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다만 이야기가 남았네> 의 저자, 김상혁 시인과의 100여분
가장 마지막으로 읽었던 시집을 돌이켜봤다. 까마득한 3년전 인도에서 읽은 류시화 시인의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 나의 인도 여행 메이트였던 수혜는 시집 겉표지에 까만 땟국물이 들 정도로 이 책을 매일 들고다녔다. 사실 시보다는 좋은 글귀나 격언에 가까운 내용인데, 여행지의 낯선 풍경과 정의하기 어려운 감정들과 뒤엉켜 내 마음에도 퍽 와닿았다. 자유의 끝판왕 인도에서 삶의 지표라도 새롭게 세우고 싶었던 것인지, 나는 작은 노트에 필사까지 해가며 그 책을 몇 번이나 빌려 읽었다.
트레바리 이벤트는 늘 인기가 많다. 책과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인지 글쓰기와 관련된 '잘쓰자 400자' 특강은 특히 빠르게 마감된다. 몇 번 기회를 놓친 적이 있어, 이번에는 특강 타이틀만 보고 오픈되자마자 재빠르게 한 자리를 얻었다. 뿌듯한 마음으로 포스터를 다시 꼼꼼히 읽었다. "with 김상혁님 / 시인, '시밤' 클럽장" 하필 주제가 가장 안 읽는 시라니. 시밤. 그래도 일단 독후감을 써야 하는 시집을 샀다.
시는 리듬감, 운율, 함축적 의미, 비유, 상징의 조합이라고 배워온 나에게 김상혁 시인의 산문시집 <다만 이야기가 남았네> 는 솔직히 어려웠다. 문장간의 알 수 없는 연결고리(아니 이 문장이 여기서 왜 튀어나와?), 해석할 수 없는 조합의 단어들(나의 독해력을 진지하게 걱정했다), 명확하지 않은 기승전결(그래서 여기서 끝이야?) 등등. 책을 다 읽었는데도 내가 읽은 것이 명료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그저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들만 동동 떠다닐 뿐. 결국 책을 몇 번이나 뒤적거리다가, 독후감은 포기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이벤트에 갔다.
시인을 직접 만나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몇 달 전에 봤던 영화 <시인의 사랑>의 주인공처럼 감성적이고 소박하신 분일까 상상했던 것이 일종의 편견으로 느껴질 만큼 김상혁 시인님은 정말 평범하디 평범한 30대 후반의 남자였다. 가르쳐주기 좋아하고 대화하기 좋아하는, 졸업 전에 몇 번 마주쳤을 법한 여느 대학 강사 혹은 여느 대학원생의 모습. '시'라는 낯선 주제때문에 다소 얼어있던 마음이 서서히 풀어지기 시작했다. 몇몇분들이 써온 독후감을 함께 읽는 것부터 시작했다.
우리에겐 줄거리 신화같은게 있어요. 어떤 주제나 줄거리를 파악해야지만 무언가를 읽었다는 느낌. 하지만 시의 경우에는 그 줄거리나 주제를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고 해서 독서에 실패했다거나 잘못 쓰인 시가 아니에요. 시는 기본적으로 같은 감성을 공유하는 파편들을 모아놓을 것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나의 한 문장을 찾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거죠.
특강 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시를 읽는 방법에 관한 얘기. 사실 요즘 책이나 글을 읽을 때마다, 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유용한 무언가를 잡아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있었다. 시간을 들인 것에 대해서 무언가 가시적인 결과를 남겨야 내가 그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고 느끼는 그런 강박. 시집 읽는 게 너무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였을거다.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애쓰기보다는 행간의, 단어의 감정을 느끼고 흘려보내는 독서도 의미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메인 주제인 글쓰기에 대해서도 좋은 말들을 많이 해주셨다. 실제로 시인들도 시를 쓰기 전에 글 쓰는 연습을 많이 하고, 글로 평가받을 때가 많다고 한다. 결국 어떤 장르든 기본기가 탄탄해야 한다는 얘기. 시인이 글쓰기 특강을 한다,는 문장에서 느꼈던 묘한 이질감이 해소되는 지점이었다. 대학 때 활동했던 영상동아리에서 보도/취재 관련 워크샵을 했던 기억이 났다. 예능이나 드라마 장르를 많이 제작하는 동아리 특성상 그 워크샵이 크게 필요없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워크샵을 제안했던 교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더랬다. 어떤 작품이든지 가장 중요한 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귀를 기울이는 취재 능력이라고.
글쓰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지켜야 할 규칙이 많아지면 오히려 글쓰기가 어려워진다. 김상혁 시인님이 말하는 최소한의 규칙 4가지.
1. 천재는 없다
: 시는 짧으니까 '직관'으로 승부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글쓰기 습관에서 가장 안 좋은 것은 쓰고 버리는 것. 퇴고를 하지 않으면 글쓰기는 절대로 늘지 않는다. 가장 좋은 것은 글을 어딘가에 남기는 것. '100편 쓰면 하나는 걸리겠지'라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지속적으로 글을 올리고 축적할 플랫폼을 찾고, 객관적인 시각을 가진 누군가와 함께 보자.
2. '진정성'이라는 신화
: 진정성이라는 단어는 사전에도 없다. 글 쓸 때 진심은 정말 쓸모 없다. 행동하지 않는 진심은 아무 의미가 없다. 진정성은 나쁜 의미로는 낭만성. 낭만주의는 때로는 혁명의 원동력이 되지만, 나치즘에서 알 수 있듯이 잘못된 전체주의로 흐르기도 한다.
3. 센말 페티쉬
: 센말을 쓰면 낯설고 새롭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건 일종의 위악이다. 가장 좋은 글은 일상적인 언어로 특별함을 표현하는 것. 예를 들어, 성폭력에 대한 내용을 적나라하게 시로 표현하는 것을 자유라고 말할 수 없다. 자유는 욕구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4. 재미 따위?
: 글은 재미없으면 끝까지 못 읽는다. 재미는 단순히 웃긴 것을 넘어서 글을 끝까지 읽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리고 재미는 구체성에서 온다.
2번에 대해서는 나도, 같이 간 사람도 의문이 있었는데 작가님의 맥락에서의 진정성은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진정성 혹은 솔직함으로 포장해서 남에게 상처주거나 남을 선동하는 경우를 얘기하는 듯 했다.
집에 돌아와 북마크 해둔 페이지 위주로 시집을 한번 더 읽는다. 무언가를 이해하고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기보다는 행간에서 느껴지는 공백과 그 감정들을 느끼려고 노력해본다. 그 와중에 마음을 툭 치는 몇 가지 문장만, 마음에 남기기로 한다. 까먹어도 된다. 다시 읽으면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