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기 빚는 영양사 Sep 15. 2023

사랑은 맛있다.

맛있으면 0칼로리

사랑이 고프다


배가 고픈걸까? 사랑이 고픈걸까? 어느날 갑자기 엄마의 된장찌개가 먹고 싶어졌다. 갓지은 뜨끈한 밥에 구수한 된장찌개 하나면 마음이 든든했는데. 결혼 후 남편과 같이 살게 되면서 먹고 싶은 된장찌개는 내 손으로 직접 끓여먹어야 했다. 하지만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헛헛함. 내가 끓인 된장찌개에는 온기가 없었다.



당신이 끓인 된장찌개가 제일 맛있어!


남편의 휴일, 이것저것 채소를 넣어 대충 끓여낸 된장찌개일 뿐인데 남편은 맛있다고 엄지척을 해준다. 순간 헛헛했던 마음이 뜨끈해지고 내 앞에 놓인 된장찌개는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 된다. 온기 없던 음식을 마음으로 먹게 되고 구수한 된장찌개 에서 사랑이 떠진다.



#사랑이 고픈 사람

별거 아닌 밥상을 누군가 편안한 마음으로 맛있게 먹어준다는 것. 엄마의 밥상이 나에게 안식처가 되어 준 것처럼 누군가에게도 나의 레시피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들도 엄마의 된장찌개를 그리워하면서 살고 있진 않을까?


남편도, 나의 친정 어머니도, 나의 시어머니도. 지하철 옆자리, 퇴근시간에 지친 몸을 이끌고 홀로 오피스텔로 들어가는 어떤 도. 모두 엄마의 된장찌개를 그리워하며 살고 있진 않을까? 어느 명절날, 고팠던 사랑을 든든히 채우고 올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이도 있다.


나는 항상 사랑이 '고팠다'. 어린 아이처럼 외로움을 달래면서 허기진 마음으로 밥상 앞에 앉았다. 퇴근 후 소주와 곁들이는 뜨끈한 어묵탕에서 피로를 풀었고, TV와 마주한 체 맥주와 치킨으로 노곤함을 즐겼다. 생각없이 느낄 수 있는 감각보다 속 깊은 마음 한 자락 쓰는 게 힘들었던 시절. 나의 성공, 나의 욕심, 나의 외모가 채워지길 바라며 사람 없는 밥상 앞에 홀로 앉아 사랑이 채워지길 끊없이 바랐다.



#사랑을 채워주는 레시피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사랑 앞에서 혼자 어린 아이가 되어 뱃 속에 비린 것들을 채워넣었다. 삼겹살, 소주, 회, 치킨, 맥주. 어쩔 땐 이길 수 없는 술을 마시고 다음날 모조리 개워낸 적도 있다. 끝없이 부풀어지는 욕망은 블랙홀처럼 먹을 수 없는 것들도 집어삼키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에게 필요한 건 비싼 고깃 덩어리가 아니었다. 오로지 비워내는 것. 마음을 비워내는 것. 몸도 마음도 깃털처럼 가벼워져 누군가에게 사랑을 떠먹여 줄 수 있을 때 그제서야 나도 사랑을 떠먹을 수 있었다는 걸. 밥상에 스민 사랑과 애정, 따뜻한 정을 먹을 수 있었던 건 모든 걸 비워냈을 때 일이었다.


음식에서 먹는 건 영양소 뿐만이 아니다. 사랑도 먹고, 위로도 먹는다. 추억도 먹고, 건강도 먹는다. 그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마음을 꾹꾹 눌러담아 밥을 짓는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관심과 애정, 사랑, 존중, 이해, 행복, 희망. 여러 마음을 섞어 밥을 지어 본다. 누군가를 위해 밥을 해주는 일은 한없이 베푸는 일이란 걸. 엄마가 더 그리워진다.

후원은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데 큰 힘이 됩니다 ♥


표고버섯과 무로 우려낸 된장찌개 레시피. 멸치육수 없이 채소만으로 국물을 내는 건 친정어머니의 비법이다. 감자대신 무를 쓰면 맛이 더 깨끗하고 시원해진다. 대신 표고버섯을 듬뿍 넣어야한다.


여기에 단호박을 넣으면 국물맛이 더 시원해지는데 집된장의 잡내를 잡아주면서 자연스런 단맛으로 짠맛을 부드럽게 해준다.

채식을 시작하면서 넣게 된 템페. 두부를 너무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된장찌개에 언제나 두부를 듬뿍 넣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동남아식 발효음식인 '템페'를 넣으면 끝. 두부대신 템페를 넣기도 하지만 우린 두부도 넣고 템페도 넣는다.


템페는 우리나라의 청국장처럼 콩을 발효시킨 인도네시아 음식인데 짠맛이 거의 없어 된장찌개에 넣으면 국물이 꾸덕해지면서 구수한 맛이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다. 이건 멸치육수 없이 깊은 맛을 낼 수 있는 채식레시피 비법이다.


이렇다할 특별한 방법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 음식이라면 그게 바로 비법이 되지 않을까?


무관심이 야만으로 흘러가는 시대. 불안과 걱정을 채우면서 허영심과 공허함만 살찌우고 있는 건 아닌지? 주변을 둘러볼 시선조차 가지지 못 하면서 오늘도 난 허공에 풍선 띄우듯 한 줌의 레시피를 올린다. 가끔은 한 알의 영양제보단 마음을 채워 줄 위로의 된장찌개가 낫다고 하지만 누군가 바라는 엄마의 된장찌개는 될 수 없다.

  

다만 가벼운 마음으로 지어낸 레시피가 사랑과 애정으로 닿기를 바랄뿐이다.

구독, 좋아요, 공유는 필수♥ 지금 당장 주변에 공유하셔서 행복과 건강을 나눠주세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