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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 빚는 영양사 Dec 24. 2024

하와이 인당수

2020.04.07


“훗......”

‘뭐지? 이 반응은?’


“아하하하하하!!”



‘저 사람....충격 받았나?

고 상무가 미쳤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생각 없이 사는 줄 알았는데, 너도 생각이란 걸 하는 애였구나?”


“뭐?”


“계약결혼이란 거 알고서도 덥석 물었을 땐, 그 머리는 왜 달고 다니나? 싶었는데 그래도 생각이라는 걸 하긴 하나보네.”


“뭐? 지금 말 다했어?”


“싸인 안 하면 난리 날 것 같으니까, 우선 싸인은 해둘게.”

“그건 무슨 말이야?”


『“쓰스슥!”』

고 상무가 싸인을 마치고,


“우리 귀국하면 담당변호사가 정식계약서 전달해 줄 거야. 물론 그건 비밀계약서고, 변호사도 내용은 몰라."


"비밀...계약서?"



"거기엔 지금 네가 적어 넣은 계약사항도 포함돼 있고, 아까 내가 말했던 제일건설 며느리로서의 품위를 지키는 것, 또 계약결혼과 관련된 내용은 영구히 함구한다는 것까지도 포함돼있어. 만약 이 사실을 발설할 경우 책임을 물어서 계약금의 10배를 배상한다는 것까지.”


“계약금 이라니?”

처음 듣는 얘기였다.


“너네 부모님이 상견례 끝나자마자 내 회사로 찾아와서 한다는 얘기가 뭐였는 줄 알아?”

'우리 부모님이? 회사로 찾아 갔어?'


“고이고이 기른 딸 데려가는 데, 왜 돈 한 푼 안 내냐고. 결국 돈 달라는 이야기 뿐이던데? 너네 부모.”

“뭐야? 그런걸 왜 지금 얘기해!”



“부모님 한 분 당 1억 5천씩, 총 3억. 이혼하셨단 얘기는 왜 안했어?”


“하..........”

갑자기 가슴이 꽉 막힌 듯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너네 아버진 빚도 많으시던데? 당연히 한의사도 아니고, 어머닌 이대 앞도 못 가본 고졸에, 식당 서빙 직원.”


“그...그게....”

처음이었다. 부모님 때문에 부끄러웠던 건.  


“돈 앞에서 환장 안하고 벌벌 기지 않을 사람, 이 세상에 하나 없어! 너네 부모님도 그랬고, 아마 너도 똑같이 될 거야. 두고 보자고!”


『“탁!!”』


고 상무가 펜을 내던지곤 객실 문을 향해 걸어 나가자  


“흐흑....”

난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그 자리에 바로 주저앉았다.  


그런데

“아 참! 깜빡 했네! 내가 얘기 했나? 우리 내일 화보 촬영 있는 거.”


"뭐?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이렇게 기운도 없고, 심지어 신부 대기실에서부터 너무 울어서 퉁퉁 부은 눈이 아직 가라앉지도 않았는데!!!

난 지금 그럴 기분 아니라고!!!


“배고파도 적당히 먹어. 낼 찍는 사진, 우리 신혼여행 공식 화보로 모든 언론사에 배포될 예정이니까. 돼지같이 안 나오게 조심하라고! 우리 결혼식 때처럼 이상한 사진 안 나오게!!!


『“탁!!!”』

객실 문이 닫히고


“으어!!!!!!!!!!”

갑자기 단전에서부터 끓어 오르는 화!!!


“돼지라고? 내가 돼지냐!!! 우이쒸!!!!”


『“푹푹!!! 퍽퍽!!!”』

『“퍽!!! 퍽!!!”』

아무리 호텔방 베개를 훔씬 두들겨도 분이 가시지가 않았다.  


그렇게 열을 낸지 10분도 안 돼서

“휴....아 힘들어.”

기진맥진. 온 몸에 기운이 다 빠져버렸다.


이노무 저질체력!

『“푸욱”』

폭신폭신한 침대에 대짜로 뻗어 버리고 그제서야 눈에 들어 온 호놀룰루 해변.



“아!! 예쁘네. 하와이 바다.”

테라스 밖으로 펼쳐진 하와이 바다는 풍덩 빠지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계약금 1억 5천, 1억 5천. 총 3억.


‘공양미 삼백석?’

갑자기 거기서 왜 공양미 3백석이 떠올랐는지


‘인당수.....하와이 인당수?’

찬란하게 빛나는 하와이 인당수는 서글프게 아름다웠다.


**


다음날, 해변 화보 촬영장.


“눈은 왜 이렇게 부은 거야? 누구한테 맞았어?”


“남의 속 긁지 말고 조용히 하시지? 바다로 뛰어드는 거 보고 싶지 않으면!”

본의 아니게 눈물로 지새운 독수공방 첫날밤. 그리고


“신부님! 신랑님이랑 좀 붙으셔야겠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화보 촬영.


“그런데....저 사람들 신혼여행이라고 안 그랬어? 분위기가 왜 저래? 첫날밤에 싸웠나?”

“저도 다른 셀럽부부들 촬영 많이 다녀봤지만 이렇게 멀뚱한 사람들은 처음 봤어요! 생판 모르는 남처럼!”


“어제 제일건설 홍보팀에서 신경 좀 써달라고 전화 왔었는데....어쩌죠?”

이번 촬영을 담당한 스튜디오 직원들은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계속 우릴 주시하고 있었다.


“옷은 왜 그런 거야? 아저씨도 아니고?”

“스튜디오에서 주는 대로 입은 거야.”

해변의 웨딩마치 컨셉으로 진행된 화보 촬영.   



“촌스럽게 반바지에 정장차림이 뭐람!”

고 상무는 검은 반바지에 하얀 셔츠, 세미 턱시도 차림이었고


“야! 조용히 해! 사람들 쳐다보잖아.”

“흥!”

난 솜사탕 같은 튜브탑 드레스에 부케를 들고 고 상무와 나란히 서있었다.



“더 가까이 붙으셔야겠어요!! 가까이!!”


“저리가!!! 더워 죽겠어!!”

“실장이 붙으라잖아!!!”

바로 앞에 서 있는 스텝들 앞에서 우린 대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아....더워....’

아침부터 뜨겁게 달궈진 모래사장.  


“하와이치고 오늘은 쫌 더운데?”

우리나라 7월쯤 되는 초여름 날씨에 시간이 갈수록 해변의 온도는 급속히 올라갔다.


“신부님! 신랑 분이랑 팔짱 한번 껴보시겠어요?”

“팔짱이요?”

우린 아직 손도 안 잡아본 사이, 당연히 스킨십이라곤 아무 것도 튼 것이 없었다.


“얼른 끼라고 그럴 때 껴! 그래야 빨리 끝나지. 더워 죽겠는데!”

“쳇.”

그런데 고 상무와 팔짱을 끼면서 나도 모르게


“우왁!”

몸이 기우뚱! 높은 하이힐 때문에 중심을 잃고, 살짝 고 상무 품으로 기대게 됐다.


“왜 그러는 거야. 나한테 안기고 싶어?”

“뭐얏!”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두근거리는 내 심장. 그리고


‘어? 몸이 왜 이러지?’

머리가 살짝 핑 돌면서 하늘이 노래졌고


“야!! 너!! 왜 이래!!”


‘으........’

결혼식 전부터 컨디션 난조더니 난 진짜로 정신을 잃고 고 상무 품으로 쓰러져 버렸다.


**


“야!! 서연두!! 정신 차려!!!”

“어...어지러워....”

심한 두통과 함께 찾아온 어지러움과 열감, 등은 이미 땀범벅으로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온 몸이 불덩이잖아!!”

햇볕에 노출된 부분이 많았었는지 불덩이처럼 달아올라 있는 온 몸.


“야!! 너!!!!!”


‘...............’

쇄골이 한껏 드러난 미니드레스 위로


『“촤락!!”』

순식간에 고 상무의 하얀 셔츠가 입혀졌고


“사람 좀 불러 와요!! 어서!!!”

스텝들에게 소리치던 고 상무는


“안 되겠어....”

날 품에 안고 해변의 한 칵테일 바로 뛰어 들어갔다.


『“Whatever is the matter?”』

『“She is passing out from heatstroke!”』

눈을 감고 고 상무의 품에 안겨 있는 동안 사장님과 나누는 몇 마디의 영어가 들려오더니


“야!! 서연두!! 괜찮아? 정신 차려 봐!!”

 “............음....”


‘이 느낌은 뭐지?’ 나의 뺨이 촉촉한 맨살에 닿으면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고


“여기......”

잠깐 동안 정신을 잃었던 내가 눈을 슬며시 떴을 땐  


“Are you OK?”

“우왓!!!!!”

하와이 원주민이신 카페 사장님의 품 안!! 덩치 큰 마우리족 아저씨가 나를 안고 있었다.


“으악! 고 상무!!!”

찬물을 확 껴얹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어 나도 모르게 사장님을 박차고 나와  

눈을 부릅뜨고 고 상무를 찾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잠깐 중단했다가 열기가 좀 식으면 그때 다시 촬영하죠.”

나름 보호자라면 보호잔데 날 이렇게 버리고 가는 게 어딨어?


내심 섭섭한 기분이 들었지만 다행히도 고 상무는 멀리 가지 않고 칵테일 바 바깥 쪽에서 촬영 상황에 대해 스텝들과 의견을 나누는 중이었다.


“Are you OK?”

“아임 오케이, 오케이. 하하!”

몇 알지도 못하는 짧은 영어 실력 탓에 당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사장님을 훠이- 휘이- 물러가게 했고,


“일정에 차질은 없는 거죠.”

“저희는 괜찮은데 촬영 장소가...”

그런데 웬일인지 셔츠를 벗어 던진 고 상무의 상체가 멀리서도 도드라져 보였다.


“연두씨! 정신이 좀 들어요?”

얼음주머니를 가져온 직원이 내 이마와 눈두덩이 사이를 가려버리는 탓에 고 상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카페 사장님 말씀이, 간혹가다 이렇게 해변에서 쓰러져서 오는 손님들이 있데요.”

“그래도 이만하길 천만 다행이에요.”

난 얼음주머니로 열을 식히며 다시 바깥을 바라봤지만, 이미 고 상무는 사라진 뒤


“고 상무는요?”

이쒸!! 내가 아무리 싫어도 그렇지!! 외간 남자! 그것도 마우리족 아저씨에게 나를 던져버리고

연기 사라지 듯 자취를 감춰버리다니!!


“고 상무? 아! 신랑 분이요? 신랑 분은 먼저 리조트로 들어가셨어요.”

“네?”


“실장님이 연두씨가 힘들어 하는 것 같다고, 좀 쉬었다가 세 시간 뒤에 다시 촬영하자고 하셨어요."

 

"장소는 지금 묵고 계시는 리조트 야외수영장에서 진행할 거고 의상은 이따 메이크업 팀이 갖고 갈 거니까 그때 갈아입고 나오시면 되요.”


“네....”


그리고


『“허걱!!!!”』


메이크업 팀이 전달해 준 의상은


‘이걸!!! 어떻게 입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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