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가분한 마음으로 지하철을 내린다. 어느새 어두워진 하늘. 혹시 조금 시원해졌을까 기대하지만, 더우면서 습하기까지 한, 욕심 가득한 공기가 얄밉게 온 몸을 감싼다. 지하철 출구로 향하는 통로는 오히려 시원한데, 옥수수를 파는 편의점과 엘사 장난감을 파는 잡화점 덕분이다. 집엔 빨리 가고 싶은데 지하철 밖으로 나가긴 영 싫어 출구로 향하는 마지막 계단을 천천히 오른다. 오늘같이 비가 흠뻑 오는 날은 더 그렇다.
하루 중 가장 땀이 많이 나는 때는 퇴근길이다. 지하철에서 집까지 고작 십여분이지만, 집에 도착해 허겁지겁 에어컨을 틀면 등 뒤에 맺혀있던 뜨거운 땀방울이 그제야 스르륵 흘러내린다. 에어컨 하나론 부족해. 언니가 최근에 산 탁상용 선풍기를 튼다. 에어컨 바람은 선풍기를 타고 방 안을 빼곡히 채워나간다. 맨살에 그대로 느껴지는 차가운 바람결이 좋다. 선풍기 바람의 방향에 맞춰 잠시 오뚝이가 된다.
이왕 난 땀. 그대로 씻어내기엔 뭔가 아쉽다. 거울 앞에 두툼한 요가 매트를 펼친다. 올록볼록한 폼롤러에 몸 이곳저곳을 문댄다. 아프니까 청춘 아니고, 아프니까 뭉친 거다. 그래도 처음 문댈 때보다 통증이 덜하다. 마사지가 끝나면 스마트폰으로 운동 영상을 튼다. 거치대에 스마트폰을 얹고, 정면의 화면과 측면의 거울을 번갈아 보며 땀을 더 내본다. 우리 집의 전신 거울은 세로로 길기 때문에 엎드려하는 운동은 자세를 보기 힘든데, 오늘 했던 플랭크가 그랬다. 전신 거울을 바닥에 가로로 세워야 하나.
힘든 운동이 아닌데도 삼십여분 정도 지나고 나면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땀방울이 느껴진다. 이만하면 됐어, 운동에서만큼은 만족의 역치가 낮은 나는 서둘러 매트를 돌돌 말고 폼롤러를 그 사이에 껴서 자리를 정리한다. 하루의 하이라이트, 샤워 시간. 아무리 더워도 샤워는 더운물로 한다. 찬물 샤워는 이십몇 년을 살아도 영 적응이 되지 않는다. 더운물로 더운 땀을 닦아낸다. 녹여낸다, 라는 표현이 더 적당할지도 모른다. 보글보글 거품으로 한번 더 닦아내면, 분명 더운물인데도 참 시원하다.
샤워를 마치면 집이 좀 시원해진다. 에어컨 온도를 20도로 살짝 올리고, 선풍기도 중에서 약으로 바람 세기를 낮춘다. 침대 위, 혹은 의자 위에서 자기 전에 할 일을 정리한다. 어차피 다 못 하고 잘 걸 알지만, 적어놔야 내일이라도 까먹지 않고 할 수 있으니까. 사각사각 샤프로 다이어리를 쓴다. 어차피 매일 똑같은 내용이지만, 적어놔야 나중에 똑같았다는 사실이라도 기억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