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가 친절히 대답해줄겁니다.
토마토엔 뭐가 들었죠?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의 모임자리. 평소 친하지도 않던 지인의 지인이 멀찌기 앉아 물었다. 브런치 레스토랑에서 만난 우리는 커피와 함께 간단한 메뉴도 시켰는데 테이블 가운데 놓였던 '토마토카프레제'가 문제였다. 나를 AI나 챗GPT 정도로 아는 것인가? 인공지능처럼 따박따박 대답해 줄 친절한 영양사선생님을 원했다면 죄송합니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챗GPT가 친절히 답해줄겁니다.
솔직히 저런 질문을 받으면 기분이 좋진 않다. 인터넷에 검색만해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을 궂이 왜 묻는 것인가? 그리고 약간은 떠보려는 듯? 영양사라는 걸 시험해보는 것처럼 훅 들어오는 질문은 항상 당황스럽다. 그래도 난 친절히 챗GPT가 답해줄거란 대답을 꾹 참으며 노화방지, 항산화에 좋은 라이코펜이 들어있으니 많이 드시라 말해줬다.
상추에는 뭐가 많이 들었어요? 블루베리에 들었던게 뭐더라? 사람들은 내 얼굴만 보면 영양소 이름을 듣고 싶어 안달난 것처럼 질문을 한다. 때로는 어르신들이 영양소 이름을 몰라서 물어보시는 경우가 있지만 TV만 틀면 건강프로그램이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짜로 뭐가 들었는지 몰라서 물으시는 분들은 별로 없을 거란 게 내 생각이다.
지용성비타민ADEK, 수용성비타민BC. 자다가도 툭 건들면 자동반사적으로 영양소 이름을 촤르르 읊어대는 우리 친정어머니는 TV 건강프로그램을 꾀고 계신다. 그런데 이런 분들에게 정말 알려드리고 싶은 건 '음식은 약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식약처나 믿을만한 자료들을 살펴보면 기능성 성분으로 알려진 영양소의 함량은 극히 미미하다. 거의 mg(밀리그램), ㎍(마이크로그램) 단위인데 이정도 가지고 놀라운 효과를 낸다면 음식이 아니라 '약'이라고 불렸을 것이다.
병원에서 의사선생님들은 매스나 주사, 약 대신 오이나 당근, 양파를 가지고 수술을 할 것이며 비뇨기과에선 토마토를, 응급실에선 시금치를 들고 간호사분들이 뛰어다니는 진풍경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학회지나 논문, 근거가 확실하고 믿을 만한 자료일 수록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해 내는 것에는 학자 분들과 연구진 분들이 더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영양소의 효능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건 이른바 '보상심리' 때문이 아닐까? '난 이런 음식을 챙겨먹고 있고, 이 음식엔 이런 영양소가 들어 있어서 난 건강해질꺼야.' 내지는 '운동은 안 하고, 술, 담배 모두를 하고 있지만 이런 음식을 먹음으로서 난 건강해질거야. 난 살이 빠질거야.' 와 같은 보상심리가 작용하는 것이라고 본다. 영양제를 꼬박꼬박 챙겨먹는 것도 이런 이치일까?
솔직히 유투브를 보다보면 어디서 사이비 같은 유투버들이 마치 자신의 음식을 먹으면 불로장생하고, 이 음식을 먹으면 모든 병이 치료되는 만병통치약처럼 과대포장해서 올리는 경우가 있다. 그들의 조회수는 끝도 없이 오르고 나는 여기서 갈등이 생긴다. 나도 저렇게 올려볼까? 영양사인 내가 저렇게 올리면 조회수가 더 어마어마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러고싶지 않다. 최근들어 몇몇 영상은 썸네일에 영양소의 기능을 강조해서 올리긴했어도 어디까지나 '예방', '도움을 줄 수 있다' 의 정도지 효과를 극대화해서 얘기하고 싶진 않다. 그것도 식약처와 학회지, 논문 등의 자료를 일일이 검토하고 숙고해서 올린 결과다.
음식에 든 영양소가 마치 약처럼 드라마틱하게 '짠'하고 효과를 내진 않는다라는 걸 오히려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항산화기능' '면역력증진' '피로회복' '피부건강' 이런 효과를 낼 수 있는 건, 가공식품이나 정크푸드, 영영가 없는 음식 대신 신선하고 좋은 채소들을 꾸준히, 장기적으로, 자연스럽게 챙겨 먹었을 때 결과이다.
사람들은 예방과 치료를 동일시하고 (꾸준히, 장기적으로, 자연스럽게)라는 말들은 괄호 속으로 밀어넣어버린다. 채소와 좋은 음식들은 각각의 섭취량과 먹는 방법을 잘 알고, 자연스럽게 꾸준히 먹어야 우리몸에 부담이 없다.
한때 홈쇼핑에서 크릴오일 건강보조제를 엄청나게 팔던 적이 있었는데 난 그걸 보면서 사람이 흰수염고래는 아닐텐데 저걸 왜? 무슨 이유로 먹는거지? 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사람답게 원래 먹던데로 새우를 먹으면 된다. (그리고 엄청나게 커다란 흰수염고래도 크릴새우를 농축해서 먹진 않는다.)
이 일을 왜 하고 있나? 생각해보면 우리 시어머니처럼 당뇨를 앓고 있거나 지병이 있으신 분들, 나처럼 채식은 하고 싶지만 건강하게 먹는 법을 모르는 분들 때문에 시작한 것 같다.
음식과 건강에 대한 잘못 된 정보도 바로 잡고, 좋은 식재료를 건강하고 맛있게 먹는 법을 공유하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결론은 '건강' 때문이다. AI는 다른 사람들의 건강을 진심으로 생각해주진 않는다. 그래서 단순히 원하는 대답만을 척척 내어주는 AI처럼 되고 싶진 않다.
대답에 신중을 기하고 신빙성 있는 자료로 좀 더 믿을 만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내가 AI와 다른 점은 '왜'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할 수 있다는 거다. 챗GPT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왜'라는 질문을 던져서 더 가치있는 일을 해야할 것 같다. 나는 인간으로서 나만의 차별성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