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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맛탄산수 Aug 16. 2020

2020, 어느새 8월

셀프 생존 신고 

깜빡.

7월.

부비적 부비적,

한 번 더 깜빡.

엥, 8월?


크레페처럼 똑같은 모양의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순식간에 케이크 반 판이 되었다. 정확히는 반판 받고 1조각 더 완성. 이 케이크는 도대체 무슨 맛이 날까? 아직도 초보 딱지를 떼지 못한 29살 파티셰에게 인생의 양 조절은 너무 어렵다. 일단 잠깐 스톱. 맛 점검의 시간을 가져본다. 그래야 뭘 더 넣고 뺄지 가늠이라도 하지 않겠나. 


웃픈 회사.

- 회사를 안 간 날이 회사를 간 날을 훌쩍 뛰어넘은 지 오래. 재택근무가 연장에 재연장, 재재연장을 거듭하며 지금껏 계속되고 있다. (그냥 시원하게 올 한 해 재택 선포해주면 안 되겠니!) 행간에 떠도는 재택근무의 불편한 점, 편한 점 전부다 공감하며 지낸다. 격주 토요일에 한 번씩 쉬었던 놀토가 구시대 잔재가 되었듯, 주 5일 오피스 출근제가 고리타분한 구식 문화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인간은 역시, 적응하고야 만다.


- 또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나 혼자 일을 하고 나 혼자 밥을 먹고 나 혼자서 커피 마시고... 이러면 사람이 고요하다 못해 적막해진다. 타인이라는 노이즈가 사라진 백색 공간은 꽤 위태롭다. 작은 스파크에 쉽게 불이 붙고, 작은 돌멩이에도 감정의 파도가 출렁거린다. 그럴 땐 한강 둔치를 걸으며 조곤조곤 비속어를 읊조리거나, 장대비가 쏟아져 오도 가도 못하는 날엔 넷플릭스로 점프. 비밀의 숲, 디어 마이 프렌즈, 응답하라 시리즈 등을 봤다. 사람들이 떼거지로 나와 지지고 볶을수록, 반대로 내 마음은 편안해졌다. 결국 저들은 해피엔딩을 맞이할 테니, 지금 내 현실도 그랜드 빅 해피 엔딩을 위한 잠깐의 시련일 뿐이다. 그런 거다. 새롭게 찾아낸 셀프 위로법. 


- 마음에 평정심을 찾는 또 하나의 팁. 이른바 역할놀이. 직장인 공감 짤에서나 볼법한 웃픈 상황들이 눈앞에 생생하게 재현될 땐, 우린 모두 그저 어떤 역할을 부여받아 재밌는 연극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최면을 걸어보자. 저 사람은 회사를 이리저리 쑤시고 다니는 악당 역할, 저 사람은 여기저기 터져 나오는 문제를 해결하는 슈퍼맨 역할, 나는, 음, 적당히 치고 빠지는 조연 정도? 사람과 역할을 분리하면 빡치는 일도 그저 귀엽게 느껴지고 심각한 일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릴 수 있다. 사람은 역할과 달리 입체적이라,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사람을 파고들게 되면 새벽까지 잠이 안 온다. 평면적인 역할만 생각해야 평온한 밤을 사수할 수 있다. 


깜깜한 내면. 

- 마지막 20대를 이렇게 재미없게 보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인생 노잼 시기의 최절정. 사실 난 내가 생각한 것보다 재미없고 겁만 많은 사람이고, 지금껏 재미없게 인생을 살아온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살면 살수록 스스로를 더 모르겠는 건 왜일까?


-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니 목표도 없다. 목표가 없어서 스트레스받고, 스트레스받아서 무기력해지고, 무기력해서 목표를 세울 의지가 없고, 의지가 없으니 목표도 없다. 때때로 의지의 스파크가 튀기도 했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이 거지 같은 사이클을 여러 번 반복하며 음침하게 상반기를 보냈다. 무언갈 시도하려고 해도 불안감이 앞선다. 불안하고 불안해서 불안해 죽겠다. 행복 회로를 신나게 돌리다가도 다시 나락으로 번지 점프하기를 수차례. 잘하고 싶은 욕망과 잘하지 못했을 때의 걱정이 팽팽하게 줄다리기하며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 나 이렇게 유리멘탈이었나.  


- 사실 이건 환경의 영향이기도 하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대부분 바깥에서 올 때가 많은데, 연애도 사교도 취미도 모든 것이 일시 정지된 이 시국의 탓도 있다. 문제는 이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벼랑 끝까지 몰고 가서 끝끝내 바닥을 짚게 만드는 내 내면의 목소리겠지.


- 어떤 향으로 가득 찬 방에 오래 있다 보면 그 향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듯, 언제부턴가 꽤 강한 염세주의가 은은하게 내 내면과 일상에 스며들어 당연해진 지경에 이르렀다. 반복되는 실패 혹은 손절 때문일까. 소소하게나마 성취감을 느껴본 게 언제였더라. 기억도 나질 않는다. 내 방의 창문을 열어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사람이든, 사건이든, 물건이든. 


- 아, 이렇게 죽상으로 3학년이 되긴 정말 싫은데. 


사람, 사랑.

- 올해 신이 내게 명한 역할은 솔로이다. 


- 혼자가 괜찮다가, 이건 아닌데 싶다가, 그렇다고 그게 괜찮나 싶다가, 결국 제자리다. 어딜 가서 무얼 먹고 무얼 할지 온전히 결정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역으로 그동안 내 인생의 중심에 엄한 타인을 세워놨던 건 아닐까 후회도 됐다. 물론 그땐 그 사람이 중요했겠지만. 그 사람(들)과 갔던 곳, 했던 일, 나눴던 것 중에 지금 기억나는 게 몇 없는 걸 보면 현타가 오다가도 그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 거라 생각하면 고맙기도 하다. 잘 살 거다. 너 말고 나.


- 어쨌든 살려면 심장이 뛸 이유는 필요하고, 누구든 사랑은 해야 한다. 별생각 없이 방문한 샤롯데시어터에서 초대형 덕통 사고를 당해버렸고 정신 차리니 회전문을 돌고 있었다. 장장 15년 만이다. 처음 덕질을 하던 나이만큼 더 살고 나서 다시 만난 그. 나잇살이 붙어 보기 좋게 동그래진 얼굴에, 더 깊어진 목소리, 시련과 고난이 선물한 위트와 여유, 여전한 귀여움. 나도 많이 달라졌다. 앨범 한 장에 덜덜 떨던 손은 VIP석을 빛의 속도로 낚아챌 수 있고, 연애는 무슨, 결혼과 출산 그리고 이혼까지 이해할 넉넉한 마음과, 그 사람의 외면이 아니라 15년을 걸어온 그 단단한 내면에서 애정을 느끼는 성숙함도 생겼다. 덕질은 이렇게나 숭고한 것이거늘.


밀려버린, 일

- 그래도 1/4분기때는 이것저것 하려고 노력은 했다. 손화신님의 글쓰기 강연, 백일생각 시즌3, 하나 쓰고 중단된 월간29, 헬스장 일기, 아 그래도 PT 30회는 완주했다. 역시 돈을 걸어야 해. 


- 기회는 누가 물어다주는게 아닌데. 좀 더 적극적이어야하지 않을까.




이 글 조차 쓰는데에 며칠이 걸렸다. 후하호헤호. 멘붕으로 마무리하는, 찜찜한 상반기 기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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