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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객 S Jun 16. 2023

달빛 아래서는 모두 푸르게 보여

영화 <문라이트>

여덟 번째 영화: <문라이트>
감독: 배리 젠킨스
선정자: P


[E,N,P,S님이 입장하셨습니다]


N:어떻게 보셨나요? 저는 재밌게 봤어요

S:저는 조금 지루했네요....제가 이해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선 게 아닐까

E:영화가 좀 차분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저는 영화 색감이 좋았어요

P(영화 추천자):저는 예전에 한 번 보고 오늘 두 번째로 봤는데 음악이 좋았어요

N:사람들이 다 왕가위 영화 생각난다 그러던데 진짜로 왕가위 영화 같아요. 분위기라던가 촬영이. 케빈이 담배 피울 때 담배연기 흩어지는 장면에서 담배피는 양조위 느낌이었어요

P:유튜브에 아예 정리해놓은 영상도 있더라구요

https://youtu.be/66cIeb_nNO4

S:저는 P님이 이 영화를 추천하신 이유가 궁금해요

P:다른 모임에서 이 영화를 극찬한 분이 있어서 궁금하기도 했고 뭔가 얘기가 많이 나올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보니까 주제나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뻔하긴 한 것 같아서.....

(뻔하지 않았어요)


#벗어날 수 없는

N:흑인 남성의 맨박스를 생각하고 보니 슬프게 느껴졌어요.

E:맞아요. 샤이론이 처해있는 상황이 너무 사면이 꽉꽉 막힌 느낌이라

N:특히 주인공은 엄청 가난하고....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하면서 봤는데 엄청 마초적으로 자라났잖아요. 결국은 후안의 뒤를 따라서.      

(.....)

N:이 영화를 논하면서 계급 얘기를 결코 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등장인물 전부 할렘에서 태어나지 않았거나 조금만 형편이 나았어도 서로를 필연적으로 가해할 일은 없었을 텐데. 흑인이고 가난하고...그 모든 특성이 중첩돼서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는데도 갉아먹을 수밖에 없는 구조에 착취되고 있어요.

E:샤이론 괴롭히는 애들도 해봤자 고등학생이잖아요. 1부에서는 완전 애기들이었는데 그렇게 어려서부터 애들 괴롭히는 걸 어디서 배웠을까 싶고. 학교에서 그렇게 대놓고 괴롭히는데 크게 제지도 안 들어가고.

N:교정해줄 사람이 없고 멀쩡한 보호자가 없고.

E:걔네라고 가정형편이 샤이론이랑 크게 다를 것 같지가 않잖아요.

N:네가 어떤 사람이 될지 남이 결정하게 만들면 안 된다고 후안이 그랬었나. 말은 좋고 취지도 좋은데 그게 의미가 있는 말이냐고 내적으로 태클 걸고 싶었네요.

P:그렇죠. 결국 다들 그 말대로 살지는 못하니까.      

E:사실 어떤 사람이 될지 선택한다는 게, 본 게 있고 아는 게 있어야 선택을 하는데 상상속의 선택지조차 얼마 안 됐을 것 같아요. 결국 후안의 루트를 따라갔고....

N:그리고 정말 기억에 남는 게 샤이론네 엄마가 복도 한가운데에 서서 샤이론한테 고함치는 장면이에요 거기서 고함소리는 안 들리고 현악기 소리만 울리는데 그 짦은 순간에 엄마의 이성 잃은 모습을 본 샤이론 내면에서 파도가 휘몰아친 거잖아요.

S:연출이 진짜 좋았어요.

E:그 뒤에 대사랑 같이 다시 나온 부분도 좋았고. 정말 무섭기도 했고요.      

N:아까 파도 얘기해서 생각난 건데. 바다가 샤이론이 처한 상황을 비유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후안은(흐름에)이미 익숙해져버린 거고 샤이론이 거기서 살아갈 방법도 그것밖에 없다고 시인해버린 건데. 거기서 샤이론이 잡을 수 있는 구명줄도 후안밖에 없으니까.

E:그래서 카메라가 물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연출도 좋았어요.

N:아까 말씀하셨듯이 샤이론이 뭔가를 보고 배울 기회가 없었고 그나마 유일하게 가까운 출구는 후안이었잖아요. 근데 후안이 아는 방법은 거기에 그저 몸을 맡기는 수밖에 없었던 거죠. 샤이론한테 미안해하면서 눈물 흘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연장선에서 생각해보면 마지막 장면도 아련해요.      

N:파도치는 밤바다 앞에서 푸르게 빛나는 유년시절 샤이론의 몸....몸만 컸지 아직 리틀인데

E:후안 생각하면 계속 맘이 복잡하네요. 좋은 얘기를 해주고 싶어도 동네 환경이나 본인 위치에서 해줄 수 있는 말에 한계가 있으니까

N:가난의 피해자면서 동시에 가해자이고요.

E:그리고 후안이랑 샤이론은 다르잖아요. 후안은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길 수 있는데 샤이론은 그렇게 하려면 본인을 지워야 하니까. 근본적으로 그 말을 따를 수 있나 싶어요.

N:흘러가긴 흘러가는데 정체성을 부정하면서 흘러가게 되는거죠.

E:바다 앞에서 등이 너무너무 작아 보이고. 따돌림당한 이유도 그거였으니까요. 아무래도 그 이후에 샤이론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겠죠. 변한 것 없이.

S,P:저도 그럴 것 같아요

N:전 샤이론이 변할 것 같긴 해요. 본인한테 긍정적인 결과로 돌아올진 모르겠지만요. 케빈이 둑을 터뜨려버렸잖아요. 샤이론은 다시 리틀이 되어버린 거예요. 클로짓으로 살아온 세월이 길다보니 잘 갈무리할 것 같긴 하지만


#드러낼 수 없는

N:케빈이랑 만났을 때 샤이론 눈이 소 눈망울처럼 울망울망하는데 그거 보고 괜히 짠했어요. 그 억압된 정체성을 어른이 될 때까지 쭉 숨길 수밖에 없었던 그 환경이. 자기 모욕한 드레드 남자애한테 체어샷 날린 후로 계속 자기의 게이니스를 지워왔을 거 아녜요. 그게 마지막에 케빈이 who is you라고 묻는 순간에 그간의 설움이 다 터져 나와서

E:그래서 케빈을 만난 이후에 어떻게 변할지 궁금했어요. 변하기는 할진 모르겠지만, 워낙에 그 환경이 벗어나기 힘드니까

N:케빈한테만 잠깐 보여주고 계속 마초적인 가면을 쓰고 살아갈 것 같기도 해요.

N:뜬금없는데 둘의 성인 모습을 보고 저의 편견을 깨닫기도 했네요. 어릴때는 케빈이 좀 통통하고 샤이론이 깡말랐잖아요. 그래서 어른이 됐을 때 샤이론이 근돼되고 케빈이 낭창해졌을 때 혼자 눈이 커졌어요

(동감)

E:나를 만져준건 너밖에 없었어 하는데 그 말 하는 순간 인상이 갑자기 확 변하더라고요

N:거기서 너 샤이론 맞구나! 그리고 왼손으로 자기 오른팔을 소극적으로 쓸어내는 제스처까지 완전 어릴 때 샤이론 생각났어요.

P:배우 3명이 다 다른데 다 샤이론이라는 느낌이죠.

E:케빈한테 전화 받을 때 말도 약간 더듬고 집에 들어갔을 때도 아이고 아직도 애기구만 싶더라고요.

S:겉모습은 변했어도 본인이 어디 가겠냐며

N:샤이론도 샤이론인데 케빈도 정말 케빈이었어요. 저는 케빈이 주크박스에서 노래 틀 때 '힙합이나 나오겠지' 이러고 있었는데 구수한 뽕짝이 흘러나오면서

E:가사가 낯부끄러웠어요......

E:케빈 진짜 너무한 것 같아요. 바닷가에서 그렇게 온갖 무드 다 잡아가면서 해놓고 연락도 십 년 만에 먼저하고 갑자기 애있다고 보여주더니 차 안에서 막 꼬시고 억장이 와르르

N:케빈은 클로짓게이로 잘 살아가는데 샤이론 혼자 흔들리고 있어

E:샤이론은 본인 게이니스 죽어도 못 버리는데 그렇다고 드러내지도 못할 것 같단 말이에요.

N:헬로 스트레인저도 너무 노골적이고 화끈해지는 선택이긴 한데 진짜 케빈이라면 그랬을 것 같아서.

E:맞아요. 케빈은 그런 사람이죠. 엄청나게 센스있는 것도 아니지만 차안에서는 은은하게 플러팅 칠 수 있고 엄청나게 용기 있는 건 아니어도 혼자 있는 샤이론한테 가서 말을 걸어주기도 하고.

N:사람이 너무 진솔해요. 그러면 낚일 수밖에 없는데

E:꾸밈없고 평범해 보이는데 그런 사람이 생각보다 흔하지 않잖아요.

N:자각없이 그러는게 제일 나빠!!

E:그러니까 샤이론이 정말 낚여버리잖아요. 마지막에 어깨에 기대게 하고 어깨도 한 줌이면서

N:거기에 또 울면서 기대고 말이야

(웃음)

E:저 그 부분 되게 좋았어요 콩 주워 먹는 거. 애드립인가 싶었는데 너무 잘 받아쳐서

N:어색한 분위기를 그런식으로 무마하면 갑자기 더 용기(?)가 생기잖아요. 내가 여기서 더 나갈 수 있겠다는 용기가.

E:샤이론 차에서 할 말 없으니까 노래 크게 트는 것도 진짜 웃겼어요. 웨이트를 그렇게 해놓고 귀엽게 구네.

N:우리 아버지 같아

(웃음)


#보호자

N:여러분 후안에 대해선 어떻게 받아들이셨나요? 샤이론 엄마가 마약중독에 빠진 원인이기도 하잖아요.

E:후안 자신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샤이론 만난 후로 스스로 고민한다는 점에서 양육자로서는 괜찮지 않았나 싶어요. 근데 근본적인 원인이 된 사람이기도 해서.....샤이론이랑 같이 있을 땐 참 좋은사람 같았는데.

N:샤이론 엄마가 진상을 알려준 후의 후안 얼굴이 잊히질 않아요. 어쩌면 후안이 샤이론의 미래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E:샤이론 엄마한테 말 한마디도 못 할 때도 그렇고. 식탁에 앉아서 얘기하다가 샤이론 나가고 나서 바들바들 떨잖아요. 그리고 샤이론이 3부에서 후안이랑 똑같은 두건 쓰고 다니는 것도 맘이 좀 아렸어요.

N:이 영화에서 숨막히지 않는 장면은 식사하는 부분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케빈이 셰프 스페셜 주는 장면이랑 테레사가 식탁에 식사 갖다주던 장면이요.

E:맞아요 후안도 후안인데 테레사도 너무 좋은 양육자다 싶었어요. 나는 샤이론이라고 부를래 했던 것도 그렇고.

N:테레사의 태도도 은근 초연하지 않나요

E:깊이 묻지도 않는데 의지가 되고.

N:값싼 동정 없이 너무 자연스럽게.

E:리틀이 테레사 앞에서 처음 말 튼 이유도 알겠고 후안이 죽고 나서도 꾸준하게 잘 챙겨주는 것도 좋구요.

S:테레사네 집이 더 집이라는 느낌이 있었어요.

N:맞아요 더 안온하고 따뜻한 음식과 이불이 있고....그러고보니 리틀은 기다려준 사람한테만 마음을 연 것 같네요. 뭐 물어보면 한참 동안 입 다물었잖아요. 3부에서 케빈이 뭘 먹을 거냐고 메뉴 고르라고 하니까 또 입 다물고 케빈만 쳐다보고. 근데 케빈이 웃으면서 넌 여전하구나? 하면서 콩요리 만들고.

S:샤잘알

(웃음)

E:샤이론이 살면서 그렇게 기다려준 사람이 몇이나 있었을까 생각하면 정말....없었겠네요       

E:샤이론이 어떻게 일 잘하는 걸로 구역 보스급이 됐나 싶기도 해요.

P:출소하고 어떻게 했길래.....

N:그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한 것도 마음에 들었어요. 할렘에서 자란 흑인 남성을 다룬 영화라고 하면 다들 폭력이나 갱스터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문라이트는 소재가 그런데도 너무 정적이잖아요.

E:샤이론 엄마나 후안이나, 필요없는 부분은 죄다 쳐내서 샤이론한테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N:편견에 갇힌 이미지를 걷어내고 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냥 퀴어니스에 집중해서 본 것도 미국에 사는 흑인-게이 당사자들 입장에서 엄청 새로웠겠구나 싶어요.

(....)

N:문라이트가 작품상을 탄 그 다음 해에 그린북이 상을 탔잖아요. 시상식 보면서 와 정말 하얗다는 생각만 들더라고요.
백인 택시운전사가 흑인 연주자를 태우고 달리는....그런 로드무비에 인종차별을 비판하는 내용인데 그 히어로같은 백인운전사가 사실은 인종차별주의자였다는 폭로가 나와서. 그리고 전형적인 백인 구원자(흑인 앞에 두고 혼자 사이다발언하기)서사라는 말도 많아서 엄청 까였어요. 근데 마허샬라 알리가 여기서도 주연이거든요. 문라이트로 올라온 다음 해에 그린북으로 올라오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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