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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맛탄산수 Aug 09. 2019

할아버지

여기가 이렇게 작았었나?


어렸을 적 몇번 입원한 적이 있는 동네의 종합병원을 다시 찾았다. 십여년이 흘렀어도 변함없는 외관이지만 곳곳에 노랗게 바랜 세월의 흔적들이 병원의 연식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렸을 땐 이 곳의 모든 것이 마냥 크고 무서웠는데 이제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마저 낮아보였다. 병원이 나이를 먹어서일까, 내가 나이를 먹어서일까.


그 세월은 우리 할아버지도 비껴가지 못했나보다. TV속 중환자실보다 훨씬 평범하고 작은 방. 할아버지는 몇 개의 기계에 몸을 의지한 채 누워계셨다. 중환자실은 한번에 2명만 면회가 가능해서 언니와 엄마가 먼저 들어갔다. 내 차례를 기다리며 차가운 손세정제로 손을 소독했다. 여러번. 머릿속을 헤집는 온갖 감정들을 다스리기엔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었다.


머릿속 감정들을 단지 슬프다, 는 단어로 표현하기엔 나는 그리 좋은 손녀가 아니었다. 할아버지 무릎팍을 좋아하는 살가운 손녀도, 꼬박꼬박 안부를 챙기는 기특한 손녀도, 별거 아니라며 주머니에 용돈을 쏙 넣어주는 센스있는 손녀도 아니었다. 슬픔에도 자격이 필요하다면 나는 완전 자격 미달이었다.


할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이미지는 몇 년 전 추석 혹은 설. 데면데면하게 식사를 마치고 할아버지를 댁으로 모셔다드리는데, 늘 검은 줄만 알았던 할아버지 머리가 조금씩 희끗희끗해진걸 발견했었다. 유난히 머리가 검으셨는데. 순진하게도 나는 그런 할아버지가 평생 건강하게 사실 줄 알았다. 


희끗한 머리를 시작으로 치매, 요양원같은 것들이 더이상 남일이 아니게 되었을 때에도 나는 사실 제대로 실감하지 못했다. 서울에 따로 떨어져 살고있기도 했지만 내 머릿속 할아버지는 언제나 검은 머리에 양쪽 팔에 문신을 한 멋쟁이 할아버지였다. 그래서 그런 얘기들이 들려왔을 때도 내 마음 한 켠에는 에이, 우리 할아버진 요양원에 누워있는 그런 어르신들이랑은 달라, 라는 이유 없는 믿음이 있었다. 


중환자실 침대에 누워 산소 호흡기로 뽀얀 숨을 내쉬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이런 내 믿음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할아버지의 머리는 어느새 흰머리가 더 많아져있었고 마른 팔 위에 문신은 마치 이빨 빠진 호랑이같았다. 할아버지, 저희 왔어요 하며 언니가 할아버지를 흔들어 깨울 때마다 할아버지는 눈을 꿈뻑꿈뻑하셨다. 살짝 눈물이 맺힌 것 같기도 했다. 파르르르 떨리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을까 말까 고민했다. 결국 잡지 못했다. 좋은 손녀가 되는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누워계신 할아버지의 얼굴에 아빠의 얼굴이 겹쳐보였다. 몇 년전 할머니를 먼저 보내드려서인지 아빠는 일찍이부터 담담했다. 진짜 속은 모를 일이지만은. 언젠가 나도 아빠와 같은 상황이 된다면 내가 과연 견딜 수 있을까. 그런 상상을 하니 진짜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버릴 것 같아서 더이상의 생각을 멈춰버렸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할 것 같아요,


라고 의사가 말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좋은 손녀가 되려고 노력할 수 있는 기회조차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그 전에 꼭 할아버지 손은 꼭 한번 잡아드려야지. 이건 이 다짐을 지키기 위해 쓰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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