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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연두는 낡은 책상에 팔꿈치를 괴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노트북 화면 아래, 깜빡, 깜빡. 마치 재촉하듯. 커서가 무심하게 깜빡였다. 연두는 그 리듬을 보면서 괜히 죄책감이 들었다.
인터넷에 웹소설을 올리기 시작한 지도 벌써 3년째.
작년 말부터 공들인 사극은 이제 거의 끝나가는데, 성적표는 초라했다. 조회수 100, 관심은 3명.
숫자만 놓고 보면 가혹할 정도로 적었지만, 그 3명의 독자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연두는 잘 알고 있었다.
세 번이나, 네 번이나 다시 보러와 주는 발자국.
['작가님, 이번화 정말 좋아요! 존경을 넘어서...작가님을 사랑하게 될 것 같아요!']
가끔씩 달리는 짧은 댓글 하나는 그녀가 이 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유일한 힘이었다.
창고 겸 다락방인 이 곳. 천장 가운데가 휘어져 내려앉은 공간, 벽지 위에 낡은 꽃무늬, 작은 책상과 오래된 의자. 이 모든 것이 그녀에게는 편안함과 같았다.
아무도 모르는 시간,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적막. 그 위에 겹쳐지는 키보드의 사각거림. 그 소리 위에서, 그녀는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이름 서연두, 나이는 스물아홉. 미혼 아니라...결혼 3년 차.
정확히 따지면 2년 9개월하고도 3일차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공식적으론 유부녀지만,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려니 어딘가 어색했다.
스물여섯에 한 결혼은 요즘 세상에선 흔치 않는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고 친 거 아니야?' 하고 웃으며 지나가기도 했지만, 연두에게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버텨온 대학 생활. '고학'이라는 단어가 진부하게 느껴질 만큼, 그녀는 어릴 때부터 가난했다.
신문방송학과, 아나운서 준비생. 캠퍼스의 낭만을 즐길 틈도 없이, 현실의 벽 앞에서 마주해야 했던 취업 준비. 부모님 도움 없이 내야 하는 고시원 월세 마감일은, 매달 절벽 끝에 서 있는 것처럼 두려웠다.
그래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웠고, 통장 잔고는 늘 바닥을 찍었다. 그런 턱없이 팍팍한 나날들 속에, '그'는 불쑥 나타났다.
빛처럼, 그림자처럼.
한 남자의 등장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연두는 그때 처음 알았다.
그의 이름은 고언.
나이는 서른둘, 신생 스타트업의 대표. 사람들은 그를 두고 사업가로서의 좋은 평판과, 다소 과장된 소문을 늘어놓았다.
누군가는 "예전에 아이돌을 했다더라"라고, 또 누군가는 "영화배우 누군랑 닮았다"고 떠들어댔다. 하지만 연두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무표정한 얼굴과 차가운 시선뿐이었다.
물론 키 187cm의 체격은 단번에 눈에 띄었다. 역삼각형으로 벌어진 어깨, 깔끔하게 떨어지는 수트의 선, 길게 뻗은 다리. 멀리서 보면 분명 '그럴싸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마주한 인상은 달랐다. 쌍꺼풀 없는 눈은 매섭게 가늘었고, 입매는 좀처럼 풀릴 줄을 몰랐다.
따뜻함보다 정확함이 먼저, 배려보다 효율이 먼저인 사람. 게다가 까칠함과 예민함의 끝판왕. 그의 책상 위에는 늘 90도로 가지런히 정렬된 펜들이 있었고, 커피잔의 손잡이는 언제나 같은 방향을 향했다.
회의실의 노트북은 항상 테이블 한가운데 정확히 정렬. 그가 쓰는 프로그램 목록은 언제나 가나다순으로 정리돼 있었다.
지나치게 반듯한 세계에서, 작은 흠집은 곧 결함이었고, 결함이 발견되면 즉시 폐기되어야 했다. 남들이 보기엔 둘은 행복한 신혼부부처럼 보였지만, 진실은 깨진 유리 조각 같았다.
두 사람은 계약결혼 3년 차.
정확히 3개월 뒤면 계약 종료를 앞둔 쇼윈도 부부였다. 서로의 생활에 적당히 침범하지 않고, 필요한 순간에만 눈빛으로 신호를 주고 받는 사이.
하지만 첫 만남을 떠올리면, 연두의 미간은 자연스레 좁혀졌다. 그날은, 소개팅이라 알고 나갔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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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제발...나 오늘 진짜 급한 일이 생겨서 그래...소개팅 좀 대신 나가주면 안 될까?"
혜정은 연두의 손을 붙들고 거의 매달리다시피 애원했다.
"장소는 W호텔 레스토랑, 시간은 저녁 여섯 시. 언니, 거기 뷔페 좋아하잖아. 랍스터랑 스테이크 무한리필!"
그 말 한마디에, 연두의 다이어트 계획은 솜사탕처럼 사르르 녹아내렸다.
"계산은 당연히 그쪽에서 할 거고, 언니는 자리만 채워주면 돼."
결국 그날 오후 다섯시, 그녀는 거울 앞에서 풀 메이크업을 마쳤다.
약속 시간에 맞춰 도착한 호텔 로비는 역시나 고급스러운 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안내 직원은 연두를 보며 밝게 미소지었다.
"손님, 예약하신 VIP룸으로 모시겠습니다."
우아한 클래식 선율이 은은하게 흐르는 VIP룸. 무겁지 않게 덮인 테이블보 위로 가지런히 빛나고 있는 포크와 나이프.
그런데 연두가 마주 앉게 된 건 낯선 남자 한 명뿐만이 아니었다. 중후한 느낌의 남자와, 우아한 분위기의 여자 한 명이 더 있었다.
"아버님은 뭘 하시나?"
중후한 남자, 고 회장이 물었다. 낮고 울림 있는 목소리. 연두는 당황스러움에 한 박자 늦게 입을 뗐다.
"한...한의원 원장님이세요."
입술이 바짝 마른 듯, 대답이 어색하게 튀어나왔다. 그녀는 최대한 침착하게, 예의를 잃지 않으려 애썼다.
"어머니는?"
옆자리의 이명희 여사가 냅킨으로 입술 주변을 톡톡 닦으며 물었다.
"이대 무용과 나오셨어요. 지금은 가정주부시고, 주변에서 레슨 부탁하시면...가끔 가르쳐 주세요."
대답은 익숙한 대본을 읊듯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그러나 사실, 그녀의 아버지는 오래전 집을 나갔고, 어머니는 식당에서 서빙을 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선 진실을 말할 이유도, 용기도 없었다. 원하는 대답을 짜맞춰야 하는 세상에서, 필요에 따라 자기소개서를 '자소설'로 만드는 건 일종의 능력이었다.
그 와중에도 이명희 여사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 행동이 참 얌전하네. 이런 아가씨가 있었으면 진작 데려왔어야지."
그녀는 아들을 흘긋 보더니, 조용히 한마디를 덧붙였다.
"네가 주변에서 조건 좋은 여자들 다 싫다니까 동성연애자가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오잖아."
고언은 바로 받아쳤다.
"그게 뭐 어때서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게, 죄는 아니지않습니까?"
말투는 차분했지만, 속뜻에는 분명 뼈가 있었다.
탁-
고 회장이 들고 있던 포크와 나이프를 던지듯 내려놓으며 인상을 구겼다.
"이 자식이 또!"
이명희 여사가 허둥지둥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여보, 여기서까지 그러지들 말아요."
그 사이, 연두의 앞접시에는 먹음직스러운 랍스터 한 조각이 놓였다. 고시원에서 라면으로 연명하던 사람에게, 붉은 껍질 속 달디단 살점은 사막 한가운데의 오아시스처럼 보였다.
그녀는 포크로 흰 살을 조심스레 떼어내 버터소스에 천천히 적셨다. 입안에 퍼지는 감칠맛, 버터의 고소함, 해산물 특유의 단맛. 혀끝이 먼저 놀랐다.
'이럴 땐 하나라도 더 먹자!'
"아가씨, 먹는 게 참 보기 좋네."
이명희 여사가 흐믓하게 웃으며 말했다.
"살만 조금 더 붙으면 예쁠텐데. 어서 하나 더 들어요."
"예, 감사합니다!"
연두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더니, 다시 포크를 들었다. 그리고는 예의를 넘어서 본능에 가까운 포크질을 시작했다.
어차피 한번 보고 말 사람들,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게 우선 아닌가? 랍스터도, 오늘 아니면 다시는 못 먹을지 모르는 인생이었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즈음, 고 회장이 아무렇지 않은 듯 입을 열었다.
"올해 가기 전에 날 잡자."
"크헙! 켁켁!"
연두가 마시던 물 한 모금이 잘 못 넘어갔다. 그녀의 눈이 동그래지며 빠르게 흔들렸고, 고언은 손수건을 꺼내 건넸다.
"괜찮아요?"
그의 시선은 먼저 자기 셔츠와 바지를 내려다보며 얼룩이 생기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그 다음이 그녀였다.
이 사소한 순서 하나가, 연두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고언의 부모님이 떠나고, 둘만 남은 VIP룸. 커피잔을 들고 있던 고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부모님 때문에 많이 당황했죠?"
연두는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심장 박동은 아직도 줄달음치고 있었다.
"난 아직...결혼 생각이 없어요."
고언은 양복 안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은 다음, 테이블 위에 묵직한 돈봉투 하나를 올려놓았다.
"오늘 저를 위해, 아니 저희 부모님을 위해 자리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은 정중했지만, 그의 표정에는 아무런 감정도 비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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