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달라도 너무 달랐던 여행 스타일, 6년만에 찾은 최적의 합의점?
근 3년 만에 떠난 남편과의 여행에서
코로나로 인한 마스크 착용이 해제되고 하늘길이 활짝 열린 첫 해. 사람들은 너도 나도 그동안 벼루어 왔던 여행을 떠났다. 지난 3년간 한산했던 인천공항은 전례 없는 북새통을 이루었다고. 우리 부부는 올해 봄, 사람들이 해외로 떠난 틈을 타 비교적 한산해진 제주도를 다녀왔다. 그동안 코로나 핑계 반 먹고 사느라 바빴다는 핑계 반으로 가지 못했던 여행이라, 옷과 신발도 잔뜩 사고 모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3박 4일의 제주도 여행은 봄기운을 맞아 가는 곳마다 너무나 예쁘고 따뜻했으며, 맛본 음식들도 모두 만족스러웠다. 유난히도 성공적인 여행이었다. 그런데 이 여행이 왜 이렇게까지 ‘유난히’ 만족스러웠을까 생각해 보니 여행하면서 남편과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헐! 여보 우리 한 번도 안 싸운 거 알아?”
내가 호들갑을 떨며 말하자 남편이 말했다.
“이제 자기가 나랑 다니면서 내 여행스타일에 조금 적응해서 그래. 나는 조금만 널널하게 짜주면 싸울 일이 없지요”
맞는 말이었다. 연애 당시, 아니 신혼 초만 하더라도 우리는 여행하며 한두 번씩은 꼭 다투는 커플이었다. 대개 별것도 아닌 일들이었지만, 주로 나는 더 많은 것을 눈에 담고 돌아다니고 싶어 했고, 남편은 못 보면 못 보는 대로 유유자적하게 여행하고 싶어 해서 부딪히는 일이 많았다. 그 유명한 ‘도톤보리 사건’에서 이미 나는 남편과 나의 여행 스타일이 본질적으로 다름을 일찍이 직감했는데.
도톤보리에서 생긴 일
도톤보리 사건이란, 우리 부부가 한창 연애하던 때 일본여행을 갔다가 벌어진 일이다. 일본 오사카에는 도톤보리에서 난바, 신사이바시까지 이어지는 유명한 길이 있었다. 그곳은 ‘일본의 명동’으로 불리는 곳으로 낮에도 볼거리가 많지만 특히나 저녁이 되면 건물마다 화려한 네온사인 간판에 불이 들어오며 엄청난 야경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싸웠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사진 찍고 예쁜 것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도톤보리의 화려한 볼거리에 매료되어 한 발 한 발 감탄을 내지르며 싸돌아다녔는데, 어느 순간 옆을 보니 남친(현 남편)이 죽상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왜 그러냐고 물으니 잠깐 앉아서 쉬고 싶단다.
솔직히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렇게 볼 게 많고 재밌는데 쉬긴 왜 쉬어? 그는 너무나도 많은 인파와 건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에 그만 기가 빨려서 방전된 것이었다. 봐야 할 게 수두룩 빽빽이었지만 하는 수 없이 동행자를 위해 카페에 들어가 강제 휴식을 취해야 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나랑 정말 안 맞는군’
우리 여행스타일은 너무 달랐으니까
비단 도톤보리뿐만은 아니었다. 그런 일화는 우리 부부에게 여행을 할 때마다 생겨났다. 그러나 오해하실까 봐 미리 말하건대 나는 내향형(I) 인간이며, 동적이기보단 정적인 사람에 가깝다. 하지만 여행에서만큼은 조금 달랐는데, 이상하게도 여행만 가면 나는 다시는 못 올 관광지라는 생각에 초인적인 에너지가 솟아올랐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온갖 랜드마크를 누비고 전망대라도 있으면 ‘반드시’ 올라가야 하며, 너무 멋져 지나치면 죄가 될 것만 같은 밥집과 카페와 펍과 유적지와 박물관을 발에 땀이 나도록 쏘다녀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었다. 사진도 인물샷 항공샷 근접샷 등등 골고루 찍고 동영상까지 남겨줘야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남편의 여행스타일은 정반대였으니. 그가 찍은 사진들은 하나같이 여기가 프랑스 파리인지 성수동 뒷골목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모호했고, 사람들로 붐비는 랜드마크를 가느니 아무도 모르는 호텔 뒤편의 브런치카페에서 커피나 한잔 마시는 것을 더 지향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럼 여행을 왜 가?”라고 물으면 자신한텐 그게 여행이고 힐링이란다.
물론 여행성향이 너무 달랐기 때문에 초반에는 많은 갈등을 겪어야 했다. 이런 경우 대개는 ‘더 많이 보고 싶은 쪽’이 ‘덜 보고 싶어 하는 쪽’의 텐션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나는 그와 함께할 때면 늘 성에 차지 않는 여행을 해야 했지만 부부의 정이란 얼마나 무서운지...,
연애기간부터 지금까지 6여 년을 함께하다 보니, 가랑비에 옷이 젖듯 조금씩 조금씩 그의 스타일에 맞춰 ‘스케줄을 줄이는’ 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이제 나는 조금만 북적여도 조금만 일정이 타이트해도 시무룩해지는 그를 위해 피로감을 최소화하는 기적의 동선을 짜게 되었으며, 그의 에너지가 채 고갈되기 전에 커피를 먹이고 밥을 먹일 수 있도록 관광지 근처에서 30분 이내에 갈 수 있는 음식점만 찾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더불어 하루에 아무리 많아도 세 군데 이상의 관광지를 들르지 않는 일정을 고수하게 되었는데, 그러고 나니 남편에게서 힘들다는 소리를 더 이상 듣지 않게 되었다. 정말 뿌듯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일방적인 희생은 없다, 합의점이 있을 뿐
언뜻 들으면 나의 일방적인 희생 같아 보이고 나 또한 그렇게 느낄 때도 있었다만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니 꼭 그렇지도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희생하고 맞춤으로 인해 얻어지는 것도 있었으니 말이다. 관계는 모름지기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니던가. 암묵적인 이 규칙에 근거해 남편 역시 나에게 맞춰주는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사진! 여행지를 가보면 불쌍할 정도로 여친의 사진을 찍어주는 남자들을 숱하게 구경할 수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내 남편이다. 느슨한 여행 강도를 경험하는 대가로 그는, 내가 원하는 사진을 100장이든 200장이든 군소리 없이 찍어주는 수고를 감내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닐 수 없다.
비단 배우자나 연인관계뿐만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여행은 늘 그랬다. 일상에선 더할 나위 없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던 이들과도, 꼭 의 상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더 놀고 싶은 나와 숙소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친구, 기념품에 관심이 많은 동료와 달리 기념품에 별 관심이 없는 나, 현지 클럽에 가서 쉐킷쉐킷 몸을 흔들고 싶은 나와 유흥엔 별 감흥이 없는 아는 언니, 현지 음식을 경험하는 게 중요한 나와 꼭 한 끼는 한식을 먹어야 하는 베프. 일상보다 맞추고 조율할 부분이 더 첨예하게 갈리는 것이 바로 여행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연인과, 이 친구와 함께하는 여행에 더 이상 잡음이 들리지 않는 순간이 왔다면 ‘올레!’를 외쳐도 좋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배려하고 희생한 끝에 비로소 최적의 합의점을 찾은 상태일 테니까 말이다. 6년을 삐지고 다투고 서운해한 끝에 완벽한 여행을 하게 된 나와 남편처럼, 이제 그 관계는 손색없는 여행메이트로 거듭난 셈이 아닐까. 조그맣게 외쳐본다, 올레!
고민 많고 마음 여린 어른이들을 위해 따수운 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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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결혼 힐링 에세이 『사연 없음』
현실 직장 생활 에세이 『어쩌다 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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