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엄한 척이라도 해주세요

제가 다 민망하니까요

정사각.jpg


친구 중 한 명이 어느 기관에서 일을 하던 중 사람들에게 휴대폰 속의 사진앨범을 실물 앨범으로 만들어주는 이벤트를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한 할아버지가 손녀의 사진을 인화하고 싶다며 내 친구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간신히 지팡이를 짚고 다닐 정도의, 그러니까 거동이 그리 편치 않은 많이 나이 든 할아버지였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손녀딸의 사진을 앨범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고, 그런 할아버지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의 사진을 옮기기 위해 핸드폰을 여는 순간. 그곳에는, 지극히 내적인 음란물들이 들어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순수할 손녀와, 가슴을 훤히 드러내놓고 포즈를 취하는 여자들의 예상치 못한 혼재.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그것을 하고 싶어 하는 게 남자라지만, 가끔 존경하고 싶고 인자함의 결정체라고 생각했던 할아버지들이, 손녀뻘의 어린 여자의 사진을 보고 음탕한 생각을 하는 '남자'라고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지고 만다. 그들이 이제 그런 본능과는 졸업해, 인생을 깊이 있게 마무리하는 위대한 어른들이라고 믿고 싶은데 말이다.


입을 헤-벌리고 지하철 맞은편 좌석 여대생의 맨 다리를 훑는 할아버지, 아무도 안 보는 줄 알고 노상방뇨를 한 후 축 늘어진 물건을 탈탈탈 터는 할아버지, 순수한 손녀딸의 사진은 인화하고 싶지만 그 앞뒤로 왕가슴 언니의 사진을 저장해놓은 할아버지 등. 이것이 진정 내가 인정해야 하는 할아버지의 실체인 걸까.


그러고 보면 성적 욕망이란 게 사람을 참 우습게 만들어버리는 것 같다. 물론 성적 욕망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이다. 그러나, 그러나! 어찌하여 인간의 몸은 죽을 날을 바라보는 그 단계에서도 성욕이 존재하도록 만들어졌단 말인가. 성욕 같은 말초적 감각과는 진작에 결별한 채 세상 만물의 이치를 통달하고 후손에게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를 기대하는 건 인류본능을 거스르는 일일까.


세상에 근엄한 할아버지가 없다는 건 잘 깨달았다. 인자하고 위대한 노인들에게도 불타는 음란본능이 있다는 걸 알겠다. 하지만 살면서 '어르신'의 사적인 욕망 따위는 웬만하면 내 눈으로 보고싶지 않다. 어려운 부탁이 아니라면 그저, 근엄한 척이라도 해주시길.






2017 일상의짧은글
copyrightⓒ글쓰는우두미


(클릭 시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BLOG. blog.naver.com/deumji
INSTAGRAM ID. @woodumi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