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프로포즈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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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딜 예쁘게 본 건지...난 잘 모르겠는데 말이야."


고언은 큰 키로 연두를 내려다보며 한쪽 입꼬리를 삐죽 올렸다. 썩소에 가까운 표정. 말투는 비아냥거렸고, 눈빛은 차갑게 빛났다.


연두의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나 진짜 어이가 없네. 어디서 재수 밥맛 같은 인간이 굴러와서는...'


마음속으로는 독설을 퍼붓고 있었지만, 아직 두 번밖에 안 본 사이였다.


'그래도 최소한 예의는 지켜야 되는 거 아냐?'


그러나 고언은 그녀의 마음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느닷없이 입을 열었다.


"나랑 결혼해 줄래?"


"...네?"


"결혼, 해줄 거냐고."


순간, 연두의 머릿속에서 '두둥'하는 효과음이 울렸다.


스물여섯. 아직 꽃도 못 피워본 나이에 결혼이라니! 그것도...반지도, 꽃다발도, 단 한 마디의 로맨틱한 프로포즈도 없이!


연두는 숨을 고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내가 바랐던 프로포즈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고언은 무심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아니면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라도 있어? 혹시 남자친구가 있는 건가? 그래도 소개팅 자리에 나왔으면...그런 건 없어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찡그린 얼굴은 여전히 재수 없었다.


"남친? 그런 거 없거든요!"


연두는 욱하는 마음에 소리를 질렀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속마음은 꾹 참고 거친 숨과 함께 삼켜내려버렸다.


'없어진 지가 오만 년은 된 것 같거든요!'


그녀의 대답을 들은 고언의 눈빛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럼 됐네. 안 할 이유 없겠네."


"...뭐라고요? 이렇게 자기 맘대로?"


연두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치만...우리 이제 두 번 봤는데요."


그럼 더 봤으면 진짜 결혼이라도 할 생각이었다는 건가?


고언은 잠시 숨을 고르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솔직히 말할게. 난 지금 부모님 지원...절실히 필요해. 스타트업을 세우고 싶은데, 제일건설 상무 자리만으론 어림도 없어. 아버지, 어머니 지원을 다 받아도 모자라."


"그래서...부모님 지원 받으려고?"


"그래, 결혼하자. 계약결혼."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기간은 3년. 재산은 부부 공동 소유로 반반씩. 부모님이 하자는 대로 우선 따르다가, 재산 받으면 깔끔하게 갈라서고 그 후엔 안 보는 거지. 이만하면 나쁜 조건 아니잖아?"


연두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대학교 4학년, 26살의 취업준비생.


이미 학자금 대출만 삼 천 만 원. 근근이 버는 알바비로는 고시원 월세와 생활비를 대는 것도 빠듯했다.

더군다나 취업은 하늘의 별따기.


면접을 볼 때마다 돌아오는 건 수고했다는 형식적인 인사뿐. 번번이 불합격 통지만 받았다.


아나운서라는 꿈은 원래도 쉽지 않은 길이었고,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조급함은 늘 가슴을 옥죄었다.

게다가 해가 바뀌면 스물일곱.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기회는 더 줄어들 것이다. 무엇보다, 생활비와 빚에 허덕이는 어머니에게 더 이상 손을 벌릴 수도 없었다.


고언이 쏘아붙이듯 물었다.


"뭘 그렇게 망설이는 거야?"


"그게..."


연두는 말끝을 흐렸다.


경제난에 시달리는 그녀에게 이 제안은 분명 솔깃했다. 하지만 이건, 그녀가 꿈꾸던 '프로포즈'는 아니었다.

고언은 표정을 굳히더니 차갑게 말했다.


"하기 싫으면 관둬. 이런 좋은 조건 기다리는 여자들, 얼마든지 많으니까."


그 말에 연두의 자존심이 짓눌렸다.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반발심이 치밀어 올랐다.


"정식으로 프로포즈 해줘요. 그래도...제 인생 첫 프로포즈인데!"


"뭐라고?"


"제대로 받고 싶다고요! 프.로.포.즈!"


고언은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


"그럼 뭐, 무릎이라도 끓어?"


"네."


"참나..."


결국 그는 진짜로 무릎을 꿇었다.


"됐어?"


풀썩-


그가 무릎을 꿇자, 바닥 위에 흩날리던 벚꽃잎이 바지에 가볍게 붙었다. 고언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지에 붙은 꽃잎을 털어냈다.


연두는 숨을 한 번 고르고, 처음으로 대답했다.


"네, 좋아요. 할게요. 한다고요!"


'딱 3년만 버티면 되는 거니까!'


그렇게 그녀는 고언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다.


벚꽃이 흩날리던 4월의 캠퍼스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꽃다발은 없었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다 믿었다.

하지만 고언의 생각은 달랐다.


"에잇, 더럽게."


그는 바지에 붙은 꽃잎을 털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연두는 속으로 외쳤다.


'야! 고 상무! 네 인상이 더 더럽거든!'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카메라 셔터 소리.


찰칵- 찰칵찰칵-


고언과 연두는 동시에 놀라 뒤를 돌아봤다.


개나리와 꽃나무가 무성한 뒷동산 쪽, 나무 사이로 누군가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었다.


"이씨!"


고언은 욕을 내뱉으며 그쪽으로 달려갔지만, 몰래 사진을 찍던 이는 잽싸게 도망친 후 였다.


"거기 안 서!"


고언의 거친 외침이 언덕 위로 울려 퍼졌지만 결국 그 사람을 찾진 못했다.


**


다음 날, 혜정은 연두 앞에서 배를 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 이거 언니 맞아?"


"야! 조용히 해! 사람들이 알아보겠어!"


연두는 후드 점퍼 모자를 푹 눌러쓰고 얼굴을 파묻었다.


"언니 사진 진짜 웃기게 나왔다. 언 오빠는 괜찮게 나왔는데."


"...언 오빠?"


"응. 어렸을 때부터 집안끼리 알고 지냈어. 오빠랑 난 소꿉친구 같은 사이랄까? 못 볼 꼴 다 본 사이지."


연두는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그래?"


혜정은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흔들었다.


"근데 이 기자도 참 그렇다. 기사를 낼 거면 언니 입장은 들어봐야 하는 거 아냐? 연락도 안 왔어?"


연두는 씁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전화도 없었어."


포털 메인에는 굵은 제목의 기사가 떠 있었다.


'제일건설 고언 상무, 베일에 싸인 약혼녀...26살 여대생은 누구?'


연두는 기사 속 자기 사진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화장도 못 하고, 머리조차 떡진 모습. 그 사진이 포털 메인에 버젓이 걸린 채, SNS로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약혼녀라니! 계약결혼도 취소하고 싶은 마당에!'


연두는 머리를 감싸 쥐며 중얼거렸다.


'젠장...'


혜정은 그 앞에서 코웃음을 쳤다.


"근데 언니, 어제 머리 안 감았지? 사진 보니까 머리 떡진 거 맞네."


연두는 속으로 울부짖었다.


'그래, 욕을 해라. 아주 그냥 실컷 해라!'


"시험기간이라 화장 안 한 건 이해하는데, 머리까지 안 감은 건 너무했다. 어차피 기사에 나올 거면 예쁘게 나오는 게 낫잖아?"


"야, 너 수업은 안 가냐?"


"언니가 연예계에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언 오빠가 예전엔 완전 인기 많았다고. 어린왕자 밴드 몰라?"


"어디서 듣보잡 밴드로 활동 좀 했던 모양인데. 난 그런 거 관심없어."


"아, 진짜 답답하네! 학교 다닐 때 완전 범생이었구나?"


"범생도 아니었고, 날라리도 아니었어."


혜정은 숨을 한 번 고르고, 괜히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오빠가 은퇴한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따라다니는 여배우들이 얼마나 많은데. 첫사랑 소녀팬인지 뭔지만 아니었으면 열 번은 결혼했을걸?"


"...첫사랑 소녀팬?"


"응. 밴드 활동할 때 오빠를 따라다니던 사생팬이었나본데, 오빠도 조금 좋아했었나봐. 그 팬 주려고 노래도 만들었대. 아직도 그 소녀가 준 선물을 간직하고 있더라고."


연두는 귀를 의심했다. 차갑고 냉정한 고언에게 그런 순정적인 면이 있다니.


"게이 아니고?"


"아니라니까! 그 소녀팬 이름도 모른다더라. 나중에 찾으려 했는데 끝내 못 찾았대. 오빠 말로는 그 소녀가 자기 인생의 별빛이었다나. 참 이상한 사람이야. 늘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거든."


연두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헉...진짜 이상한 사람임에는 틀림없어. 아무래도 나 잘 못 걸린 것 같아...'


혜정은 마지막으로 경고하듯 덧붙였다.


"요즘은 제일건설 까는 기사 쓰겠다고 따라다니는 기자들도 많아. 언니도 조심해."


"어...알았어."


괜히 불안한 기분이 가슴 한켠에 내려앉았다.


**


며칠 뒤, 연두는 전화를 받았다. 발신자는 엄마였다.


"연두야! 이게 무슨 소리야? 너 결혼해?"


"엄마, 그게..."


"지금 인터넷에 난리라던데! 주방 언니가 그러는데, 네가 부잣집에 시집간다고...정말이야?"


"엄마...그게..."


"아이고! 맞나 보다! 맞지? 우리 딸 제일건설 아들한테 시집가는 거 맞나 봐!"


옆에서 같이 일하는 아줌마들의 웅성거림까지, 수화기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연두는 숨을 고르며 겨우 물었다.


"엄마, 지금 어디야?"


"식당이지! 서빙하다가 주방 언니가 갑자기 기사를 보여주는데, 거기 네 얼굴이 떡하니 있더라. 그런데 사진이 그게 뭐냐? 너 요새 안 씻고 다니냐?"


"엄마, 나중에 얘기해요. 지금 바빠!"


전화를 끊고, 연두는 고개를 떨궜다. 잠시 뒤,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우리 딸 장하다! 난 우리 딸이 해낼 줄 알았다! 엄마가 뒷바라지도 제대로 못 해줬는데 독립해서 살더니, 역시 다 계획이 있었구나! 사랑한다, 우리 딸! 우리 딸 최고!'


연두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계약결혼을 결심한 순간부터,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굴러가고 있었다. 그러나 연두는 알지 못했다.

그들이 쳐놓은 미끼를, 자신이 얼마나 순순히 덥석 물어버렸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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