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인잡의 심채경 박사가 전하는 밤하늘의 세계
‘밤 하늘의 펄’에 빠지게 된 자, 천문학자
어떤 일을 사랑해 업으로 삼게 되는 배경에 ‘그냥’이 있을까. 드라마틱한 사건은 아니더라도 돌이켜보면 그 일을 사랑하게 된 계기는 누구에게나 있을 터.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의 저자 심채경 박사는 어린 시절 도서관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우주 사진이 담긴 과학잡지를 접했고, 거기에서 호기심과 흥미를 느꼈다고 전한다. 저자 자신은 그것이 결코 대단한 사건이나 운명이 아니라고 겸손한 태도를 취하지만 내게는 운명처럼 들렸다. 어린 학생의 눈을 사로잡았던 별들의 아름다움. 그것은 분명 작은 별들이 모이고 모여 은하를 이루듯 그녀를 우주의 세계로 이끈 계기였으리라.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구?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는 역설적인 제목에서도 겸손한 저자의 마인드가 드러난다. 천문학자 하면 으레 자신의 몸집보다도 더 큰 망원경 앞에서 별을 관찰하는 모습부터 떠오르는데,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과 달리 천문학자는 그렇지 않다는 말이었다. 책을 읽어보니 저자의 말대로 천문학자는 별을 보는 관찰자보다는, 관측된 자료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연구자에 가까웠다. 망원경 앞이 아닌 책상 앞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계산하는 사람.
관측자료 처리는 학부생 수준에서도 성실하기만 하면 할 수 있었고, 그저 엉덩이 붙이고 모니터 앞에 오래 앉아 있는 일, 조금 전까지 137번쯤 해봤던 것을 138번째 다시 해보는 따위의 일은 내 적성에 잘 맞았다.
p.22
박사님도 피해갈 수 없는 먹고사니즘
더불어 천문학자는 먹고사니즘과 무관한 별난 직종이 결코 아니며, 연구 과제 기간이 끝나면 당장 이후의 삶을 걱정해야 하는 비정규직 신분이 많다고도 했다. 독특하고 비범해 보였기에 늘 우리의 관심사에서 슬쩍 빗겨 나있던 천문학자의 세계를, 심채경은 그렇게 묵묵하게 펼쳐 보여준다.
운전면허가 있다고 운전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갓 면허를 딴 사람이나 면허를 따기만 하고 오래 묵혀둔 ‘장롱면허’ 보유자들은 운전을 허가받은 부류에 속하지만, 운전은 영 서툴다. 그런 의미에서 박사학위는 일종의 운전면허 같은 것이다.
p.28
나의 고용 상태는 내가 참여할 연구 과제가 있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과제 기간은 몇 개월짜리에서 십여 년까지 다양하지만 대개 3~5년 정도다. 과제가 끝나면 계약직 연구원인 나의 고용 기간도 끝난다는 뜻이므로, 과제가 끝나기 전에 미리미리 다음 과제 혹은 다음 직장을 알아보야 한다.
p.75-76
친절하게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는 재미나
물론 기대했던 재미(?)도 잘 담겨있다. 여러 과학적 사실을 친절하고 낮은 시선으로 알려주는 부분들은 과연 이 책의 매력 중 하나다. 지구과학 시간에 열심히 우리가 배워온 상현달과 하현달은 ‘북반구 전용’이라서 남반구에 가면 그 순서가 달라진다는 사실부터, 우리나라는 서양보다 더 이른 시기부터 하늘을 관측하고 기록해 왔다는 사실, 지구에서 옮겨간 미생물이 우주를 오염시킬 수 있으므로 그곳에서도 ‘소독’이 정말 중요하다는 이야기까지. 초코칩 쿠키의 초코칩처럼 곳곳에 배치된 과학 이야기들은 자못 흥미로웠으며, 최대한 쉽게 풀이하여 설명해 주려는 저자의 말투에서 섬세한 마음이 묻어났다.
따뜻한 심장을 지닌 과학자라서
하지만 이 책이 정말로 마음 깊이 와닿았던 이유는, 그저 어떤 과학자가 쓴 과학 이야기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에게는 세상을 바라보는 따스한 눈과 마음이 있었다. 그 필터를 통해 바라본 세상은 때때로 안타까웠고 슬펐으며, 보람차고 희망적이었다. 단순히 ‘한국 최초’, ‘여성’이라는 타이틀에 가려져있던 우주인 이소연을 과학자의 시선에서 조명해 주는 대목에서는 콧잔등이 시큰했으며, 교수로 재직하며 작은 교양과목일지라도 균등하게 학생들에게 분배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대목에서는 교직자로서의 깊은 사명이 느껴졌다.
‘야동 보는 고릴라’로 낚시성 기사의 주인공이 되었던 고릴라 ‘고리봉’의 애잔한 삶을 전할 때에는, 그녀의 마음이 비단 ‘우주’에만 집중되었지 않음도 느낄 수 있었다. 마음이 따뜻한 과학자로서 물리학에 ‘김상욱’ 교수가 있다면 천체물리학에는 감히 ‘심채경’ 박사가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당시 미혼의 박사과정생이던 이소연에게 기자는 ‘골드미스’라는 단어를 꺼냈다. 우주에서는 노화가 빨리 진행된다는데, 여성이니 피부 문제에 신경쓰이겠다고도 했다. 우주에서 생리가 시작되면 어떻게 하느냐고도 물었다. 우주가 상당히 춥다더라는 기자의 우려 섞인 질문에는 고산(당시 우주인 후보)의 대답만이 기사에 실렸다.
p.103
우주를 저자에게 배웠다면 재밌었을 텐데
과학은 수포자인 내게 늘 어려운 분야였다. 그중에서도 우주는 광활해서 삭막하고 캄캄한 세계 같아 왠지 무서운 느낌이 강했었다. 하지만 심채경 박사의 따스한 말에 귀 기울이며 책장을 넘길 때마다, 우주는 내가 생각한 것과 달리 싸늘하고 공허하기보단 가능성과 기회로 점철된 밝은 공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누가 말해주느냐에 따라 사물의 이미지가 변화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심채경 같은 따스한 이에게 과학을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지붕이자 바다와도 같은 우주를, 심채경 박사 덕분에 조금 더 알고 싶어졌다.
신호가 도달하는 데만 수백 년 걸릴 곳에 하염없이 전파를 흘려보내며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
p.13
* 완독챌린지 독파(dokpa)로부터 앰베서더 자격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고민 많고 마음 여린 어른이들을 위해 따수운 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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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결혼 힐링 에세이 『사연 없음』
현실 직장 생활 에세이 『어쩌다 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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