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뭐가 그렇게 달랐을까요?

영화 <네버 렛 미 고>를 보고

by 자몽맛탄산수

복제인간에 대한 영화를 만든다면 사람들의 머릿속엔 어떤 장면들이 먼저 떠오를까? 복제인간이 인간을 배신하고 반역을 일으켜 세상을 지배하든지, 혹은 그런 불순한 복제인간에 맞서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게 인간을 지켜내든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철저히 인간의 편이거나, 철저히 인간의 적이거나 말이다.


포스터만 보면 여느 평범한 사람들의 로맨스 영화같지만, 사실 이들은 모두 복제인간이다.


영화 <네버렛미고>는 보통의 SF영화와 다르게 서정적이고 담담한 전개로 복제인간들의 이야기를 묵직하게 풀어낸다. 복제인간으로 태어나 적정한 때가 되면 인간에게 장기를 내어주기를 반복하다 마침내 죽음을 맞이하는 평화로운 서사속에서 그들은 인간의 편도, 적도 아니다. 누군가의 편이나 적이 되기에 앞서 그들에게 필요한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일이다. 나는 도대체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1438BF4B4D6B0BFB33 자신의 원본을 궁금해한다는건, 복제인간에게도 '자아'가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의 발화점이 되는 주인공 캐시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어른스럽다. 어린 캐시는 자기 성에 못이겨 고함을 질러대는 토미를 달래주었고, 어른이 된 캐시는 자기 질투에 못이겨 토미와 비뚤어진 사랑을 하는 루트를 이해해준다. 자칫하면 신파로 빠질 수도 있었던 토미와 루트, 캐시 사이의 삼각관계는 이를 받아들이는 캐시의 담담함을 통해 복제인간도 인간과 같은 감정을 느끼는 존재일 수 있음을 역설한다.


또 하나 캐시의 중요한 특징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감내하고 순응한다는 것이다. 루트에게 토미를 빼앗긴 채 지켜보기만 해야했을 때에도 캐시는 묵묵히 뒤에서 참아냈고, 헤일샴의 비밀과 갤러리의 존재 이유에 대한 진실을 마주했을 때에도 분노하고 실망하기보다는 그저 입술을 깨물며 받아들일 뿐이었다.


163637444D9388F213 왼쪽부터 토미, 캐시, 그리고 루트


이러한 캐시의 모습은 현실에 순응하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복제인간과 진짜 인간 사이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미래에 우리가 만나게 될 복제인간은 여느 SF영화 속 악역보다는 캐시처럼 순응적이고 평범한 모습을 하고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캐시가 처한 상황들은 현실의 문제로 다가온다.


모든 것을 감내하던 캐시에게도 끝끝내 반문하게 되는 문장이 하나 있다. 장기 기증을 앞둔 캐시는 황량한 벌판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우리의 인생이 우리를 원하던 사람들의 그것과 많이 달랐는가?" 우리조차도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매일 고민하며 살아간다. 과연 누가 이 물음에 명쾌한 답을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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