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Apr 03. 2023

돈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해서 안 가요

아내 두고 혼자만 스키장에서 고급스포츠 즐기는 남편?

                  

인스타그램 @woodumi



이번 주에도 혼자 스키장 간 남편


남편은 일요일 저녁이 되면 시댁 어르신들과 통화를 한다. 의례적인 통화이기는 하지만 한주는 어땠는지, 저녁은 뭘 해 드셨는지 꼬박꼬박 안부를 묻고 챙기는 남편이 은근히 귀엽게 느껴진다. 어느 날 통화를 하던 중 어머님이 물어오셨다. 


“이번 주에도 스키장 다녀왔어?” 


겨울이면 제 유일한 취미인 스노보드를 타러 강원도 스키장으로 향하는 아들에게 묻는, 어머님의 겨울 단골 질문이다. 남편이 “그럼 다녀왔지”하고 대답하면 연이어 돌아오는 2차 단골 질문도 있다. “듬지(나)도 같이 갔어?” 남편 ‘혼자’ 스키장을 다닌 지 벌써 서너 해가 꼬박 넘어가는데도 어머님은 빼먹지 않고 그렇게 물으셨다. 이마저도 별 뜻 없는 의례적인 질문이셨겠지만, 그날은 무슨 바람에서였을까. 나는 내가 남편을 따라 스키장에 가지 않는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게 되었다.         

        

“에이, 저까지 가면 돈이 두 배로 들잖아요” 


나는 나름 귀여운 투로 한 말이었는데, 옆에서 남편이 손사래를 치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또 눈치 없이 “왜? 사실이잖아”하며 하하하 웃었다. 하지만 그렇게 일단락된 통화 끝에 남편의 잔뜩 서운한 표정을 보고서야 뒤늦게 아차 싶었다. 


“그렇게 얘기하면 내가 돈 때문에 자기 두고 혼자 스키장 가는 철없는 남편 같잖아...” 




사진출처:핀터레스트



내가 남편을 따라가지 않는 이유


듣고 보니 그랬다. 본의 아니게 시부모님 앞에서 돈 없다는 하소연을 하게 된 셈이었다. 그것도 아들 흉을 보면서 말이다. 뒤늦게 밀려오는 후회. 언제나 자식이 배부르고 따뜻하길 바라는 부모님 마음에 행여나 내가 못을 박은 건 아닐까.       

         

연애 때는 남편과 함께 즐겨 찾던 스키장을, 결혼 이후 따라가지 않게 된 것은 물론 그놈의 ‘돈’ 때문이 맞았다. 작가랍시고 집에서 글만 쓰고 있는 나를 대신해 남편이 외벌이를 하다 보니, 함께 벌 때에 비해 생활이 여의치 않았던 것이다. 물론 정말 돈을 아끼려면 40만 원씩이나 하는 스키장 시즌권을 둘 다 포기하면 되는 일이긴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알량한 자존심이 있었다. 돈 못 버는 아내는 될 수 있어도, 남편의 취미와 행복을 가로막는 아내는 되지 말자는 것. 그 이유 때문에 남편은 혈혈단신으로 스키장에서 취미생활을 하고 있는 거였으며, 나 역시도 자발적 의지로 홀로 집에 있기를 자처하는 것이었다.     


          


사진출처:핀터레스트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


그러나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 했던가. 남편을 사랑하기에 남편의 취미를 보장해주고 싶었고, 아내를 사랑하기에 같이 데려가지 못하는 것이 속상한 남편. 이것이 우리 부부의 진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앞뒤 과정이 잘려나간 말은 뭉툭하게 왜곡되고 만다. 


“돈 없어서 안 가요~ 그치만 남편은 철없어서 꼭 가야겠대요~”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단어와 뉘앙스를 신중히 다듬어야 함을 느꼈다.       

         

물론 어머님과 아버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이 일을 ‘크게’ 생각하지 않으실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또 의례적으로 물어오시겠지. “이번 주에도 스키장 갔니? 듬지는 왜 같이 안 갔니?” 다시금 돌아올 그 질문에 이번에는 보다 지혜롭게 대답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아들 내외가 이토록 서로를 애틋하게 아끼고 있음을 전할 수 있을지, 나는 오늘도 머릿속으로 말을 다듬는 중이다.






+ 제 남편이 스키장을 얼마나 좋아하냐면요

인스타그램 @woodumi







고민 많고 마음 여린 어른이들을 위해 따수운 글을 전합니다.



■ BOOK

연애 결혼 힐링 에세이 『사연 없음

현실 직장 생활 에세이 『어쩌다 백화점


■ CONTACT

인스타그램 @woodumi

유튜브 『따수운 독설

작업 문의 deumji@naver.com

작가의 이전글 제가 난임이라구요? 인공수정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