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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Mar 29. 2023

여자들의 당당한 흡연에 대하여
<흡연 여성 잔혹사>

한국 여자들이 유독 담배 숨어서 피는 이유?!


인스타그램 @woodumi



담배 피우는 여성들을 위하여    


나는 담배를 피워본 적이 있다. 여성으로서 고작 담배를 ‘피워봤다’고 고백하는 것만으로도 어떤 눈총을 받을지 잘 알고 있다. ‘엄마가 될 몸으로 여자가 무슨 담배?’라고 배웠을 기성세대는 나를 불량한 요즘 여자애로 볼 수도 있겠고, 그나마 성평등에 익숙한 세대에서는 조금 떨떠름하게 ‘그래 뭐 피워볼 수도 있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 어느 때보다 성인지감수성이 발달한 성평등 시대인 지금 이 순간도, 여전히 한국 사회는 ‘여자가 담배를 피우는 것’에 100% 관대하지는 않다는 것을 말한다. 이 책 <흡연 여성 잔혹사>는 그런 흡연 여성에 관한 위로이자 헌사이자, 당당하게 피우자는 너무도 눈물겨운 선언문이다.          



사진 @woodumi



27년간 애연가였던 여성이 전하는 이야기     


이 책의 글쓴이 ‘서명숙’ 작가는 당연하겠지만 흡연여성이다. 작가에 따르면 한국 사회가 인정하는 흡연 여성은 화류계 여성이거나, 파파 할머니이거나,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연 있는’ 여자라고 한다. 그러니 두 아이를 길러낸 엄마이자 <시사저널>과 <오마이뉴스>의 편집장을 역임하며 성공한 삶을 살아낸 그녀가 겪었을 눈총은 얼마나 컸을까. 작가는 대학생 시절 노동운동을 하면서 처음 담배를 접했다고 했다. 같이 데모를 하던 언니로부터 우연히 배운 담배는 이후 작가에게 무려 27년이나 뗄 수 없는 달콤한 연인이 되었다고. 그렇게 담배는 그녀에게 가장 힘든 순간 속 한 모금 위로가 돼주었고, 일의 능률을 높여주는 각성제가 돼주었다.           



사진출처:핀터레스트


 여성 흡연은 왜 때문에 불편한가요?     


이 책은 단지 작가가 왜 담배를 시작하게 되었고 담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그녀가 여성으로서 담배를 피우며 받았던 다양한 사회적 시선과 그로 인한 울분을 통해, ‘왜 여성은 숨어서 담배를 피우게 되었는가’에 대한 커다란 담론으로 뻗어 나간다. 읽으며 나 또한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고작 기호품에 지나지 않는 담배에 왜 그리도 많은 이데올로기가 붙게 되었을까. 왜 여자가 담배를 들고 있으면 불편한 느낌부터 드는 걸까.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었으나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거기에는 실로 무수한 정치사회적 요소들이 존재함을.  

       

 


사진출처:핀터레스트


여자들이 숨어서 피워야 하는 건 나라 탓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프랑스로 여행을 떠났을 때, 핸드백에서 담배를 꺼내 마치 박하사탕을 먹듯 담배를 피워대던 그 나라의 여자들을. 그곳의 여성들은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어디에서나 ‘당당하게’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그 모습은 여성 흡연이 자연스러운 문화 때문인지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도 패셔너블하게 보였다. 책에 따르면 “권위주의 체제일수록, 전쟁을 수행하는 사회일수록, 가부장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여성 흡연을 금기시한다는 분석이 있다”고 하니, 권위주의와 전쟁 그리고 가부장 문화로부터 일찍이 해방된 그 나라 프랑스에서는 흡연 여성에 대한 인식도 그만큼 관대했는지 모르겠다. 아직도 휴전상태이며 500년 유교사상이 뿌리 깊게 내려있는 대한민국 땅은? 말해 뭐 하겠는가. 탑골공원에서 여자의 몸으로 담배를 태웠다간 지팡이로 맞을지도 모른다.          


아빠가 알면 죽음, 남친이 알면 절교. 바로 이것이 담배 피우는 여자는 많은데 정작 당신 주변에는 흡연 여성이 없는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키워드다. p.162




사진출처:핀터레스트


조선시대에는 남녀가 평등하게 담배를 피웠다     


그런데 담배가 맨 처음 도입되었던 조선시대에는 오히려 남녀가 ‘평등하게’ 담배를 피웠었다고 하니 사뭇 놀랍다. 그때야말로 오히려 남녀가 유별한 유교사회였는데도, 담배에 있어서는 마땅한 차별이 없었다고 한다. 야사에 따르면 국모인 명성황후는 궐련을 즐겨 피웠으며, 황후 곁에는 담뱃불을 붙여주는 시종도 있었다고. 애초에는 터부시되지 않았던 여성의 흡연이 시간이 지나며 다양한 이데올로기를 입으면서 점차 ‘못마땅한 것에서 해서는 아니 될 것’으로 발전한 셈이다. 개화기에는 서구문화가 들어오면서 신여성들이 ‘근대 여성의 심벌’로서 담배를 피웠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국가적 차원의 대대적 금연운동이 벌어졌고 다시 무산. 전 세계적으로 페미니즘 열풍이 불던 1970-80년대에 또 한 번 여성들이 ‘담배가 남성들의 전유물이 아님’을 설파했으나 그 또한 전반적인 인식개선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인식을 개선코자 하는 다양한 물결이 있었음에 눈물겨웠고, 그럼에도 바뀌지 못한 현실은 다소 씁쓸했다.               




사진출처:핀터레스트


의미 다 떼고 나면 그냥 기호품일 뿐인 걸요     


내 밑의 Z세대들은 더 당당해졌을지 모르지만, 내 나이 30대만 되어도 움츠리는 여자들이 많다. 사적인 공간이라면 몰라도, 위계가 딱 잡힌 직장의 흡연실에서는 좀처럼 당당하게 담배를 피우는 여성을 목격하기 힘드니까.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저 담배일 뿐이 아닌가. 아이들 유치원을 보내고 힘든 육아를 달래기 위한 한 모금, 스트레스받는 직장생활을 위로할 한 모금. 거기에 불필요하게 덕지덕지 달라붙은 이데올로기를 제거하고 보면, 담배는 고작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성인의 군것질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관념의 세습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아직까지도 내가 아는 수많은 여성들이, 남편이나 시댁이 알까 봐, 불량한 여자로 보일까 봐 ‘몰래’ 담배를 피우고 있다. 여성이 당당하게 흡연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해 앞으로 남은 세대는 무엇을 해야 할까. 흡연 여성 잔혹사는 그렇게 우리 앞에 커다란 숙제를 남긴다.     


당당한 흡연은 조건의 문제가 아니다. 자기에 대한, 자기 선택에 대한 주저 없는 긍정이다. 
p.85


      


사진출처:핀터레스트


건강이 나빠지든 어쩌든 그것마저 자유이자 권리     


물론 담배는 건강에 백해무익하다. 하지만 내 몸이 얼마나 상하건, 여성에게도 주체적으로 그것을 선택할 자유와 권리는 충분히 있다고 믿는다. 아이를 낳을 몸이라서, 어른들이 알면 보기 그러니까, 아무래도 불량해 보이니까,라는 다양한 이유로 여성들이 속박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23살, 25살, 27살. 남자친구와 헤어져 힘들었을 때, 취업이 안되어 몹시도 불안했을 때, 그때마다 내가 찾았던 말보로 아이스 블라스트 1mg의 그 달콤함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것은 누가 뭐래도 분명한 위로였고, 부끄러울 것 없는 당당한 내 선택이었다. 작가가 독자에게 말하듯, 이 책을 읽은 나도 전국의 흡연 여성들에게 말하고 싶다. 흡연은 절대로 당신들의 수치나 잘못이 아니라고. 




* 완독챌린지 독파(dokpa)로부터 앰베서더 자격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고민 많고 마음 여린 어른이들을 위해 따수운 글을 전합니다.



■ BOOK

연애 결혼 힐링 에세이 『사연 없음

현실 직장 생활 에세이 『어쩌다 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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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문의 deumj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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