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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 빚는 영양사 Dec 17. 2024

봄날의 스캔들

2020.04.05

그리고 일주일 뒤에 바로 잡혀버린 부모님 상견례 자리.


“아하하하!!” 


“그래도 회장님께서 우리 연두를 예뻐해주고 이렇게 아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가르치지 못해서 부족한 게 많더라도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십쇼. 회장님.”


‘아빠.....’

10년 전 이혼한 부모님은 상견례 자리를 계기로 다시 뭉치게 되었고 


“회장님이라니!! 우리 이제 사돈될 사인데!! 안 그래요? 여보?”

“그래요. 편하게 사돈이라 부르세요. 자꾸 그러시면 저희들이 불편해집니다.”


“그래도 어떻게...”

“아! 사부인께서 이대 무용과 나오셨다고 들었는데. 제 동창 중에도 이대 무용과 나온 애가 있거든요? 혹시 아실련가?”


“아....제가 졸업한 뒤로는 살림만 해서....동창회 같은 덴 나가보지도 않았어요. 얘기하셔도 잘 모를거에요.”


‘윽....’

아슬아슬했다. 엄마한테는 미리 말해두긴 했는데 


“그래도 제가 작게나마 한의원을 하고 있습니다. 회장님이나 사모님께서 불편하신 곳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좋은 약 바로 대령 할 테니까!”


아....저 사기꾼 체질! 10년이 지나도 안 변하는 구나!


엄마에게 전해 듣기론 아빤 요즘 노인회관을 전전하면서 건강보조식품 팔고 있다는데

 

“하하!! 회장님이야 당연히 무료 진료 해드려야죠!!”


‘회장님이 진짜로 찾아가면 어떻게 하려고!’

난 아빠 옆구리를 쿡쿡 찌르면서


“아빠...그만 좀 해요! 그만!!”

어금니를 물고 조용히 속삭였다. 

그런데


“하하!! 회장님께서 널 예뻐하셔서 다행이다. 잘 살아야한다!”

그 순간 내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아버지의 그 말만은 진심이었으니까.


**

서울 강남의 한 웨딩드레스 샵



"어머 신부님!! 너무 아름다우시다!!! 그래도 이 드레스가 요즘 가장 핫한 건데..."


"헙!!!!!"


난 '핫'하다는 말에 숨을 더 깊게 들이 마셨다.

안 그래도 축축쳐진 뱃살과 팔뚝살이 말이 아닌데!! 갑작스러운 결혼식 준비에 다이어트할 새도 없이 이게 뭐야!!!


"허업!!!!!!!!"

아무리 숨을 참으며 볼록 나온 뱃살을 수습해보려 했지만!!! 

이게 벌써 16벌 째,  호흡곤란이 올 것만 같았다. 


"흑........"

진짜 도망가고 싶다!!!


"신랑분은 어떠세요?"

"허업!!!!!!"

직원의 말에 다시 한번 숨을 깊게 들여마셨을 때


"아무거나..."

'뭐? 아무거나?'

날 쳐다도 않보고 쇼파에 앉아 1시간 내내 전화통만 붙들고 있는 이 사람!!!


"되는 대로 아무거나 빨리 해줘요. 나 빨리 회사로 들어가봐야 하니까."

'허!!!!!!'

아무리 계약결혼이라 해도 그렇지!! 웨딩드레스는 한번쯤 봐줄 수 있는 거 아니야? 게다가!!!



"많이 가리는 걸로 해줘요. 노출 없는 걸로, 결혼식에 괜히 이상한 드레스 입었다가 사람들 입방에 오르는 거 질색이니까!!"


"뭐? 입방아?"

"가리는 게 훨씬 낫네."


'아오!!! 열받아!!! 야!!!' 

이 결혼 니가 하자고 해서!! 너 때문에 하는 거 아니야!!!


엄한 사람 붙들고 결혼해달라고 학교까지 쫓아와서 쪽팔리게 한게 누군데!!!

라고...손에 들고 있는 샘플 부케를 저 자식 얼굴에 집어 던지며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하....앞으로 3년 동안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가?'


『"재산은 부부공동 소유로 반반씩, 우선 부모님이 하자는 대로 따랐다가 재산 받으면 깔끔하게 갈라서고 그 후엔 안보는 걸로, 어때? 이만하면 나쁜 조건 아니잖아?"』


'하....정말!!! 내가!!! 돈 때문에 참는다!!'



"여보세요! 어, 나야. 주주들은 어떻게 됐어?"

통화를 하던 그 사람이 밖으로 나가버렸고,


"예비 신랑 분이 꽤 보수적이신 가봐요. 안 그렇게 보이던데?"

"하....예...."

난 뻘쭘해 하며 다시 여러벌의 드레스를 입어 봤다.



그리고...


"좋아! 이걸로 하지!"

"뭐?"

목에 올라 붙은 넥카라부터 소매 끝까지 완전 새하얀 실크로 뒤덮힌 웨딩드레스!!


여러개의 단추가 달린 앞모습은 완전 뱃살이 불룩! 불룩! 불룩!

당장이라도 단추가 팅! 하고 튀어나갈 것만 같았다!!


'그래도...숨 쉴 구멍은 줘야 하잖아...허흑...'

지금 내 모습은 완전!!! 살이 통통하게 오른 밤벌레!!


"노출도 없이 완전 다 가리고 좋네! 이걸로 해!"


헉!!! 이걸 입으라고? 결혼식에? 내 의견은...'

개뿔도 반영 안 되는 겁니까? 고 상무야!!!

난 그렇게....밤벌레 같아 보이는 하얀 실크 드레스를 입고, 결혼식날을 맞아야만 했다.


**


“아하하하하”

야외 결혼식장에서 들려오는 우아한 클래식 음악과 


“하하하하! 회장님!”

하객들의 웃음소리 


“어! 왔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기업 오너 집안 치곤, 정말 약소한 결혼식. 


하객은 100명 정도만 받고, 이마저도 청첩장 없인 못 들어가는 

철통보안 예식으로 치러진 건, 모두 고 상무 때문이었다.  


“왔어?”

“이 자식, 소리 소문 없다가! 갑자기!”

“그런 예쁜 여자친구를 꽁꽁 숨겨 놨으니 당연히 스캔들 한 번이 없지!!”

나중에 알았지만 


『“꺄아!!!!!!”』

『“프린스 오빠!!!!”』


“얼른 잡어!!!”

“넵!”


『“오빠! 결혼하지 마요!”』

『“우리가 있잖아요!!”』

『“우릴 두고 정말 가는 거예요?”』


“우웁.......”

“언아!! 괜찮니?”


“괜...괜찮아요. 잠깐 어지러워서...”

“하객 아니면 모두 못 들어오게 하라고 그렇게 일렀는데!!!”

“죄...죄송합니다. 회장님.”


고 상무는 공황장애가 있다. 


10년 째 자길 보고 달려드는 극성팬을 보거나

200~300명 이상의 군집을 보면 극심한 호흡곤란과 발작을 일으킨다. 


“우읍......”

“아무래도 안 되겠다!! 여기!!! 주치의 좀 불러줘요!!”


“전...괜찮아요. 유난떨지 마세요. 이런 날.”

이게 모두 10년 전 콘서트장에서 일어났던 일 때문이라나?


암튼 난 레스토랑 VIP실에 마련된 신부 대기실에 앉아 조신하게 

『“꼬르륵~”』



‘아....배고파 죽겠네.’ 

허기진 배를 달래가며 얌전히 앉아 있었다. 


‘하....먹을 거 없나?’

몸에 맞지도 않는 드레스를 입기 위해 극심한 다이어트를 한 지 어언 7일째!


“아!! 정말!!! 입에 아무거라도 넣고 싶다.”

그때 


“킁킁!! 이게 무슨 냄새지?”

레스토랑 주방에서 흘러나오는 


“스테이크 냄새?"

순간! 고기 냄새에 눈이 뒤집혀서 


‘한 입만! 한 입만 먹고 오자!!!’

펑퍼짐한 웨딩드레스를 둘둘 말아 걷어 올리고서는  

대기실 밖으로 빼꼼히 얼굴을 내밀었다. 


“아무도? 없지?”

다행히 주방으로 가는 길엔 직원 한 명뿐이었고 

그마저도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하악!!!’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주방으로 걸어가는데 


“속 불편한 건 어떻게? 물 한잔 더 줘?”

“아니. 소화제 먹고 좀 나아졌어.”


‘고언 상무?’


“그나저나 오빠 새 신랑 돼서 좋겠다?”

“어쩔 수 없잖아. 투자 받으려면,”


‘둘이 무슨 얘길 하는 거지?’

본의 아니게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게 된 나. 



“그럼 결혼식 하자마자, 회장님이 투자지원금 넘겨주시는 거야?”

“아마? 어머니는 이미 결정하셨고, 아버지만 넘겨주시면 돼. 주주총회는 형식상 하는 거니까.” 


‘헐....재산이 얼마나 많길래 주주총회까지......’ 


“언니는 이 사실 알고 있어?”

“당연히! 계약결혼이라고 벌써 못 박아 놨는데?”


‘계약결혼이란 거, 우리 둘만의 비밀 아니었어?’  


“그럼 한 달 전에 난 스캔들도 오빠가 작정하고 기사 뿌린 거란 것도?”

‘뭐?’


“그것까지 알면 일이 더 복잡해지지 않겠어? 당사자가 모르고 지나가야 일이 더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부모님도 좋다고 하셨고, 적당한 먹잇감이 나타난 이상 놓칠 수는 없고, 확실히 해두려면 그 방법이 제일 좋잖아. 더군다나 대중들한테 알릴 거라면.”


‘헙!!!! 그럼?’


“암튼! 일 꾸미는 건 어릴 때나 지금이나 대단해! 그 덕에 오빠 팬들만 들쑤셔 논 꼴이 됐지만 말이야! 오늘도 극성팬들이 우다다다다!!!”


“그러게? 네가 그냥 조용히 결혼해 줬으면, 일이 더 쉽게 풀렸을 텐데! 이런 소란도 안 떨어도 되고.”


“됐거든! 우리가 아무리 어릴 때부터 약혼자 사이였어도 결혼은 싫어! 커리어에도 도움 안 되고! 공중파 아나운서 되려면 지금이 나한테 제일 중요한 시긴거 몰라?" 


"난 영원히 싱글로! 자유롭게 살 거야! 커리어 쌓으면서! 부모님도 내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하셨으니. 이젠 다른 말마! 새신랑!”


‘그럼 두 사람 다? 처음부터 날 속인 거였어?’


“근데 그 기사, 네가 아는 기자가 써 준거 맞아?”

“응. 왜? 뭐 맘에 안 드는 거라도 있어?”


“아니, 그냥....내 사진이 너무 굴욕적으로 나와서. 무릎 꿇고 사정하는 사람처럼 보이잖아. 진심으로 한 프로포즈도 아닌데.”


“그럼 진작 얘기하지! 다른 사진으로 교체해 줄 수도 있었는데!”


“그때 셔터소리 듣고 파파라치를 따라가긴 했는데 워낙 빨라서. 나중에 따로 연락하기도 좀 그렇더라고. 그런데 너 jbc 아나운서 확정 맞아?”


“아마? 별일 없으면 다음달에 입사수속 밟고 교육 들어 갈 것 같아. 왜? 예쁜 여자 선배 소개시켜줘?”  


“아니! 그건 이혼 하고 나서 차차 생각해볼게. 나도 아직은 싱글이 더 좋거든!”



다음화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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