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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사라는 모순

내가 인간인 이유

그래도 사람은 고기를 먹어야지...


쯧쯧.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친척 어른들의 어쭙잖은 잔소리가 시작된다. 멀리서 나마 내가 채식을 시작했다고 듣게 된 시댁 어르신들은 지나가는 얘기로 한마디씩 툭툭 내뱉곤 한다. 그럴 때마다 마치 변호인처럼 나서주는 남편은 "1일 1채식(비건)이에요. 와이프는 영양사 면허가 있어서 건강하게 잘 먹고 있어요." 라고 엄호를 해준다.


"그래도 신랑은 잘 챙겨맥여야지. 쯧쯧." 가까이 사는 시부모님보다 가끔씩 들르는 먼 친척들이 왜 우리 걱정을 갑자기 해주는 걸까? 그리고 이건 친정도 마찬가지. "그래도 이 서방은 잘 챙겨맥여야지. 고기 좀 보내줄까?"


엄마, 이 서방 배를 생각하고 얘기해.

내가 무슨 신랑 밥통으로 취직을 한 것도 아니고. 친정이고 시댁이고 나의 채식에 왜 이리들 걱정이 많으신 걸까? 그리고 엄마는 나의 말에 텔레토비처럼 똥그랗게 튀어나온 사위의 배가 생각이 났는지 푸웁...하고 웃는다.


모든 채식이 다이어트식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영양적으로 균형잡힌 채식은 건강식으로 손색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대인들은 채소를 멀리해서 생기는 질병이 더 많다. 성인병, 고혈압, 당뇨, 비만 등등. 성장기, 노년기, 임산부, 병환자 등 채식을 피해야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문가의 조언아래 채식을 한다면 문제될 게 없다.


1일 1채식, 전반적인 식단을 페스코 채식으로 바꿔나가곤 있지만 주위의 시선들이 그리 녹록치 않다.



영양사라는 모순과 인간적인 고민


영양사라하면 육식, 채식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영양소의 균형을 잡아주는 게 본래의 역할이다. 사람에게 중요한 의식주 중에서 인체과 가장 밀접한 식(食), 먹을거리를 과학으로 배우는 사람. 대기업 연구직이나 공공기관의 연구원으로 활동하는 영양사가 있는 것처럼 영양사도 엄연한 과학자다.


이성과 논리, 과학적 증거로 얘기를 해야 하는 영양사로서 채식은 맞는 걸까? 아니, 채식은 인간에게 해가 없는 걸까? 당연히 육식이 빠진 채식은 영양학적으로 불완전하다. 누군가에게 하루 세 끼를 채식만 하라고 강권하기도 어렵고 채식만으로 온전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런데 채식이 과연 옳은 걸까? 먹는 걸 가지고 맞다, 그르다를 따질 수 없지만 지금은 채식이 맞다. 완전한 채식이 아니더라도 조금씩 채식지향으로 바꿔나가는 게 맞다. 지구는 변해가고 우리를 둘러싼 기후의 변화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코로나가 끝난 뒤 만끽하는 벚꽃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예년보다 이른 개화, 이상고온 현상, 그리고 빨리 져버린 벚꽃에서 우리는 지구가 보내는 경고를 빨리 알아채야 한다. 모든 것이 지나간 뒤에 후회를 하기에는 너무 늦는 다는 걸. 그리고 이 문제는 인류의 존망이 걸린 커다란 문제라는 걸. 우린 이제서야 체감을 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대홍수로 국토의 1/3이 물에 잠겼고, 한 나라의 지도가 변하기까지 했다. 다른 나라의 일인줄만 알았던 커다란 산불들이 이젠 우리 산림을 집어삼키고 있다. 누군가는 집을 잃었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었다. 비단 사람뿐만인가? 지구의 전 생태계가 위기에 놓여 있고, 일부 생태학자들은 인간의 멸망까지 운운하고 있다.


이기적인 배부름보다 지속가능한 채식


기후변화로 극심해지는 자연재해의 피해자, 그리고 척박한 지구에서 힘들게 생존해야만 하는 미래의 인류들에게 우리는 이미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것이다. 인류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나만 건강하고, 나의 영양상태만 온전히 지켜나간다면 매우 이기적인 것 아닌가?


육식을 못 한다고 해서 갑자기 죽거나 신체가 급격한 손상을 입진 않는다. 하지만 이미 우리 곁엔 기후변화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들과 파괴되고 있는 생태계가 있다. 영양사라는 직업적인 모순 속에서 인간적인 고민들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역시 중요한 건 나의 식단을 조금이라도 희생해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영양사로서 균형잡힌 식단을 추천해야 하지만 지금로서는 건강한 채식을 추천하는 게 최선인 것 같다.


(이 글은 2023년 4월 2일에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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