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시댁 어르신들은 약주를 너무 좋아하세요. 평소에는 물론이고 명절 때도 꼭 술이 빠지지 않죠. 문제는 어머님께서 당뇨가 있으신데도 약주를 좋아하셔서 걱정이에요. 당뇨가 심각한 단계는 아니고 약을 드시면서 잘 조절은 하고 계시지만 식이요법이나 관리도 그만큼 중요한 건데 제가 잘 말씀드려도 잔소리처럼 느껴지시나봐요.
식사자리에서 조금만 드시라고 말씀드려도 "명절이나 특별한 날 술 안 마시면 무슨재미냐?"며 섭섭해하십니다. 하긴 아들도 말릴 수 없는 걸 며느리라고 어떻게 말리겠어요. 남편은 그냥 두라면서 괜찮으실거라고 얘긴하는데 저는 영양사라 그런지 더 걱정이 됩니다.
친인척들 중에도 술 안 좋아하는 분들이 없으셔서 한 잔씩 드시다보면 결국 어머님도 볼이 발그레해질 정도로 드세요. 저희 부부는 술을 줄이고 있다면서 덜 드시길 권해도 소용없어요. 걱정도 되서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하다가 이렇게 된거 시중에서 판매 중인 소주보다는 몸에 좋은 전통주를 직접 빚어서 시댁에 갖고 가기로 했죠.
가양주 빚는 법을 취미로 배운 적이 있어서 이럴 때 써먹으려고 배웠나? 한번씩 생각하게 됩니다. 시댁에는 벌써 몇 번 빚어간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애주가 아버님이 너무 좋아하셨어요. 어머님도 며느리가 직접 빚은 술 먹기 아깝다시며 딱 두 잔만 드시는데 소주 한 병을 거뜬이 드시는 어머니께서 왠일이실까? 생각이 드는 거에요.
게다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는 소주는 전분에서 순수한 알콜만을 뽑아내는 공정이기 때문에 인공향료나 감미료가 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누룩과 찹쌀로 정성스럽게 빚어낸 전통주는 유산균이나 비타민, 미네랄처럼 몸에 좋은 영양소들도 더 많고 자연스럽게 생성된 향과 맛도 일품이랍니다.
다른 술과도 비교했을 때도 막걸리 1잔(100g)의 칼로리가54칼로리로 소주, 맥주에 비해 낮습니다. (*출처: 식약처 식품영양데이터베이스)
단, 전통주라 하더라도 어찌됐던 술이니 적정량을 먹는 게 좋겠죠?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적정음주량에 따르면 막걸리는 200ml 2잔 정도로 과음만 하지 않는다면 화학주보다 건강하게 술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이번 추석에도 시댁에 가져갈 찹쌀막걸리를 빚어봤습니다. 한 병 가져가면 어머님, 아버님이 과음 안 하셔서 너무 좋아요. 술이 건강할 수는 없지만 어떤 술을 얼마나,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만드는 법
1
누룩 200g을 곱게 빻아서 물 600ml와 잘 섞어 주세요. 효모가 활성화 될 수 있도록 7시간 동안 상온에 보관합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술 빚기 전에 미리 해놔야합니다.)
2
찹쌀을 물 속에서 살살 저어가며 백번이상 씻어줍니다. 쌀알이 깨지지 않도록 천천히 살살 저어주세요. 처음 10번 저어준 다음 물이 뿌옇게 되면 쌀뜨물을 버리고 새물로 갈아 줍니다. 그 다음은 20번, 30번, 40번, 50번 정도로 횟수를 늘려가다보면 20번을 저어도 물이 깨끗해지는 순간이 옵니다. 그때 마무리를 해주세요.
(이 과정을 백세(百洗)라고 하는데 사실 백번 이상 씻어줘야 술맛이 좋습니다. 쌀의 묵은내를 없애주고 불순물과 기타 이물질들을 물에 흘려보내면서 술맛을 좋게합니다. 저는 약 1시간 정도 걸렸어요.)
3
찹쌀을 30분 정도 불려준 다음 체에 밭혀 물기를 빼줍니다.
(백세를 충분히 해줬다면 쌀이 물기를 많이 머금고 있어서 오랜 시간 불리지 않아도 됩니다.)
4
전기밥솥에 불린쌀을 넣은 다음 물은 평소보다 2컵 정도 덜 넣어줍니다. ex)쌀 6컵에 물 4컵 / 무압취사 (무압백미) 모드로 밥을 지어주세요. 찹쌀 1kg 기준 6인용 밥솥으로 2번 정도 밥을 했습니다.
(쌀의 상태와 불린 시간에 따라서 물양을 조절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밥이 될 동안 사용할 도구와 항아리를 뜨거운 물로 소독해주세요.)
5
다 된 밥은 에어프라이어용 종이호일에 얇게 펴서 차게 식혀줍니다. 선풍기, 에어컨 밑에 놔두면 더 빨리 식어요. 차게 식은 밥에 물누룩을 넣고 10분 정도 치대줍니다.
(치댈 때는 손바닥을 쫙 펴서 수직으로 반죽을 눌러주세요. 밥알이 깨지지 않으면서 찰기가 돌아야 술이 맛있게 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