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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맛탄산수 Jun 23. 2019

귀여운 사람들을 만나러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왔다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책은 여전히 좋은 방법입니다.
- 성심당


    전시관 B홀에 들어서자마자 은은하게 풍기는 기름 냄새를 맡으며 성심당 부스를 주욱 둘러보았다.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의 랜드마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양 손 가득 빵을 들고있었다. 튀김소보로 맛보기는 일찌감치 포기했으나, 성심당이 왜 도서전에 왔는지는 여전히 궁금했다.


    알고보니 성심당은 성심당의 일대기를 담은 첫 책부터, 빵을 다룬 세번째 책까지 이미 3권의 책을 낸 프로 작가. 성심당은 갓 튀긴 소보로빵말고도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것이 많은 곳이었다.


    자기의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동경한다. 소설보다는 에세이와 수필을 좋아하는 이유다. 자기만의 경험과 생각을 정리해서 어떠한 형태로든 쭉- 펼쳐놓는 그 일련의 과정들이 너무 멋지다. 그래서 서울국제도서전에 가면 가장 재밌게 보는 부스가 독립출판물들이다. 일반적인 책의 표지 규칙을 따르지 않는 독특한 디자인의 종이 묶음을 집어들어 누군가의 뾰족한 취향, 날것의 생각, 혹은 참신한 인사이트를 휘리릭- 훑어보는 것은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그냥 끄집어내버려도 괜찮다는 무언의 용기를 준다.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는 사람의 눈빛은 언제나 초롱초롱하다. 부스 가판대 앞으로 사람들을 스윽 비집고 들어가 진열된 책을 뒤적거리면, 자연스레 부스 주인들의 인삿말이 따라온다. "안녕하세요- 이 책은요-" 책을 직접 만든 사람들이기 때문일까, 옷가게에 진열된 옷을 뒤적거릴때 "찾으시는거 있으세요?"라는 점원의 말보다 훨씬 더 편하고 진정성있게 들리는 건. 주인들과 눈을 마주치고 그들이 책을 통해 나누고자 했던 이야기를 듣다보면 대단하고 부러우면서 문득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게 너무 좋아서 내 친구들이랑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봤는데, 어때? 너도 이거 좋아해?" 초롱초롱한 눈으로 들뜬 소갯말을 쏟아내는 그 모습에서 느껴지는 즐거움이 퍽이나 순수해보여서, 나는 그 사람들이 정말 정말 귀엽다고 생각해버렸다. 


몽환적인 표지 모델의 눈빛에 VOSTOK 부스 앞에서 처음으로 발걸음을 멈췄다. VOSTOK는 격월로 특정 주제의 사진과 약간의 글을 실은 잡지를 만든다. 주제는 일, 가족, 페미니즘, 도시 등등. 감각적이면서도 (노출과 각도에) 거침없는 사진들이 주변의 소음에도 불구하고 몽환적인 기분에 빠져들게 했다. 동그란 안경을 낀 편집장님은 귀여움과 우울을 다룬 <큐티큐티 멜랑콜리> 를 뒤적이던 나에게 신이 나서 설명을 해줬다. "이 책은 귀여움으로 시작해서 중간부터 우울함으로 바뀌어요. 색도 일부러 이렇게 검은색으로 했는데, 저는 여기서 사람들이, 뭐랄까, 상처?같은 걸 떠올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두번째로 발걸음을 멈춘 곳은 북어위크(BookaWeek) 부스. 일러스트 그림으로 시크릿하게 감싸져있는 책들이 가판대를 채우고 있었다. 부스 주인분께 "이거 무슨 책인지 알 수 있어요?"라고 물었다. "아, 이게 제가 읽은 책을 추천해드리는건데요, 그냥 두면 다들 책 제목만 보고 잘 안 읽으셔서, 저희 일러스트 작가님이 책을 읽고 떠올린 것들을 그려서 표지로 만들고 있어요. 무슨 책인지 궁금하시면 알려드릴 순 있긴 한데 하하.." 수줍지만 뭔가 확신이 있는 말투였다. '계속할 용기가 필요한 사람에게 추천하는 책'을 집어들고 살까말까 고민하는 나에게 주인분이 말했다. "이 책들이 다 제가 이걸 준비하면서 많이 도움 받은 책들이거든요. 책마다 제가 인상깊게 읽은 부분을 포스트잇으로 표시해뒀는데, 이 책은 특히..." 책의 내용보다도, 주인분이 나에게 전하고자 했던, 이 책에서 받은 그 감정을 나도 느껴보고 싶어졌다. 홀린듯이 결제를 해버린 나에게 주인분은 명함을 건네며 거듭 당부를 했다. "책이 마음에 안드시면 언제든지 꼭 연락주세요. 더 좋은 책으로 추천해드릴게요." 집에 와서야 알았는데, 로고가 북어인 이유는.... 그렇다. 그것이다. 끝까지 귀여워. 



브런치의 오프라인 데뷔는 기대 이상으로 너무 좋았다. 시끌벅적 사람들에 치이는 시장통에 있다가 갑자기 고급진 와인바에 들어온 느낌이었달까. 입장부터 퇴장까지 "경험"을 설계하는건 이런거구나, 감탄을 많이 했다. 부스에 입장할 때 벽면에 적힌 10가지 주제 중 하나를 선택하여 북컨시어지에게 말하면 해당 주제의 브런치 글을 볼 수 있는 QR코드가 프린트된 카드를 한 장 쥐어준다. 토요일 오후에 갔던 터라 사람에 치여 살짝 지쳤었는데, 조용한 부스 안에서 글 한 편 곱씹으며 숨 돌릴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이벤트에 참여하고 받은 메모지도 대박. 한 면에는 브런치북 수상자들의 글을 싣고, 다른 한 면에는 브런치 글작성 화면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센스도 이런 센스가 없다. 앞으로 브런치 글감은 이 메모지에다 적어둬야지. 꾸준히 쓰다보면 나도 언젠간 이 메모지에 실릴 수 있을까, 작은 기대를 품어보며 도서전 나들이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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