 주량을 초과해서 질주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크리스마스나 연말 같은 특수기간에도 엄격한 절제는 어렵다.
그럴 땐,
가끔 개 말고 티컵 강아지 정돈 되어도 괜찮을 것 같다.
뭐 소소한 술자리 해프닝쯤이야 너그럽게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다만, 때와 장소에 따라 절제와 질주를 지혜롭게 조절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은, 보다 오래오래 술과 친하게 지내는 방법이란 걸 항상 유념할 것. 고삐가 풀어지면 안 되는 순간에조차 풀어지면, 그땐 그냥 술버릇이 나쁜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살면서 술에 관한 여러 웃픈 일화들이 있었지만, 명절날 시부모님 앞에서 안동소주를 먹고 기억을 잃은 일은 정말이지 몇 안 되는 삭제하고 싶은 추억이 되었다. 더불어 그날을 기점으로 술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하나 더 정립하게 됐다. 알콜 쓰레기 우듬지, 앞으로 30도 이상의 술은 딱 한잔만 마시기! 사람은 영원한 경험과 깨달음으로 굴러가는 동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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