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단상
직장인에게 1분 1초는 소중하고 출근길엔 더더욱 그렇다. 판교역에서 회사까지는 걸어서 고작 10여분이지만, 셔틀버스, 노란 버스, 초록버스가 짤막한 거리를 쉴 새 없이 오가며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버스를 타면 3분 만에 회사 건물에 도착한다. 이렇게 절약한 7분은 사무실 라운지의 커피 머신에서 오늘의 첫 에스프레소를 내릴 때 조금 더 여유로울 수 있는, 아주 소소한 행복을 준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있어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운동 부족이란 마음의 짐을 안고 살아간다. 그 짐을 조금 덜어보고자 퇴근길엔 판교역까지 걸어가곤 했다. 어둠이 드리워진 아스팔트를 꾹꾹 눌러 걸으며 하루 동안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곱씹기에 적당한 거리기도 하다. 하지만 매일마다 자체 신기록을 경신하는 무더위에, 생각도 사치다 싶어 버스를 타지 않을 수 없는 요즘.
노란 버스 중 하나인 602-1번 버스를 타면 회사 앞에서 직진 후 좌회전을 해서 판교역에 도착한다. 고작 두세 개의 정류장을 거치는데도 버스는 금방 만원이 된다. 하루는 누군가 벨을 잘못 눌렀다. 아무도 내리지 않았다. 기사 아저씨는 좌회선 노선에 제때 들어가지 못했다며 짜증을 냈다. 하루는 타이밍이 안 좋았다. 좌회선 차선에 제때 진입했지만 직진 신호에 절묘하게 걸렸다. 또 다른 기사 아저씨도 짜증을 냈다. 고작 신호마저 나를 안 도와주네, 에라이 퉤. 대상을 찾지 못한 짜증과 작은 분노가 허공으로 흩어진다. 버스 앞문에 가까이 있던 나는 괜히 머쓱해졌다. 그래 봤자 고작 3분, 이 3분 30초가 되는 것일 뿐인데. 승객 그 누구도 아저씨를 탓하지 않는데. 30초 더 먼저 간다고 아저씨가 더 빨리 퇴근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무엇이 아저씨를 화나게 만들었을까.
아, 생각해보면 출근길의 나도 그랬다. 언젠가 2호선 지하철을 눈 앞에서 놓쳤을 때, 허겁지겁 계단을 내려가는데 신분당선이 지나가는 야속한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사소하게 분노했다. 우리 집에서 왕십리역까지 10분, 왕십리역에서 강남역까지 2호선으로 40분, 강남역에서 판교역까지 신분당선으로 20분, 판교역에서 회사 앞까지 3분. 왕십리역부터 판교역까지 두 번의 지하철과 한 번의 버스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탔을 때 도어 투 도어 1시간, 아슬아슬하게 놓쳤을 때 도어 투 도어 1시간 15분. 1시간 만에 회사에 도착한 날엔 묘한 승리감을 도취되곤 했다. 하지만 그건 일주일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드문 횡재일 뿐, 사소한 분노를 느끼는 날이 태반이다.
짧은 노선을 하루 종일 뱅뱅 돌아야 하는 버스 기사 아저씨들에게 묘한 승리감은 승객들을 가장 최단 시간에 목적지에 내려주었을 때 찾아오지 않을까. 일상이란 지루한 리듬 속에서 박자라도 정박으로 정확히 타격하는, 아주 사소한 상황에서 말이다. 사소한 것조차 내 맘대로 안될 때, 우리는 더 크게 분노한다. "고작 이거 하나도 안되나", "이게 뭐라고 안되나", "이것조차도 날 안 도와주네".
아저씨의 분노에서 나를 본다. 사소한 건 사소하게 넘겨버리면 되는데, 삶에 위안을 얻을 거라곤 그저 나에게 주어진 박자를 정박으로 치는 것 밖에는 없다. 그것마저 마음 같지 않을 때가 많다. 누군가는 내 장단에 엇박을 치고, 괜히 욕심내다 삑사리를 내며, 모아놔봤자 불협화음이 생기기 일쑤다. 사소한 분노라도 내서 속이 시원해지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버스기사 아저씨처럼 뱉어내지도 못하니 어째 더 밴댕이 소갈딱지가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