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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 빚는 영양사 Dec 03. 2024

첫단추2

2020.04.04

시원스럽게 싸인을 한 뒤


“그럼 이젠 볼 일이 없겠네요. 잘가요!”


쿨하게 뒤돌아 나가는 그의 등짝을 보면서


‘저 사람은 좋겠다.’

취업 고민도, 돈 걱정도 안 하겠지?


‘재수 없어.’

그리곤 곧바로 돈봉투를 열어


‘하나, 둘, 셋, 넷......헉!!! 삼십!!!’ 속물 같이 돈을 세보다가

『“툭!!”』


“이건 뭐지?”

십만원짜리 수표 사이에서 발견한 그의 명함


“제일건설 경영전략팀 고언 상무?”

“에잇!!! 재수없어!!!”


『“꽈악!!!!”』


첫인상부터 재수 없던 그 자식의 명함을 꼭 쥐고선 꼬깃꼬깃하게 뭉게버리곤 쓰레기통에 버려버렸다.



“다신 만날 일 없을 거야!!! 흥!!!!”


그래도 내 핸드백에 두둑하게 챙긴 돈은 좋았다.


그날로 밀린 월세를 다 갚고, 얼마의 돈은 엄마에게 부쳐드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엔 편의점에서 가장 비싼 와인을 사서 나홀로 축배를 들었다.


그런데...뭐가 좋았던 걸까? 고시원 자그마한 방에서 알딸딸하게 취한 나는


“제일건설 경영전략팀...고언 상무....”


핸드폰을 꺼내들어 검색창에 고상무의 회사와 직함을 친 뒤 그의 신상을 파헤치고 있었다.


“경영전략팀 고언 상무, 아이돌 출신의 유능한 인재?”


그의 이름을 쳐 넣자마자 쏟아져 나오는 기사들.


“19살에 밴드 ‘어린왕자’ 보컬로 데뷔? 아버지는 제일건설 회장, 고천석?”

“연예계 은퇴 후 착실하게 경영수업 이어가.....제일건설 후계자 구도 고언 상무로 굳혀지나?”


“아이돌 이었어? 난 왜 그런 걸 몰랐지?”


내가 관심 갖지 않았던 경제, 사회, 연예계 기사들이 줄줄이 이어 나왔다.

그리고


“고천석 회장 외아들, 게이설? 정신 이상설?”

“으악!!! 그 사람 게이였어?”


더 재수가 없어졌다.


“그러면 그렇지....”

안 봐도 뻔했다. 회장 아들인 고언 상무가 후계 구도를 이어가려고

자신이 게이인 걸 숨기기 위해 오늘 일을 벌인 것!


아버지의 바람대로 여자와 결혼은 하기 싫고, 당장은 어쩔 수 없이 구색 맞추기 식으로 오늘의 상견례(?) 자리를 벌였는데


재수 없게 걸린 게...


“바로 나?”

이런 젠장!!!! 바로 그때


『“벨렐레~ 벨렐렐레~~”』


“이씨!! 혜정이 이 기지배를 그냥!!!”

혜정이 한테서 걸려온 전화


“야! 너!! 진짜 죽을래?”

“하하하하!! 언니 어땠어? 괜찮았어?”


“뭐? 야! 나 지금 장난칠 기분 아니야!! 너 어디야!!!”

“그 오빠 집안 빵빵하고 꽤 좋은 사람이야. 여자들한테 별로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야!! 그렇다고 게이를 소개시켜주면 어떻게!!”

“뭐? 아니야!! 그 오빠 게이 아니야!!!”


“그리고 오늘 그 사람 부모님들까지 나와서 나 엄청 곤혹스러웠다고!!!”

“아 정말? 난 몰랐어!! 부모님까지 나온단 말은 안 했는데? 그 오빠가 급하긴 급한 모양이네!!”


“야!! 암튼 너 만나면 죽을 줄 알아!! 바로 니킥이야!!”

“언니 근데 나 오늘 면접 봤는데 잘 될 것 같아!!!”


“뭐?”

“내가 저번에 말했던 jbc 아나운서 면접!!! 오늘 2차 봤는데 최종 면접 연락 받았어!!! 나 잘 할 수 있겠지?”


“엉? 으엉......”

기지배.....날 소개팅 자리에 끼워 넣고 지는 면접 보러가?


“면접 잘 되면 언니한테 진짜 크게 한 턱 쏠게!!! 우리 형부 몫까지!!”

“야!! 너 진짜 죽을래!!!”


얄미운 기지배. 고위 공직자 아버지에 어머니는 이대 무용과 교수님.

혜정이는 내가 갖추고 싶은 모든 것을 갖춘 아이였다.

나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 그 아일 질투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고 상무는 혜정이의 약혼자였다.


**

그렇게 강렬했던 첫만남이 지나고


한 달 뒤

『“지잉~ 지잉~”』

중간고사 기간이라 도서관에 처박혀 공부만하고 있는데



『“지잉~ 지잉~”』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누구지?”

『“뚝!!!”』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는 탓에 놓쳐버린 전화.


잠시 뒤

『“띠링!”』

같은 번호로 문자가 왔다.


『“나 고상무예요. 시간 나면 연락 줘요.”』


미친 X!!’

기분 나쁜 번호를 수신거부 해버린 뒤 난 다시 열심히 책에 빠져 있었다.


다음날이 되고

“흐암......”

또 다음날이 되고

“아이고.....삭신이야...”


『“우득!! 우득!!”』

도서관에서 이미 여러날, 밤을 샌 나는 몸이 뻑쩍지근해서 잠시 바람을 쐴 겸 도서관 밖으로 나오게 됐다.

그런데


『“웅성웅성!!”』


“저건 뭐야? 왜들 저래?”

도서관 앞에는 느닷없는 ‘빨간 스포츠카’가 주차돼 있었고



“야 저거 어린왕자 보컬 ‘프린스’ 아니야?”

“어디어디?”

“대박!!! 기럭지 장난 아님!!! 수트빨 진짜 예술이다!!!”

 “꺄아!!! 우리 프린스 오빠는 세월이 지나도 어쩜 저렇게 그대로지? 빛나는 미모는 하나도 안 변했어!!!”


“프린스는 또 뭐야?”

‘가만!!! 어린왕자의 보컬이라면?’


“헉!!!!!! 제일건설 고 상무?”

웅성대는 학생들 너머로 빨간 스포츠카를 쳐다봤는데!

이게 웬걸!!


“응...응 알았어. 기다리고 있을게.”

어떤 사람과 통화 중인 고 상무!!


‘일단 이 자리를 피해야겠어!!!’

그런데!!


“어!! 거기!!”

‘허걱!!! 날 본거야?’


“서연두씨 맞죠?”

눈썰미 하나 진짜 대박.  


'내 맨얼굴을 어떻게 알아 본거지?'

그날은 풀 메이크업에 옷도 장난 아니게 차려입었었는데...


"거기!!!"

“흐억!!!!!”

지금 난 도서관에서 며칠 밤을 샌 뒤! 다 늘어난 트레이닝복에 화장도 안하고,

거기에다 완전 맨얼굴에 차림새도 꾀죄죄! 오늘 세수도 안 했는데!


3일째 머리도 못 감았다고!!!


“서연두씨!!!”

웅성대는 사람들을 비집고 나에게로 다가오는 고상무!!


“어이!! 거기!!! 회색 모자티에 머리 떡진 사람!!!”

“헉!”

숨어야 했다. 물론 이런 내 모습을 들키긴 싫었지만 그건 다음 문제였고


“연두씨!! 잠깐만!!! 거기 서라고!!!!”

재수 없는 저 사람의 얼굴을 다신 보기도 싫었거니와

‘아씨!! 젠장!!! 재수없어!!!’

또 마주친다면 지난번 상견례와 같은 그지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우선


"도망가자!!!!"

도망치기로 했다.


“서연두씨!!! 이거 봐요!!!!”

“으악!!!!!”



『“우다다다다!!!!”』

난 도서관을 빙둘러서 캠퍼스 뒤편 언덕으로 도망치기 시작했고


“잠깐만!! 거기 서라고!!!”

고 상무는 날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따라 왔다.


“허억...허억....”

‘우왁!!! 토할 것 같아!!!’


그런데 저 사람 걸음은 왜 이렇게 빠른 거야? 완전 우사인 볼트처럼 따라오잖아!!!


"크헙!!!!!"

가파른 언덕 중턱을 오르자마자 저질 체력이 바닥을 드러내는 순간!


“잡았다!!”

"으억!!!"

고 상무는 나의 후드티를 붙잡고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전화는 왜 안 받아요?”

‘너 같으면 받겠냐?’


“그게......”

당신의 이상한 부모님하며, 첫 만남에 돈을 쥐어 주면서 입막음 하는 듯한 태도!!

너처럼 기분 나쁜 자식을 내가 왜 또 만나야 하는데!!!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모...모르는 번호라....”

“문자는? 문자는 봤어요?”

“도서관이라....무음으로 해놔서...”


그때

『“퐉!!!”』

“지금 뭐하는 거예요!!!!”

그는 내가 손에 쥐고 있던 나의 핸드폰을 빼앗아


“수신거부전화 20통? 수신거부 메시지 10개.....뭐야!! 수신거부는 왜 한 건데!!!”

거기서 알아 봤어야 했다.

모든 건 지 맘대로, 예의나 배려 같은 건 눈곱만큼도 없는 인간이란 걸.


“이리 줘요!!!! 얼른요!!!!”

난 간신히 그의 손에 매달려 핸드폰을 되찾아 올 수 있었다.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기나 해!!!! 며칠 동안 계속!!! 이 학교 도서관으로 출근!! 출근!! 출근!!! 삼일 내내 도서관 앞에서 목이 빠져라 당신만 기다렸다고!!!”

욱하는 성격과 반말인 듯 존댓말인 듯 아리송한 말투.

하지만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백이면 백!! 이건 반말로 화를 내는 말투다!! 라고 얘기했을 거다.  


“시험이 얼마 안 남아서....방해 되길래....”

그리고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고 상무는 기다리는 것, 참아내는 것.

기다리면서 참는 것 정말 못한다.


참을성 1도 없는 사람이 3일씩이나 도서관 앞에서 조용히 기다렸다는 건 아직도 상상이 안 간다.


“하....거짓말쟁이는 딱 질색인데....”  

“뭐요?”


‘뭐가 질색이라는 거야, 이 인간!!!’

'그리고 이 사람!!! 날 몇 번 봤다고 벌써 말을 놔!!!'   

나보다 3살이나 많긴 하지만 싸가지 없게 구는 건!!


‘나도 딱 질색이거든요!!!’

라고!!! 얼버무리지 말고 그때 딱 잘라 말했어야 했다.

너 같은 인간 싫다고! 꺼지라고!


“우리 결혼해야 될 것 같은데?”

“네?”


'헐!!!!!'

이건 또!!! 뭐!! 콩 볶아 먹다가!!! 콩가루로 메주 쑤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을!!

그리고 결혼하자도 아니고 결혼해야 될 것 같은데(?)라니!!


“두 노인네가 그럴 인간들이 아닌데....당신을 좋게 봤는지 빨리 날 잡으라고...”

“헙!!!! 뭐라고요?”


‘나 지금 잘못 들은 거 아니지?’



다음화 미리보기

https://novel.naver.com/best/detail?novelId=863850&volumeNo=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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