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남

중요한 건 그 남자가 타는 자동차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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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그는 내가 전에 일하던 직장의 남자 사원이었다. 특별히 친밀한 관계도 아니었으며, 그렇기에 그에 대한 특별한 기억 또한 없었다. 그가 몇 번 점심을 사주었기에 같이 먹은 적이 있었고, 한 번은 집에 데려다준 적이 있었지만 그 또한 그다지 큰 기억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내가 그 직장을 관둔지 벌써 6개월이 지나가는 데도 잊을만하면 한 번씩 카톡을 보내왔다. 주로 언제 한 번 저녁이나 먹자는 것이었다. 별다른 교류도 없는 사이였던 데다 내가 이제 그 직장을 다니는 것도 아닌데 대체 왜?


그의 말에 따르자면 나와 성씨가 같기 때문에 동생 같아서라고 하는데, 내 느낌엔 단지 그래서 연락을 한다기에는 조금 명분이 빈약한 것 같았다. 나에게 일말의 이성적 호감이 있었던 걸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도 그다지 적극적이지도 않은 것은 느낌은 또 뭐란 말인가. 아는 언니의 의견에 의하면 찔러서 넘어오면 말고 아니어도 그만인 심리라는데. 문제는 내가 넘어가 줄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같은 직장에 있던 시절부터, 그 남자의 찔림의 목표물이 된 지금까지도 그에 대해 별로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기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거의 전무했다. 그러나 그가 매우 비싼 차를 몰고 다닌다는 것만은 똑똑히 기억한다.


그의 차는 벤츠. 벤츠였다.


자동차에 문외한인 나도 벤츠가 비싼 외제차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고작 서른세 살인 평범한 직장인 남자가 자신의 월급만으로 유지하기에는 매우 비싼 차라는 것도. 아마도 집안이 좀 부유한 편이거나, 직장 수입 말고도 다른 수입원이 있었을 거라 짐작이 되는 대목이었다. 한마디로 W는, 조금 사는 남자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끌리지 않았다.


한 번은 아주 추운 겨울날, 그가 나를 집에 데려다준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그의 차가 벤츠인 것도 몰랐다. 왜냐면 정말로 관심이 없었으니까. 설령 그에게 관심이 있었다고 해도, 둔한 나는 그의 소유물 중 하나일 뿐인 차

가 벤츠인 것 까지는 금세 알아채지 못했을 거다.


아무튼 그의 차는 그 잘난 벤츠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나를 태워주던 그날 우리 집 골목을 지나가던 상황에서였다. 작고 소시민적인 동네인 대전의 중리동 골목. 벤츠가 어울릴만한 동네가 아니었지만 당시 우리 집 앞에는 생뚱맞게도 벤츠 매장이 있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세계의 자동차기에 관심 한번 가져본 적 없었지만, 그 매장을 지나치며 W는 내게 "저 여기 온 적 있어요. 제 차가 벤츠다 보니"라는 말을 흘렸다. 막상 좋은 차에 타놓고도 "와 차 좋네요"라는 말 한번 하질 않는 나 때문에 의도적으로 흘린 말이었을까. 알아차려달라고. 나 이래 봬도 벤츠 모는 놈이라고.


결국 나는 그의 의도대로 그의 차가 매우 비싼 외제차라는 걸 알게 되었고, 나를 내려주고 돌아가는 그의 차를 보니 정말로 벤츠 로고가 떡 하니 붙어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내게 자신이 가진 최고의 값어치인 '차'를 자랑하고 싶었던 걸까. 자신이 남자로서 어필할 수 있는 최대의 가치가 그것이었던 걸까.


어쩐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가 벤츠가 아닌 벤츠 할아버지를 몬다고 하더라도, 내가 이성에게 반하는 지점은 전혀 거기에 있지 않았는데. 아마도 그가 사귀고 싶었던 여성들은 모두 그의 명품 차에 반응했던 모양이다.



그에 대해 정말로 잘 알지 못하지만 내가 몇 번 본 그는 말수가 적고 매우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는 성품이 착한 사람의 외모에 대해 논평하는 걸 꺼려하지만 미안하게도 객관적으로 그는 외모로 호감을 줄만한 사람 또한 아니었다. 왜소한 체격과 굽은 어깨에 특별한 인상을 주지 않는 얼굴. 그래서인지 그는 늘 의기소침해 보였다. 좋은 사람 같았지만 그런 의기소침함 탓에 사람들과 활발히 어울리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우습게도 나는 바로 그의 그런 점 때문에 늘 그에게 친절히 대했다. 그가 벤츠를 몰아서가 아니라, 그런 성격을 가진 이에게는 한마디의 친절함, 한마디의 미소가 얼마나 큰 고마움인지 알기에.


그가 잠시라도 날 이성으로 대했더라면, 그래서 내게 그가 어필할 수 있는 최대의 무기인 '경제력'을 어필한 거라면, 솔직히 정말 많이 미안하다. 나는 아직 오로지 남자의 경제적인 측면에만 솔깃하는 경지의 여자가 되질 못한다. 나는 아직도 나의 관능을 자극하고, 나의 감성을 알아봐 주는 남자에 넘어가고 마니까. 벤츠를 끌지언정 내게 중요한 측면이 충족되지 않는 남자에게는 도무지 끌리질 않는 것이다.


'좋은 차'를 끌고, '좀 살았던' 그가 자신의 전략과는 반대로 내게 의외의 호감을 준 적이 있다면 딱 한 사례가 있다. 언젠가 그가 사주는 점심을 먹고 같이 회사로 들어오는 길, "저는 차를 좋아해요. 녹차도 덖은 것 밖에는 안 마셔요"라고 했던 일. 별것도 아닌 그 말에 나는 그에게 최초로 호감을 느꼈었다.


자격지심에 돈자랑만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티백인지 우린 잎인지 생잎인지 덖은 잎인지 모르고 그냥 마시는 사람이 아니라, 이마만큼 차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왠지 특별해 보였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겨우 그 따위 일화가 나의 감성을 자극했으리라곤 생각지 못했을거다. 여전히 좋은 자동차와, 집안의 재력만이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무기라고 생각하고 있을 터다. 되려 자신이 어떤 감성을 가진 사람이며, 그 ‘타는 차’가 아닌 ‘마시는 차’에 대해 조금만 더 이야기해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W. 언젠가 다시 그와 우연히 만나는 일이 있다면, 그가 다른 어떤 여자에게 또 같은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면, 주제넘을지 몰라도 한 번은 꼭 언질을 주고 싶다. 세상엔 그렇게 차와 돈에 침 흘리는 속물 여자만 있는 건 아니라고. 자신의 내면과 감성에 집중해줄 수 있는 여자도 생각보다 많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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