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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맛탄산수 Oct 27. 2019

정문정, 강이슬, 서메리 작가는
어떻게 글을 쓸까?

2019 카카오 크리에이터스 데이 - 브런치 

"브런치 쓰긴 써야 하는데

인생이 노잼이라 쓸게 없네..."


브런치 구독자 세 자릿수를 넘겨보자는 새해 다짐이 무색하게 한 달에 한번 글쓰기도 쉽지 않은 요즘. 우연한 기회로 "나의 글감"이란 주제의 카카오 크리에이터스 데이 브런치 행사에 다녀왔다. PC엔 텅 빈 글쓰기 화면을 띄워놓고 폰으로 유튜브를 헤엄치는, 몸과 머리가 따로 노는 몹쓸 방황을 끝내고 싶은 것이 첫 번째 목적. "이 작가 대박임 제발 읽어줘"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녔던 강이슬 작가님을 직접 영접해서 맛깔나는 글쓰기의 기운을 조금이라도 얻어보려는 것이 두 번째 목적이었다. 





바람은 차갑고 햇살은 따가운 오묘한 날씨의 토요일 오후 1시 반.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가는 것 같은 들뜬 마음으로 노들섬에 도착했다. 브런치 오프라인 행사에서 꾸며진 공간을 차분히 둘러보다 보면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이란 슬로건을 되새기게 될 때가 많다. 대형 서점에서 아이쇼핑하듯 책을 둘러보는 게 아니라 전시회에서 작품을 감상하듯이 책 하나하나를 깊게 보게 된달까. 거대한 현수막에 프린팅 된 작가님들의 사진은 걸출한 걸작을 줄줄이 뽑아낸 거장을 떠올리게 했다. "어서 제7회 브런치북에 응모해. 너도 거장의 반열에 오를 수 있어." 마음속에 뽐뿌 귀신이 속삭였다. 




"내가 하고 싶고, 내가 잘할 수 있고, 

남이 듣고 싶은 글을 쓰세요."


내가 쓰고 싶은 글의 극단은 일기고요, 

내가 잘 쓸 수 있는 글의 극단은 논문이고요, 

남들이 듣고 싶어 하는 글의 극단은 찌라시에요.


첫 번째 연사는 굳이 소개할 필요가 없게 유명해지신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의 정문정 작가님. "독자를 덕질할 때 나오는 글"이라는 주제로 나의 글을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다. 내가 쓰고 싶고 잘 쓸 수 있는 글과 대중들이 읽고 싶어 하는 글 사이의 중심을 잡는 일. 말만 들어도 어렵고 확실한 정답도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듯이 같은 내용의 글이라도 대중들이 선호하는 형식과 문법일 때 더 잘 읽힌다는 것. 10년간 콘텐츠 업계에서 에디터로 근무하면서 감, 촉, 잔뼈와 같은 동물적 감각의 만렙을 찍어버린 작가님이 여전히 독자를 덕질하는 이유다. 글을 다 쓰고 나면 "나하고 싶은 말 다 끝남!!!" 하고는 사진 하나 넣기 조차 귀찮아했던 과거의 나를 반성 또 반성. 


에디터나 작가는 독자를 훈계하거나 지나치게 시니컬해져서는 안 돼요.
"이건 어때?", "이런 적 있어?" 하고 대화를 걸어야 하죠.
글에는 재미, 공감, 의미 중 하나는 꼭 있어야 해요.
내 취향이 아닌 주제라도 사람들이 어떻게 얘기하는지 관심을 갖고 그에 대한 나의 입장도 생각해봐야 해요. 

 



"새벽 2시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그것.

글마귀를 조심하세요!"


책 아예 안 읽고 맞춤법 다 틀리는 애들도 새벽만 되면 SNS에 그렇게 글을 써요.

진짜 글마귀가 돌아다니는 게 맞다니까요. 


두 번째 연사는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안 느끼한 산문집>의 강이슬 작가님. 라면같이 자잘하게 꼬불한 머리만으로도 작가님의 자유분방함이 확 느껴졌다. 머리가 작가님 빨을 받았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 강이슬 작가님은 "등잔 밑의 글감"이라는 주제로 나만의 글감을 찾는 방법과 글감을 나만의 방식으로 소화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다. 누구나 한 번쯤 마음속에 한 번쯤은 떠올려봤을 "쓸게 없어서 못 쓴다"는 구차한 변명. 하지만 누군가가 "그렇게 쓸게 없어? 니 인생 진짜 핵노잼이다"라고 한다면 가만히 있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 "아냐. 사실 어제..." 하며 사소한 썰 하나라도 풀어놓을 테다. 작가님이 주목한 건 바로 이 "썰". 꺼진 불도 다시 보고 꺼진 썰도 다시 보자. 정말 아무 썰도 없다면 당장 눈 앞에 보이는 무엇이든 글감으로 삼아 나의 한계를 시험해보라는 게 작가님의 두 번째 조언이었다.


작가님이 열변을 토하며 신신당부했던 한 가지. 새벽 두 시에 슬금슬금 나타나 온갖 감성을 헤집어놓고 흑역사 생성을 종용하는 못된 글마귀를 조심할 것! 행여나 글마귀에 휘둘리더라도 "발행" 버튼만큼은 한 잠 거하게 자고 나서 맑은 정신에 할 것. 우리 밥도 먹고 운동도 하고 나서 말짱한 정신에 글 쓰자고요.


제가 가난에 대해서 글을 쓰는데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도 많은데, 하다 못해 아프리카 애들한테 내 글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근데 결국 나는 유일하고 무이하잖아요. 
이 경험을 한 사람은 나밖에 없는 거니까.
나를 팍팍 묻히는 거죠. 
오글거리고 느끼한 글은 독자와 작가의 사이가 너무 먼 글이에요.
독자는 마음의 준비가 안되어있는데 이미 작가는 저 멀리서 혼자 이별해있고 그런.




"우리가 돈을 받고 글을 쓰는 건 아니지만,

독자들은 우리 글을 읽는 데에 자기 시간이란 걸 쓰잖아요."


"일기는 일기장에"라는 피드백이 제일 최악의 피드백이라고 생각해요.

독자들이 시간을 낭비했다는 거니까. 


마지막 연사는 서메리 작가님의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남이 읽고 싶게 하기>였다. 서메리 작가님은 이 강연으로 처음 알게 되었는데 작가이자 번역 가이가 유튜버이기도 하신 팔방미인이셨다! 앞선 두 작가님이 글감에 대해 이야기하셨다면 서메리 작가님은 읽고 싶은 글의 "짜임새"에 초점을 맞췄다. 독자들이 나의 글을 읽는 데 사용한 시간을 낭비라고 여기지 않으려면 독자를 배려하는 짜임새를 갖춰야 한다. 문장과 문단, 글 단위로 읽기에 적절하게 끊어주고 군더더기 없이 정제하는 것이 첫 번째 팁. 독자의 공감 능력을 과대평가하지 않고 나의 생각에 대한 근거를 친절하게 보여주는 것이 두 번째 팁. 독자의 이해력을 과소평가하지 않고 지나친 TMI를 주의하는 것이 마지막 팁. 글을 쓸 때 독자를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번역가들 사이에서는 "~하는데", "~하고"같은 연결어는 완전 금지예요. 거의 금기어 수준.
그런데, 그리고 같은 접속사 앞에서는 엔터를 한번 쳐보세요. 정말 필요한지.
독자들에게 이해를 바라지 말고 독자들이 이해할 수밖에 없게 만드세요.
앞에 나온 얘기를 계속 반복하면 독자들은 지치게 되고, 결국 작가에 대한 호감을 잃게 돼요.
독자들은 바보가 아니에요.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왜 말까지 잘하는 걸까. 정문정, 강이슬, 서메리 작가님의 강연을 듣고 나니 어느새 창 밖엔 노을은 지고 내 마음엔 부러움 가득한 현타가 왔다. 나의 생각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나의 언어를 가진 사람. 멋져. 짜릿해. 최고야. 


세 작가님 외에도 브런치 소개와 브런치x매거진 B 콜라보 비하인드 스토리 역시 정말 흥미로웠다. 브런치 서비스 차원에서 기능 하나 하나, 프로젝트 하나 하나가 "우리는 좋은 글이 가진 힘을 믿습니다."라는 명제를 실현하고 있다는 점은 서비스 기획자로서 정말 부러웠고 본받고 싶었다. 매거진 B의 잡스 프로젝트도 앞으로 눈여겨봐야지.


부쩍 추워진 가을 바람을 맞으며 어둑해진 노들섬을 빠져나왔다. 가는 길 허전하지 않게 이것 저것 기념품을 챙겨주는 브런치팀 덕에 마음만은 훈훈. 작년 크리에이터스 데이에 참여했던 분들 중에 올해 브런치북 수상자가 나왔다던데. 4시간동안 낭낭하게 받은 당선 기운을 어떻게든 살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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