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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 빚는 영양사 Dec 16. 2024

개같은 프로포즈

2020.04.05


“도대체 어딜 예쁘게 본건지....난 잘 모르겠는데 말야....훗.”

높은 키에 날 내려 보면서 한쪽으로 썩소를 날리며 재수없게 하는 말!


'나 완전 어이가 없네!!! 재수 밥맛 그지 똥 같은게 어디서 굴러 와가지고는!!!'

이건 또 말이야 방구야!!! 그래도 이제 두 번 밖에 안 본 사인데!!


‘예의는 지켜줘야 되는 거 아냐?’


“나랑 결혼해 줄래?”

“네?”

“결혼......해줄 거냐고.”


‘두둥!!!!’

내 나이 26!! 아직 꽃도 못 피워본 나에게!!! 결혼이라니!!!

그리고 반지도, 꽃다발도 없이!!!

내가 바래왔던 프로포즈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아니면....맘에 두고 있는 사람이나 혹시 남자 친구라도 있는 거야? 그래도 소개팅 정도 나왔으면 남친은 없어야 되는 게 정상 아닌가?”


얼굴을 찡그리며 개똥같은 표정을 짓는 건 지금이나 그때나 똑.같.다.


“남친!!! 그런거 없거든요!!!”

안 그래도 열받아 죽겠는데!!! 더 열받게!!!


‘그런거 없어진지 오만 년은 된 거 같거든요!!!’


“그럼 됐네. 안 할 이유...없겠네.”

'뭐? 이렇게 자기 맘대로?'


“그치만.....우리 이제 두 번 봤는데....”

그럼 더 봤으면 진짜로 결혼할라고 그랬어?


“이왕 이렇게 된 거 솔직히 말할게. 나 지금....부모님 지원...절실하게 필요해. 스타트업 하나 세우고 싶은데 그러려면 제일건설 상무직으론 어림도 없고 아버지, 어머니 지원 다 받아도 모자라다고.”


“그럼 부모님 지원 받으려고?”

“결혼하자! 계약결혼!! 기간은 3년, 재산은 부부공동 소유로 반반씩."


"부모님이 하자는 대로 우선 따랐다가 재산 받으면 깔끔하게 갈라서고 그 후엔 안 보는 걸로, 어때? 이만하면 나쁜 조건은 아니잖아?”

“그치만......”


대학교 4학년, 26살. 취업준비생.

등록금도 없어서 벌써 대출받은 학자금만 3000만원.


장학금이 절실한 상황, 그래서 매번 이렇게 시험 때만 되면 도서관에서 밤새우기 일수.  


취업은 하늘의 별따기요. 매번 보는 면접마다

『“수고했어요.”』

탈락! 탈락! 탈락!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 듯 쉽진 않을 거라 예상했지만

남들보다 너무 늦은 나이에 시작해선지 쫄리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또 해를 넘기면 27살. 근근이 버는 알바로는 고시원 월세와 내 생활비 대는 것 마저 빠듯했다.

더군다나 생활비와 빚에 허덕이는 엄마에게는 손을 벌릴 수가 없었다.


“뭘 그렇게 망설이는 거야?”

“그게......”

물론 경제난에 허덕이는 나에게 솔깃한 제안이었으나

이건 내가 원하는 프로포즈가 아니었다.


“하기 싫으면 관둬. 이런 좋은 조건 기다리는 여자들!! 얼마든지 많으니까!”


“정식으로 프로포즈 해줘요!!!! 제대로 받고 싶어요!! 프로포즈!! 그래도 제 인생 첫 프로포즌데.....”


“뭐?”

“제대로 받고 싶다구요! 프.로.포.즈!!”


"그럼? 어떻게? 무릎이라도 꿇어?”

“네!”


“참나.....”

『“풀썩”』



거기서 알아 봤어야 했다.


고 상무는 자신이 이루고 싶은 일, 원하는 게 있다면 물, 불 안 가리고 가져야만 직성이 풀린다는 걸.

그때 그 사람의 목표는 ‘스타트업 설립’이었다.



“됐어?”


캠퍼스 도서관 뒷동산에서 난 그렇게 난생 첫 프로포즈를 받았고  


“네!! 좋아요!! 할게요!! 한다고요!!”

‘딱 3년만!!! 버티면 되는 거니까!’

덥석 그의 제안을 물어 버렸다.


벚꽃이 흩날리는 4월의 캠퍼스는 너무나 아름다웠고

프로포즈를 위한 꽃다발이 없어도 난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오늘 같이 그지같은 날이 오기 전까지

‘고언!!! 당신이 다 망쳐놨어!!!’

이 개같은 프로포즈.....다시 되돌릴 순 없을까?


**

난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이제 됐어?”

벚꽃이 흩날리던 아름다운 캠퍼스에서  

“에잇!!! 더럽게!!!”



『“툭!! 툭!!!”』

갖은 인상을 쓰며 마땅치 못한 표정으로 바지에 묻은 꽃잎을 털어 내던 그 얼굴을!!!


‘야!! 고 상무!!! 네 인상이 더 더럽거든!!!’

그때

『“찰칵!!!”』


“뭐야 이 소린!!!”

『“찰칵!! 찰칵!!”』

뒷동산에 핀 무성한 개나리, 꽃나무들 사이로 들려오는


『“찰칵!!!”』

카메라 셔터소리!!


“이씨!!!!!”

『“후다다다닥!!!!”』


“너 거기 안 서!!!!”

몰카 촬영자를 잡기 위해 고 상무가 열심히 뛰어 갔지만


“헉!! 헉!!! 어떤 새낀지 더럽게 빠르네...”

결국 놓쳐 버리고 말았다.


**

그리고 다음날  


“푸하하하하!!! 이거 언니 맞아?”

“야!!! 조용히 해!!! 다른 사람들이 알아보겠어!!!”

난 후드점퍼 안쪽으로 깊숙이 얼굴을 집어넣었다.



“언니 사진 되게 웃기게 나왔다!!! 언 오빠는 괜찮게 나왔는데!!”

“언...오빠?”


“응! 우리 어렸을 때부터 집안끼리 알고 지냈잖아! 오빠랑 나랑은 불알친구 같은...뭐 그런 사이라고 할까? 못 볼 꼴 다 봤지!”


“그....그래?”

“그런데 이 기자도 참 그렇다!! 아니 이렇게 기사를 낼 꺼면!! 어쨌든 언니의 입장은 들어 봐야 되는 거 아니야? 전화도 안 왔어?”


“어......”

사진이 찍히고 바로 다음날 터져 버린 스캔들 기사

『“제일건설 고언 상무, 베일에 싸인 약혼녀....26살 여대생은 누구?”』


‘약혼녀라니....지금 당장이라도 계약결혼 취소해버리고 싶은 사람한테!!!’

그러나 이미 온라인 포털에서는 기사가 파다하게 퍼져 버렸고


‘젠장...’

눈꼽도 안 뗀 내 얼굴이 온라인, SNS를 돌아다니게 될 줄이야!!!



“근데 언니 어제 머리 안 깜았어? 이거 머리 떡진 거 맞지?”

‘그래....욕을 해라 아주 욕을 해!!!’


“시험기간이라 화장 안 한 건 이해하는데....머리 안 깜은 건 좀....너무 했다! 그래도 이왕 나올꺼면 예쁘게 나오는 게 좋은데....”

“야!! 너 수업은 안 가냐?”


“언니!!! 언니가 연예계에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그래도 언 오빠가 지금은 은퇴하고 경영수업 받고 있지만!!! 10년 전만 해도 아이돌 밴드로 완전 인기 많았잖아!! 언니, 어린 왕자 밴드!!! 몰라?”


“어디서 듣.보.잡 밴드로 활동 좀 했었나 본데 난 그런 거 관심 없거든!!!”

“아이참!!! 이 언니 진짜 갑갑하네!!! 학교 다닐 때 완전 범생이었나 보네!!”


“범생도 아니었고 날라리도 아니었어!!”


“그래도 오빠가 은퇴한지 10년이 지났어도!! 아직 따라다니는 여배우들이 얼마나 많은데!! 첫사랑 소녀 팬인가 뭔가!! 그 여자만 아니었어도!! 오빤 벌써 열 번은 결혼했을 걸?”


“뭐? 첫사랑 소녀 팬?”


“응! 오빠가 밴드 활동 했을 때 엄청 따라다녔던 사생 팬인가 본데...오빠도 조금 좋아했었나봐. 그 팬 주려고 노래도 만들었다던데...그리고 그 소녀팬이 준 선물!! 아직도 고이고이 간직하고 있잖아!!!”


“뭐?”

싸늘하게만 보였던 고 상무에게 그런 순정적인 면이 있을 줄이야!

계약결혼으론 어림도 없는!! 견고한 첫사랑을 간직한 아이돌 밴드 보컬!

아니면 첫사랑 때문에 여러 여배우들을 마다한....


“게이?”


“게이 아니라니까!! 암튼 그렇게 깊은 사이는 아니었던 것 같고, 그 소녀팬 이름도 모르나봐...나중에 찾으려고 수소문까지 했었는데 못 찾았다나? 아무튼 오빠는 그 소녀가 자기 인생에 별빛이었데. 오빠도 참 이상한 구석이 있어서 항상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한다니까!”


‘헉....진짜 이상한 사람임에는 틀림없어....아무래도 나 잘 못 걸린 거 같아!!!!’


“어쨌든 요샌 제일건설 까는 기사 쓴다고 언 오빠 따라 다니는 기자들이 한 둘이 아니거든! 언니도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어? 어.....”

충고 아닌 질투? 혜정이 말투가 워낙 까칠한 편이어서 더욱 그렇게 들렸을 수도 있지만

그날은 유난히 혜정이의 말투가 맘에 걸렸다.


**

『“벨렐렐레~ 벨렐렐레~”』

고시원 방에 누워 있는데 걸려온 전화


‘엄마?’

『“틱!!”』


“엄마, 왜?”

“야!! 연두야!! 이게 무슨 소리야!! 너 결혼해?”


“엄마! 그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몰랐다.


“지금 인터넷에 난리 났다는데!! 옆에 아줌마가 너 부잣집에 시집간다고!! 정말이야?”


“엄마...그게....”


“하학!!!! 맞나봐!! 맞나봐!! 우리딸 제일건설 아들한테 시집가는 거 맞나봐!!!”

『“아 그래?”』  『“정말?”』

옆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들려왔다.


“엄마 지금 어디야?”

“식당이지!! 서빙보다가 주방 언니가 갑자기 이거 보라면서 기사를 보여주는데 글쎄 거기에 우리딸 얼굴이 떡하니!!! 야!! 근데 사진이 그게 뭐니!!! 너 요새 안 씻고 다녀?”


“엄마!!! 나중에 얘기해요!! 나 지금 바뻐!!!”

『“뚝!!!”』


“흐앙.......”

난 이 결혼 물리고 싶은데....엄마까지....


『“띠링!”』

통화 후에 도착한 문자


『“우리딸 장하다!! 난 우리딸이 해낼 줄 알았다!! 고시원으로 독립한다고 했을 때부터 왜 그랬나 싶었는데!!! 우리딸은 다 계획이 있었구나!!! 부족하고 못난 엄마가 많이 보태주지 못해 항상 미안하구나! 사랑한다! 우리딸!! 우리딸 최고!!!”』



“하.......”

이미 엎질러진 물. 계약결혼을 결심하자마자 어떻게 일사천리로 일이 이렇게 흘러가는지.

그땐 알지 못했다.


그들이 쳐놓은 미끼를 내가 덥석 물었단 걸.


**


다음화 미리보기

https://novel.naver.com/best/detail?novelId=863850&volumeN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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