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 점의 세밀화와 따스한 말투로 안내해주는 자연
점점 자연을 잊어가는 우리들에게
아스팔트로 뒤덮인 도심에서만 30여 년을 살아온 현대인으로서 나는 자연에 아주 무지한 편이다. 하지만 가끔 인위적으로 조성된 호수공원에 날아와 헤엄을 치고 있는 오리 가족을 보면 그 모습이 신기하면서 애잔할 때가 있다. 같은 맥락으로 비가 내리는 날 촉촉하게 샤워해 보겠다고 신이 나 길 위로 올라와있는 지렁이를 보면 귀엽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이 도심에 지렁이가 있다는 건 지구가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는 증거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면서.
하지만 늘 그뿐이다. 나는 살기 바쁘고 도심에서 내 눈으로 볼 수 있는 동식물은 극히 일부기에, 이 지구에 살아가는 수많은 동식물의 이름을 여전히 알지 못한다. 부끄럽지만 진달래와 철쭉을 구분하기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도심에서 그나마 볼 수 있는 흔한 가로수와 인위적으로 심어놓은 꽃들, 언제나 우리 곁에 존재하는 비둘기와 참새 까치 등등에 대해서만 알뿐, 어쩌면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그렇게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사계절 기억책』은 그렇게 우리의 기억 속에서 점점 더 잊혀가는 다양한 동식물들을 다정하게 기록한 책이자 환경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책이다. 언뜻 보면 평범한 자연도감 같은 이 책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겨울부터 계절별로 세션을 나누어 기록했다는 점이고, 둘째는 보기만 해도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어여쁜 삽화가 함께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나처럼 동식물에 문외한이며, 단순히 활자만으로는 그것들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을 독자들을 위해 아주 섬세하게 예쁜 세밀화로 설명해 주는 책인 셈이다.
아름다운 계절들의 기록,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몰랐던 기록
책과 함께 계절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방구석 1열로 생태계 여행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계절이라고 생각했던 겨울도 저자의 시선에서는 ‘입춘을 품은’ 준비의 계절이며, 새를 위해 전깃줄을 없앤 순천시에 흑두루미가 찾아오는 계절이다. 반면 만물이 태동하고 아름답기만 한 계절이라고 생각했던 봄은, 먼 나라에서 겨울을 지내고 우리나라로 돌아오는 길에 바다를 건너다 제비들이 목숨을 잃는 계절이기도 하다. 서식지에 들어선 도로로 인해 개구리들이 로드킬 당하는 계절 역시 봄이다. 모든 식물들이 시원하게 물을 마시는 장마철의 여름은 둥지를 떠나는 어린 새들이 어른 새가 되어보기도 전에 죽는 계절이기도 하며, 곡식이 여무는 계절 가을은 기후위기로 인해 이상고온이 발생하며 곤충들의 개체수가 조절되지 않아 나무들이 몸살을 앓는 원흉이 되어가는 중이다. 곶감 만들기에 제격이던 우리나라는 이제 점점 곶감 만들기에 부적합한 기후가 되고 있다고.
이 책은 단순히 자연을 아름답고 어여뻐하는 마음만을 담고 있지는 않다. 이 점이 바로 자연도감과는 다른 부분인데, 지구를 터전 삼아 살아가는 존재로서 어떻게 하면 무참히 파괴되고 있는 이 기후와 자연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저자의 고민이 여실히 엿보인다. 그래서 마냥 밝고 즐겁기보단 마음이 무겁고 쓰라린 책에 가까운데, 그래서 좋았다. 단순히 동식물을 알게 되는 것 이상으로 한층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책이었다.
더불어 단 한 톨도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며 살아가는 동식물들에게서 지혜를 얻을 수도 있었는데, 그런 문장들을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유기물을 먹으며 분변토를 배설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지렁이 앞에서는, 오로지 배설할 줄만 아는 인간으로서의 스스로가 부끄러웠고, 날갯짓을 하기 위해 제 몸의 모든 것을 최소화하고 비우는 새들을 통해서는 비움의 미학에 대해 깨닫게 됐다. 도심의 비좁은 우리에 갇혀있다가 방사되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인간의 이기심이 미안했고, 콘크리트 사이에도 내려앉아 꽃을 피우는 민들레나 여러 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인간과는 비견할 수 없는 놀라운 생명력에 감탄하기도 했다.
날 수 있도록 새는 몸을 변화시키며 진화했다. 몸무게를 줄이려 이빨을 포기했고 뼈를 비웠으며 때로 먼 길을 이동할 때면 몸속 장기마저 최소화한다. 비우고 덜어내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게 있다는 걸 새를 보며 배운다.
p.197
아는 것부터가 출발인 이유
자연에 대해서, 생태에 대해서는 평생 죄책감을 내려놓지 못할 것이다. 지금 당장 지구를 살리기 위해 두 팔을 걷어붙이고 앞으로 나갈 수는 없겠지만,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우리가 지구를 보호할 수 있는 길의 첫 스텝은 바로 ‘아는 것’이라고. 자연이 얼마나 균형적인지, 얼마나 다채롭고 눈부신지, 그들과 우리가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아는 것만으로도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이다. 우리를 파괴자라며 비난하는 대신 균형 잡힌 말투로 우리가 자연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소상히 전해주는 저자의 말에 제대로 설득당했다. 그리고 이 따스한 설득은 분명 독자들의 마음에 오래 머물 것 같다.
해충과 익충을 가르는 경계가 인간에게 도움을 주느냐 마느냐로 갈린 셈이다. 그렇지만 지구 생태계 전체로 보면 그렇게 나눌 어떤 근거도 없다. 다만 생태계 균형이 깨졌을 때 해충이 되는데 그 균형을 깨는 주체는 오직 인간뿐이다.
p.174
고민 많고 마음 여린 어른이들을 위해 따수운 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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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결혼 힐링 에세이 『사연 없음』
현실 직장 생활 에세이 『어쩌다 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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