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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객 S Jun 12. 2023

순수와 환상 그리고 폭력

영화 <유리정원>

네 번째 영화: <유리정원>
감독: 신수원
선정자: S


[C, E, J, P, S님이 입장하셨습니다]


J: 영화는 다들 어떠셨나요? 전 불호였습니다....

C: 저도 제 취향은 아니었던거같아요. 소재나 어른 동화같은 분위기는 좋았어요. 어디선가 이과소재로 문과내용을 말하는 영화라고 한 거 너무 공감이에요.

P: 저도 제 취향은 아니었고....2017년 영화라고 하기에는 연출이나 표현해내는 방식이 조금 더 과거의 영화 같은 느낌이었어요.

J: 다프네 신화도 떠오르더라고요. 그걸 몽환적으로 해석해낸 거 같아요.


다프네 신화

아폴론이 에로스에게 장난을 걸었는데 화난 에로스가 아폴론에게는 사랑의 화살을, 다프네라는 강의 요정에게는 납화살을 쏜다. 다프네에게 반한 아폴론이 그녀를 쫓아다니지만 다프네는 아폴론이 너무 싫은 나머지 도망을 다닌다. 그러다 강에 도달해 강의 신인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한다. 강의 신은 다프네를 나무로 만들어준다. 아폴론은 눈물을 흘리며 월계수가 된 다프네의 잎을 모아 왕관을 만든다.


E: 그냥저냥 괜찮게 봤는데 제대로 이해를 못한 것 같아요.

S: 저는 개봉 당시 포스터부터 꽂혔거든요. 너무 좋아해서 소장해놓고 계속 돌려봤어요. 왜 불호라고 하는지 이해는 가는데 좀더 영화를 세심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는것 같아요. 화면에 들어찬 나무만큼이나 은유로 가득한 영화거든요. 상당히 예술적인 영화라고 생각해요. 저는 판의 미로가 생각났는데 동화적인 분위기지만 결코 아름답지는 않거든요.


줄거리

재연: 한쪽 다리가 불편하다. 대학 연구실에 소속되어 있으며 교수를 사랑하고 있다. 인간이 광합성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지만, 연구실 사정과 현실성이 없는 주제라는 이유로 밀려나게 되고 연구 아이템은 연구실 동료에게 빼앗기고 만다.

지훈: 무명 작가. 유명 작가의 표절 의혹을 찌르며 문단에서 눈엣가시로 찍힌다. 뇌에 이상이 생겨 반신 마비가 오기 시작한다. 어느 날 근처에 살던 재연이 짐을 싸 떠나는 걸 보고 그녀의 흔적을 찾아 숲으로 따라간다.


#재연

J: 전 비둘기가 재연이를 나타낸다고 생각했어요. 잠깐 도시에 내려왔던 건 재연이가 연구실에 다니던 때를 말하는 것 같고요. 원래 그 비둘기가 산에서만 산다고 하잖아요. 나중에 죽어가는 비둘기에게 녹혈구를 주입하는데 재연이 걔를 잡고 끝까지 녹혈구 연구를 포기하지 않은건 재연의 프라이드라고 생각해요. 모든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간 후에야 비둘기가 살아나서 숲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재연 그 자체였어요.

C: 재연이 다리가 성장이 12살 때 멈춘 것도 재연이 간직한 순수함을 나타내는 게 아닐까 싶어요. 순수한건 사실 좋은건데 순수함을 잃은 인간들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장애로 작용하는.....그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J: 재연은 늘 그 자리에서 자연의 그대로 행동하는데 그걸 오염됐다고 판단하는 건 이미 오염된 화자고 우리들이라는 해석도 봤어요.


#연구

J: 그것도 좋죠. 인간은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데 나무는 서로 상처 주지 않으려고 부딪히지 않으려 한다고.

나무들은 가지를 뻗을 때 서로 상처를 안 주려고 다른 방향으로 뻗어요. 근데 사람들은 안 그래요. 서로를 죽여요.

S: 무엇보다 인간이 광합성을 하면 다른 생명을 죽이지 않아도 되잖아요. 소설 <채식주의자> 생각도 나요.

J: 그렇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나무로 만들어도 될 권리가 재연에게 주어지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사체에 실험을 계속 한걸 보면 사랑도 있었겠지만 연구에 대한 집착도 있지 않았을까요.

S: 복수심 같은 것도 있었다고 봐요.

J: 교수 팔 떨어질 때 재연이 현실을 직시한 거 같았어요. 자기 연구가 실패했다는 걸요. 사실은 비둘기가 다시 살아났고 자기도 나무가 됐지만 그 순간엔 좌절했을 거 같고. 그래서 교수도 버렸겠죠. 영화 내용상 가망 없는 연구긴 했어요. 제가 투자자였어도 투자 안했을 것 같아요. 

S: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노벨상이 안나오잖아요

난 이제 지쳤어요 땡벌

J: 줄기세포랑 직결되는 윤리적인 문제라서 누구도 위험 도박에 배팅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 클거라고 봐요.

C: 재연이 윤리적으로 민감한 연구를 할 수 있었던것도 순수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순수함에는 선악이 없다고 하는 말도 생각났고. 그래서 교수한테 녹혈구 주입한것도 나쁜 일이라는 생각을 못한게 아닐까 싶어요. 사회적 관점에서 보기엔 범죄지만 재연에게는 아니었을거같아요.

J: 어릴 때부터 믿음이 강했던 거겠죠. 아버지가 나무 자르다가 재연이 엄마를 잃고 나무에는 생명이 있다고 믿었잖아요. 재연이도 그 믿음을 이어받은 거 같고. 자기는 늘 나무가 되고 싶었는데 그 소망을 교수에게 이뤄주는 셈이잖아요. 교수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 없이.


#소설 <유리정원>

아버지는 이승에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나무가 된다고 했다


S: 저는 진짜로 재연이 나무가 된 건 아니라고 봤어요. 재연이 마지막에 숲으로 걸어들어갈때 다리를 안 절잖아요. 화자는 지훈이고 지훈의 소설 속에서는 재연이 다리를 절지 않아요. 실제로 재연은 실종된것 뿐이지만 지훈의 환상이 사람을 닮은 나무에 재연을 투영하고 재연이 행복했으면 하고 바란 거라고 생각해요.

J: 범죄자 주제에 애매하게 양심있는 척

S: 아름답고 순수했던 그녀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염병

J: 출판사 직원이 그러잖아요. 너는 항상 결정적인 순간에 도망친다고.


너도 그 여자 이용한 거잖아. 이창대한테 복수하고 싶었지? 이창대가 표절한거나 네가 그 여자 인생 훔친거랑 뭐가 달라?


S: 초반에는 지훈과 재연의 공통점을 번갈아가면서 보여주잖아요. 표절이라는 사건이 있었고 몸이 불편하고. 감독님이 그랬거든요. 지훈도 처음에는 피해자라고 볼수 있었지만, 자신보다 더 약한 상황에 있는 여성의 삶을 훔치면서 창작이 어떤 도덕의 수위를 넘어가고....이런 보통사람도 얼마든지 가해자가 될수 있다고요.

J: 재연을 자기 욕망대로 해석한 게 너무 싫었어요.

S: 재연도 그걸 지적하잖아요. 소설 속의 나는 당신의 욕망 아니냐며.

J: 저는 재연이가 자길 뮤즈로 쓰는 소설을 그만두라고 하길 바랐어요. 그런데 재연이는 소설속 자기 자신을 보면서 만족하는 것 같았고 게 나르시즘같은 요소로 작용하는 거 같아서 별로였어요.

S: 저는 재연이 자기 실험을 알리고 싶어서라고 생각했어요. 작가가 결말을 그따위로 쓰지만 않았어도 괜찮았을 텐데. 그게 저였다고 생각해봐도 계속 쓰라고 했을것 같았어요. 공감이 됐기때문에 딱히 나쁘게 보이진 않았네요.

J: 자기 연구가 의미 있고, 또 성과를 낸다는 걸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말하고 싶었겠죠. 근데 결국은 애매한 예술가(지훈) 하울 같은 겁쟁이 때문에 이따위로 된 거지

(웃음)

J: 하울 생각도 나요. 하울이 황야의 마녀를 건드린 게 '재밌을 것 같아서'였거든요. 근데 나중에 도망쳤대요. 실체를 아니까 무서워져서

S: 딱이네 딱

J: 뮤즈로 이용해먹으려다 겁먹어서 도망가고. 불초상(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보고 이걸 보니까 속 뒤집어지는 줄 알았어요.

S: 그걸 노린거라고 보는데요. 순수한 뮤즈라는 프레임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J: 그래도 화자가 소설가인 게 정말 싫었어요. 그걸 왜 소설가의 시점에서 봐야하는지 모르겠어요.

C: 저는 화자가 소설가인게 관객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범죄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다고 생각해요. 감독님도 그걸 노렸을거같고....너무 잘 노리셔서 괴로웠구요.


#순수한 건 오염되기 쉽죠

J: 문근영씨를 포커싱하는 구도가 마음에 안 들었어요. 장애를 가진 여성이 장애를 가지지 않은 여성에게 부러움을 느끼는 듯한 하이힐 장면이요. 자기의 섹슈얼리티 부재를 하이힐 신고 걸어다니면서 보여주는 거 같아서 너무 괴로웠어요.

C: 하이힐 신고 춤추고 하는 것들이 재연이 사회에 나와서 겪은 폭력이라고 할까요. 이 경우에는 남성권력의 폭력이겠죠. 그런 것들을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넣은건지 그냥 넣은건지를 잘 모르겠네요.

S: 수희가 화장하고 오는 거라든지 대부분의 남자들이 생각하는 예쁜 여자의 표상에 부합하면 나도 사랑받을수 있겠지. 거기서 화장이랑 치마가 나온거라고 봐요. 사실 재연이 여성성 등등을 깊게 생각할만큼 생각이 자란 아이는 아니거든요.

J: 그걸 2017년도에 보여줬다는 게 이해가 가질 않아요. 3년전이면 그래도 젠더나 페미니즘이 어느정도 얘기가 나왔던 거 같은데.

P: 저도 그래서 2017년 작품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C: 사회가 규정하는 여성성에 부합하는걸 오히려 비판하는 게 아닐까요?

J: 순수한 건 오염되기 쉽다는 문구를 가져와서, 그런 걸 신경 안쓰던 아이가 교수를 사랑하면서 여성성을 어필하려고 치마나 하이힐에 관심을 갖게 된거니 순수함이 오염된 거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네요.

S: 결국 맥은 같다고 봐요. 재연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상징하는 아이인데 교수와 작가가 그 숲에 들어와서 재연이라는 인간상을 파괴하잖아요. 유리정원이라는 제목부터 자기를 숨길줄도 모르는 너무나 투명한 아이인데 거기에 자기들 환상을 덕지덕지 발라서 말이에요. 소설가의 관음적 시선 같은 거요.

J: 그건 알지만 순수하고 선한 여성이 타락해가는 모습을 남성의 관점에서 보여주는 게 매우 불쾌했어요.

S: 우리가 불쾌함을 느낀 게 맞는 거죠.

C: 그걸 타락이라고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J: 오염이 맞는 것 같네요.

S: 저는 그 문구 자체는 마음에 안드는데 오염보다는 부쉈다는게 맞는것 같아요. 오염된 것은 다른 것을 또 오염시키기 마련인데 재연은 그냥 '상처입은 사람들'인 숲으로 들어가버리잖아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나무가 되어서요. 재연이라는 비둘기(환상에 부합하지 못한)를 인간들이 쏴 죽인 셈인거고 비둘기는 다시 살아나 날아가 버리고 재연은 숲으로 들어가죠. 인간들이 얻을수 있었던 선물(녹혈구)을 얻을 기회를 스스로 차버린 거라는 은유라고 보거든요.


#주저리주저리

S: 마지막에 삽입된 쇼팽이 너무 좋았어요. 어떻게 거기서 그 음악을 넣을 생각을 하지. 미친거 아니에요? 너무 좋아(쇼팽 덕후)

(삽입된 음악은 쇼팽 왈츠 A단조이다)

C: 맞아요. 음악이 인상적이었어요

E: 제가 요즘에 피아노로 치던거라 뭔가 더 괜히 익숙하고 그러네요. 영화 화면도 참 좋았어요. 유리정원도 진짜 예쁘고 방에 나무 모양으로 빛 들어오는 것도. 저도 그 유리정원을 갖고 싶었어요. 유리라 덥겠지만.....

(웃음)

S: 녹혈구 없어도 광합성 할 것 같구요.

C: 유리정원 비주얼이 굉장했어요. 숲속에 새하얀 오두막에 예쁜 실험기구 쫑쫑 놓여있고 막

S: 환상을 그대로 갖다놨어요.

C: 숲도 너무 예뻐서 찾아봤는데 우포늪이라고 하더라구요.

S: 여러 숲에서 번갈아가면서 촬영을 했대요. 정확히는 우포늪 옆인데, 창녕 대봉늪이랑 전주 완산공원이래요.

(.....)

C: 근데 재연은 왜 그렇게 교수를 사랑했을까요?

J: 부성애를 기대했던 거라고 봐요. 재연의 아버지가 나무를 아끼고 사랑했듯이요. 재연이가 교수를 처음 만났을 때 다리를 저는 자신을 위해서 보폭을 맞춰준 사람이 교수가 처음이라고 하잖아요. 그런 다정한 사람은 아버지같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영화를 보는 관점

S: 아까부터 토론하면서 느낀건데 이 영화를 현실에서 좀 떼서 봤으면 좋겠어요. 유미주의적 관점에서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어떻게보면 판타지 영화거든요.
우리가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보잖아요. 이해못하는 그림이 많아요. 우리가 그 그림에서 각자 보는 원형이 다르고 무엇보다 감각적인 영향이 다를거예요. 큐레이터의 설명이 있고 작가노트도 있겠지만, 그림도 설명이 가능한게 있고 불가능한게 있거든요. 저는 그림 그 자체로서 완결되는게 있다고 봐요. 이야기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영화에서 현실을 보고자 하면 얼마든지 볼수는 있겠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메세지를 담고자 한 영화는 아니라고 봐요. 영화의 배경이나 음악, 소품, 그리고 배우가 맡은 의미들과 우화적 표현같은 것들. 이 영화는 그런 성질이 더 강하지, 앞선 영화들과는 조금 다르게 봐야할것 같아요. 제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그런 은유적 장치 때문이거든요. 그래서 다들 불호라고 했을때 좀 슬펐어요. 오늘 토론이 제가 기대했던 흐름과 다르기도 했고요.

J: 이런 영화는 저랑 안 맞는 거 같아요.....

S: 안 맞을수 있죠. 때로 예술은 현실과 평행선을 걷는다고 생각해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거죠. 갑자기 너무 멀리갔네요.

C: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야기 나누면서 처음 생각했던것보다 더 괜찮은 영화구나 싶었어요.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요.

S: 저는 사실 여러분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전혀 불쾌함을 못느꼈거든요. 불쾌한 캐릭터를 옹호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그릇된 미화라는 걸 잘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는 영화였어요.

C: 저도 보는 내내 불쾌하고 되게 괴롭긴 했거든요. 그치만 불쾌하다고 나쁜 영화는 아니니까요.




산산이 부서진 재연은 숲으로 들어간다. 아니, 돌아간다. 그런 재연을 감싸듯 안개가 자욱하게 낀다. 안개가 끼면 앞을 제대로 분간할 수 없게 된다. 위험한 공간이 되는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보며 '숭고하다' '아름답다'는 말을 내뱉는다. 나무와도 같은 성정을 가진 재연에게 숲은 집이나 다름없지만, 재연을 배신한 교수에게는 그를 집어삼키는 늪이다. 대체 누가 숲을 순수라고 하였는가. 누가 순수를 오염시켜 늪으로 만들었는가.

한 존재에 멋대로 환상을 뒤집어씌워 이용한 자들. 그리고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된 순수를 그린 잔혹동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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