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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 빚는 영양사 Dec 23. 2024

유령신부

2020.04.06

‘어떻게!!! 이럴 수가!!!’

계약결혼. 그래도 어디까지나 대등한 결혼이라 믿었다.


부모의 재산을 받기 위한 수단인 것도, 3년 뒤엔 서로 헤어질 거란 것도

다 알고 있었는데


『”흐흑....“』


처음부터 두 사람이 짜고 쳐놓은 덫. 그리고 그 덫에 걸린 희생양이 됐다는 걸 아는 순간  



“흐흑...........”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이 자리엔 나대신 누가와도 상관없는 일.

설사 나 아닌 유령이 와도 저 사람들은 기꺼이 반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란 사람은, 나의 인생은. 난 존재감 없는 유령신부가 되리라는 걸

그때부터 직감하고 있었다.  


‘신혜정!!! 재수 없는 기지배!’


“방금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

“무슨 소리?”


난 눈물을 닦으며 신부 대기실로 돌아와


“꼭!!! 되갚아 주겠어!!!”

이를 갈며 분을 삭혔다.



‘3년만 참으면 돼!! 3년만!!!’

3년만 참으면 고 상무 재산의 반이 내 것이 되고,


위자료와 보상금까지 요구하면 어마무시한 돈이 떨어질 거라

나 자신을 위로했다.


‘그래....엄마, 아빠를 위해서 내가 참자.’


생활고에 시달리는 부모님을 위해, 나의 남은 삶을 위해

기꺼이 3년을 희생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참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되돌릴 수만 있다면! 아마 결혼식장을 뛰쳐 나왔을거다.


일이 이렇게 어긋날 줄은 몰랐으니까.


**


[W호텔 야외결혼식장]


"자! 그럼!! 다음으로 신랑 신부 맞절이 있겠습니다! 신랑 신부! 맞절!!"


"........으흑...."


아까 우연히 듣게 된 고 상무와 혜정이의 대화에 눈물이 멈출 줄 몰랐고,

신부 대기실부터 나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얼굴은 이미 눈물, 콧물 범벅에 화장이 다 번져버려서 엉망진창!

사회자의 말에 그와 내가 마주보고 맞절을 하려는데!!


"푸웁....."


'웃어?'

엉망이 돼버린 내 얼굴을 보고 고 상무가 빵-터져서 큭큭 거리기 시작했다.


"야. 그만 웃어. 신부가 예식장에서 뛰쳐나가는 꼴 보고 싶어? 어?"

어금니를 꽉 깨물고 그의 귀에 대고 읖조리듯이 속삭였지만



'사람들은 내가 그냥 슬퍼서 운다고 생각하겠지?'

하객들에게 비친 나의 눈물은 그저 결혼식을 슬퍼하는 신부의 눈물일뿐...


'아마...내가 계약결혼을 위한 유령같은 존재인 줄은 아무도 모를 거야.'

신혜정! 그 기지배만 빼고!!!


"풉....푸웁...."

고 상무가 미친 사람처럼 큭큭대기 시작하던 그때!



『"꺄아!!! 오빠 안 돼요!!!!"』

『"프린스 오빠!! 가지 말아요!!!"』


하객 자리에 숨어 있다가 우르르 몰려나오는 극성팬들!!

그런데!!!


『"프린스 오빠! 가지 말아요!!!"』『"결혼은 안 돼요!!!!"』

『"으악!!!"』우당탕탕탕- 『"안 돼! 오빤 내 꺼야! 으악!"』


고 상무에게로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여러 명의 팬들때문에 결혼식장은 아수라장이 됐고, 게다가 서로 고상무를 갖겠다며 버진로드 위에서 팬들끼리 난동을 부리기시작했다.  


"헉!!!!"

팬들을 피해 주례석으로 도망가는 신랑과


"경호원들 뭐해!! 어서 저것들 치워버리지 않고!!!"

"네!!"


연행돼 듯 경호원들에게 끌려나가는 수십여 명의 팬들. 그리고 계속해서 고 상무에게 좀비처럼 달려드는 극성팬과 또 그들을 막으려 달려드는 경호원들.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었다.


"으아아아아- 내 결혼식이라고!! 고 상무 결혼식이 아니라!! 내 결혼식!"


결혼식의 꽃은 신부 아니었던가? 아무 주목도 못 받으며 내 얼굴은 눈물콧물 범벅에 팬더가 되지 일보직전. 난 그래도 있는 힘껏 부케를 던져가면서 내 옆으로 달려드는 팬들을 막아내기에 안간힘을 써봤지만 역시 역부족이었다.


"경호원! 경호원! 어디갔어!"

웅성웅성 어수선해진 하객석에


"으아아아아-"

내 머리채를 잡는 팬들 덕분에(?) 난 감정이 더 복받쳐서 있는 힘껏 울기 시작했고, 눈물이며 콧물이며 얼굴에서 나올 수 있는 분비물들이 멈추질 않고 있었다.



게다가 꽉 조여오는 웨딩드레스 탓에


"허억....허억....허억..."

숨은 더 가빠져 왔고. 결국 팬들의 난동질을 피해 주례석 위에서 숨을 몰아 쉬다가


"허억.......윽."

결국 "쿵!"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저...저기....괜...찮아?"

"허억......숨...숨이 안 쉬어져."



그 순간 기괴한 소리와 함께 결국 웨딩드레스 옆구리가 터져나갔고, 그 바깥으로는 나의 후덕한 옆구리 살들이 빼꼼히 고개를 드러냈다.


"야! 연두! 서연두!"

하지만 고 상무는 나의 쪽팔림을 눈치채지 못하고 굳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나를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고,


'아 왜! 이딴 극성팬들이 몰려와서 내 결혼식을 망치느냐고!!! 왜!!!!'

나는 더이상 눈을 뜰 수 없었다. 쪽팔려서.


그런데 그때 어디서들 나타났는지 대포카메라를 챙겨온 극성팬들과 파파라치들이 내 엄한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허억!!!!!"

"그만 찍어요! 그만!"


고 상무가 급하게 벗어준 턱시도 자켓으로 나의 얼굴과 상체를 가려주는 동시에. 나는 사망....아니 쪽팔림으로 영혼 사망.


'하....망.했.다.'

그리고


"경호원! 경호원! 어디갔어!"


'회...회장님?'

갑작스런 사고에 노여워하는 회장님의 목소리가 자켓 바깥에서 쩌렁쩌렁 울려댔다.

앞으로 내 결혼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은 느낌.


'흐엉.....망했다.'

나....이 결혼 물리면 안 될까?


**


“객실 키는 여기다 둘게.”


『“탁!”』

대리석 탁자 위에 카드키를 올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내 방은 바로 앞에, 303호. 우리 가족 전용 리조트니까 시끄럽게 굴거나 방해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무슨 일 있으면 내 방문 두드리지 말고 1층 안내데스크에 얘기해. 쉬는 데 방해 받는 건 질색이니까!”


‘헐!!!!’

방해하지 말라니! 그래도 명색이 허니문인데!



기분은 못 맞춰줘도! 같이 밥은 먹어 줘야 될 거 아니야! 천혜의 낙원, 하와이까지 와서! 정말!


『“꼬르륵....”』

난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미칠 지경인데!!!


『“꼬르르르륵!!!!!”』

주책맞게 배에서 엄청 큰 소리가 났다.


“뭐? 지금 뭐라고 그랬어?”

“아!! 아니!”

더 큰 소리가 나기 전에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밥은? 밥은 어디서 먹어?”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전화로 0번 누르고 직원한테 얘기해. 뭐든 다 갖다 줄 거야. 지배인한테 얘기해놨으니까.”


“나가서 먹으면 안 될까? 바다도 보고 싶은데...”

"뭐?"



귀찮은 듯 뾰루퉁한 표정을 짓고 있던 고 상무가 갑자기 인상을 쓰며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또 파파라치한테 엄한 사진 찍히고 싶어서 그래? 그 거지같은 얼굴! 관리도 못 할 거면 들고 다니지도 말아야지!”


“뭐? 그게 무슨 말이야! 난 돌아다닐 자유도 없어?”


“결혼식에서 찍힌 사진때문에 내가 얼마나 개망신당한 줄 알아? 너 이제 평범한 여대생 아니고! 공식적으로 제일건설 후계자 부인이야! 물론 3년 뒤엔 아니겠지만.”


“그래서! 뭐!”  


“나도 나름 부모님 지원 받으려고 후계구도 갖추고, 착실하게 쌓은 이미지! 너 때문에 무너뜨리기 싫다고! 그러니 3년 동안은 행동 하나, 처신 하나에 신경 써! 우리 집안까지 웃음거리 만들지 말고!”


모욕적이었다. 그런 말투


“우리 스캔들 기사! 고 상무 당신이 뿌린 거라며?”

“뭐? 그건 어디서 들었어?”



“결혼 전에 돌았던 스캔들 기사! 당신이 뿌린 거 다 알고 있어! 스타트업인가 뭔가 때문에! 상당히 급하셨던 모양인데, 내가 이 결혼 무효라고! 고 상무랑 못 살겠다고 언론에 떠벌리고 다니면! 당신도 부모님 지원 못 받는 거 아냐?”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틱!”』

난 핸드폰에 저장 된 녹음 파일을 틀어



『“이왕 이렇게 된 거 솔직히 말할게. 나 지금 부모님 지원...절실하게 필요해. 스타트업 하나 세우고 싶은데....결혼하자! 계약결혼!!”』


“너 이게 무슨 짓이야!!!!”


“만약 이 파일이 언론사나 SNS로 퍼져나간다면? 나는 그렇다 치고, 고 상무는? 부모님 재산 바라고 순진한 여대생 꼬셔서 계약결혼이나 하는 파렴치한으로 몰릴 텐데? 더군다나 제일건설 후계자인 당신에게 기대가 큰 부모님은 어쩌고?”


“너 지금 제정신이야? 당장 녹음파일 이리 내놓지 못해!”


“훗! 고 상무! 저장된 녹음파일이 여기에만 있는 줄 알아? 그리고 내가 돈이면 환장하고 벌벌 기는 사람인 줄 아나 본데! 나도 더 이상은 못 참아! 우리 갑을 관계 분명히 하자고! 또 하나! 앞으로 3년 동안 나를 공식적인 와이프로 삼을 거면 나한테도 그에 맞는 대우와 예의는 지켜줘야 하는 거 아냐?”


“..............”


“자!!!”

그에게 내민 계약서 한 장.  


“결혼....계약서?”

신부대기실에서 울면서 한자 한자 꾹꾹 눌러 쓴 결혼계약서.


하나. 계약 기간은 3년.

둘. 결혼 이후 얻게 되는 모든 재산과 집 명의는 부부공동 소유로 한다.

셋. 육체적 관계는 서로 요구하지 않는다.

넷. 집안일은 각자 알아서.

다섯. 상대방의 이성친구나 개인사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여섯. 서로 예의를 갖추고 존중하는 마음을 갖는다.

일곱. 새로운 계약사항 발생 시 의논하고 추가 한다.


군데군데 눈물이 번지긴 했지만 이를 악물고 적어 내려간 계약서였다.  


“계약서에 서명할 때까지 혼인신고고 뭐고 없어! 그러니 빨리 싸인 해!”  


『“탁!!”』

탁자 위에 펜을 올려놓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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