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마다 10년 주기로 반복되는 인간관계의 오류
나이의 끝자리가 9가 되면 주변에서 듣는 말이 있다.
“너 이번에 아홉이니? 아홉수 조심해”
나도 스물아홉이 되니 주변에서 그런 말들을 했다. 다들 스물아홉 서른아홉 때 무시무시한 일들을 겪었다는 거였다. 그건 사고일 수도 있고 인간관계로 인한 마음고생일 수도 있었다. 나로 말하자면, 타로 점과 명리학 사주, 별자리 운세까지 지구 상에 존재하는 운세란 운세들은 깨알같이 참 좋아하는 인간이었지만 이상하게 ‘아홉수’라는 건 왠지 믿음이 안 갔다. 너무 광범위하지 않은가. 이 세상 모든 아홉들이 아홉수를 겪는다고? 이런 무성의한 점괘를 봤나.
그러나 스물아홉 여름부터 겨울까지.
아홉수를 비웃던 나를 응징이라도 하듯,
두 명의 큼직한 악연이 다녀갔다.
정말 아홉수라는 게 있는 걸까?
한 명은 오랜 세월 알고 지내던 지인이었고, 한 명은 나의 친척이었다. 그들은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나를 괴롭힐 수 있는 사람들이기에 그들을 추론할만한 소상한 인적사항은 감히 적을 수도 없다. 그냥, 한 때는 나와 각별했었음을 밝힐 수 있을 뿐이다. 그러던 그 둘과는 각자의 계기로 사이가 소원해졌다. 세상 모든 관계들이 얼마든지 소멸의 시기를 걸을 수 있듯, 그들도 그렇게 그냥 내 삶에서 지워지는 사람들인 줄로 알았다. 그런데 내가 스물아홉이 되던 해, 약속이라도 한 듯 그들은 같은 시기에 동시다발적으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두 사람에게는 놀랄 만큼 비슷한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상식적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의 공격성. 그리고 자신의 불행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태도. 마지막은 나에 대한 병적인 집착이었다.
나는 헤어진 이성이 아니라 동성 간에도 끈질긴 스토킹이 가능하단 걸 그때 깨달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핸드폰으로 욕이 가득한 메시지가 와있었다. 내가 전화를 피하기 때문이었다. 욕은 가지각색 다양한 버전으로 내 핸드폰을 가득 채웠지만, 근본적인 골조는 같았다. ‘나는 이렇게 불행하고 힘든데 왜 너는 행복하냐? 너도 똑같이 망해야 돼.’ 그들 스스로는 그 메시지에 논리가 있다고 믿는 듯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불행과 나의 행복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었다.
그리고 미안하게도 그 시절 나는 그다지 행복하지도 않았다. 누구나 적당한 불행과 행복을 반복해서 겪으며 살아갈 뿐이다. 더 나아가, 불행을 감추고 행복을 진열할 뿐이다. 마음속의 먹구름을 펼쳐 보여주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다. 그래서 나도 자랑하고 싶고 기억하고 싶은 것들만을 진열하며 살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SNS나 카카오톡 프로필 같은 매우 단편적으로 편집된 나의 일상만을 보고 나를 행복하다 여긴 모양이었다. 공격의 이유는 참으로 다양했다. 난 남자 친구도 없는데 넌 결혼하네, 난 직장도 없는데 넌 회사 다니네, 난 여행 한 번도 못 가봤는데 넌 해외여행 가서 사진도 찍었네 등등. 두 사람은 하루 종일 나의 일거수일투족만 들여다보고 있는 건지, 내가 조금이라도 자신들 눈에 행복해 보이면 공격을 서슴지 않았다. 세상엔 나보다 행복하고 화려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차고 넘치는데... 고작 행복의 기준이 별 것도 아닌 ‘나’라니, 오히려 난 그게 안타까웠다.
그런데 정말 아홉수라는 게 있는 걸까?
하필 왜 같은 해에 그것도 두 사람이나 나를 이렇게 못 죽여서 안달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덕분에 나는 모르는 전화번호로 두 번 이상 전화가 오면 벌벌 떠는 병을 얻었다. 연락처부터 SNS 계정까지 나는 그들을 모조리 차단했고, 절대 나의 집주소나 사적인 공간을 알지 못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심지어는 축복받아 마땅한 결혼식, 행여라도 그들이 찾아와 깽판을 칠까 봐 예식장소도 카톡에 적어놓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을 피해 다니는 수고로움보다 이 관계들이 정말로 힘들었던 건, 그들과 내가 생판 모르는 생면부지의 관계들이 아닌, 한때는 서로 격의 없이 알고 지내던 관계들이라는 점이었다. 나를 무지막지하게 괴롭히는 그들이 너무나도 소름 끼치는 동시에, 마음 한편으로는 함께한 좋은 시간들이 떠올라서 괴로웠다. 그 시간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왜 무엇이 그들을 변하게 한 걸까, 다시는 회복되지 못할 이 관계를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느라 나의 스물아홉은 애가 끓었고 피가 말랐다.
내 노력과 상관없이 때때로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관계들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멈추지 않을 것처럼 융단 폭격을 퍼붓던 그들도 시간이 지나니 잠잠해졌다. 처음엔 나도 반박하고 똑같이 쏘아붙이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그들의 분노에 불만 더 지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이상 응해주지 않았더니 재미가 없었던 걸까, 자연스레 사그라들었다.
도대체 왜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지금은 그들의 분노가 걷힌 건지, 잠시 어떻게 됐던 정신이 이제는 건강하게 돌아온 건지, 궁금하고 또 궁금했지만 나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다시 되찾은 나의 평화가 너무나도 달콤했기 때문에.
회사도, 인간관계도, 나는 언제나 유종의 미를 거두기를 꿈꾸는 사람이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터라 ‘좋은 이미지’에 대한 미련이 큰 탓이었다. 헤어지더라도 좋게, 끝낼 때 끝내더라도 가식적으로라도 평화롭게 마무리 짓고 싶었다. 하지만 내 노력과 상관없이 때때로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관계들이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그 두 사람이 그런 유형이었다. 나 혼자 젠틀해서는 될 리가 없는. 나는 결국 그 두 사람과의 관계 회복을 포기하고 내 삶에서 추방시켰다. 영원히 다시 내 삶에 접근하지 않기만을 바라고 또 바라면서.
나는 이제 스물아홉을 지나 숫자 9가 되돌아오려면 제법 시간이 남은, 삼십 대 초반의 나이다. 여전히 아홉수라는 무성의한 속설을 믿지는 않지만, 여러 관계 정리가 이루어진 지금이 되어보니 보이는 게 하나 있다. 스물아홉이라서가 아니라, 20대에서 30대로 앞자리가 바뀌는 그 시기 즈음이, 바로 인간관계가 한번 개편되는 시즌이라는 거다.
혈기왕성하게 모두와 소통하고 싶었던 20대의 내 삶은, 그야말로 정리되지 않는 인간관계 투성이었다. 나에게 해악을 끼칠 사람인지 아닌지 알아채는 눈썰미 같은 건 당연히 없었더랬다. 그러다 20대를 넘어 30대가 되는 그 아홉수의 시점, 장래를 결정하고 결혼을 약속하면서 신상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따라서 여러 관계 변화도 함께 일어난 것일 뿐이다. 정리해야 할 사람과 곁에 두어야 할 사람, 내게 해악을 끼칠 사람과 나를 끝까지 존중해줄 사람. 어쩌면 십 년을 주기로 신변이나 관계의 그런 정리 시기가 돌아오는 거라면, 그런 의미에서는 어쩌면 아홉수도 꽤 설득력 있는 주장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누구나의 인생에는 빌런이 다녀갈 터
이십 대 후반을 지나는 주변 이들이 가끔씩 인간관계에 데여, 나에게 물어온다. “언니는 어떻게 이겨냈어요?”, “그런 사람 어떻게 피해 가요?” 내가 두 사람에게 호되게 데인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걸 어떻게 설명하랴. 세상엔 그냥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이해할 수 없는 관계들이 주기적으로 반복될 뿐이라고 말해줄 수 있을 뿐이다. 분화시기를 알 수 없는 화산과도 같다. 그러니 피해 가거나 이겨내는 법 같은 건 없으며, 그저 그 일을 감당하면서 앞으로 사람 보는 눈을 키우는 것만이 답일 지도.
요즘은 이런 생각도 한다. 아무런 악연도 겪지 않고 평생을 사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그게 20대건 30대건 아니면 파파 할머니가 된 70대건 간에, 마치 총량 보존의 법칙처럼 누구나의 인생에는 빌런이 다녀갈 터. 그러니 비교적 젊은 나이에 호되게 당하고 판별의 눈을 키웠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조금 위안이 된다. 물론 다음 아홉수 때 또 다른 빌런이 찾아올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뭐랄까, 다져진 깡이란 게 있으니 웬만한 폭격에는 치명상을 입지 않을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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