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데브 엘라 May 19. 2022

저는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있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커뮤니케이션 역량이란?

커뮤니케이션 역량 이란 무엇일까? 나는 '청자중심의 사고'가 뛰어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취업을 준비하던 당시, 거의 모든 회사의 JD(Job Description)에서는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요구했다.


그때 당시에는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뛰어난 사람은 1. 말을 조리 있게 잘하거나 2. 영업적인 스킬이 뛰어나거나 3. 기껏해야 PT를 잘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학교 안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은 거기까지였으니까.


그나마 교수님과의 관계에서 약간의 사회생활을 맛보았던 것 같다. 거의 수평적이긴 했지만, 때때로 교수님의 시중 아닌 시중을 들어야 했고, 그들이 요구하는 실적을 맞추기 위해 발표자료를 제출한다거나, PT는 상대방이 듣기 좋게 만들어야 학생이든 교수님이든 평가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직장은 달랐다. 나를 기다려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매 순간 바빠 보였고, 학교에서처럼 내가 이해하지 못한 부분에 사명감을 가지고 이해시켜줄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오히려 이해하지 못하면 혼을 낼 것 같은 사람이었다. 우리 회사가 그렇다기 보단, 흔히 매체에서 보이는 회사 분위기란 그러했기 때문이다. 보고서를 이상하게 작성해 오면 파일로 머리를 맞고, 내가 밤새 쓴 보고서는 바닥에 나뒹굴어지는 모습..


그런데 왜 그들의 보고서는 그렇게 나뒹굴게 될까? 바로 청자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우리 회사에 들어와 첫 충격 포인트를 이야기해볼까 한다. 입사한 지 일주일 째였나.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나에게 주어진 첫 업무였던 것 같다. 팀장님은 나에게 간단한 업무를 하나 주셨다. 하지만 긴장을 한 탓인지, 그 간단한 설명조차 나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나는 다시 한번만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그때 팀장님의 반응은 너무나도 놀라웠다.


아, 죄송해요. 제가 설명을 잘 못 드렸네요.
다시 설명해 드릴게요.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회사의 모습과 너무 달랐다. 내가 보기엔 분명 팀장님은 청산유수처럼 너무나도 말을 잘했는데, 내가 알아듣지 못해서 너무 죄송할 따름일 정도로 말씀을 잘하셨는데. 그런데도 그녀는 나에게 미안해하다니.. 그동안 내가 드라마에서 본 상사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이 팀장님뿐 아니라, 우리 회사의 모든 매니저님들부터 대표님까지. 똑같았다. 모두가 똑같이 반응했다는 게 신기했다. 매니저가 대표에게 말을 하든, 대표가 매니저에게 말을 하든,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로 이야기하면 가차 없이 피드백이 날아왔다. "무슨 말이죠? 다시 설명해 주세요" 흔히 말하는 두괄식 화법은 당연한 것이고, 상대방을 배려하려는 마음이 돋보인다는 게 달랐다.


이 회사에서 8개월 정도가 흘렀다. 어느 날, 인턴 면접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들의 자기소개서를 보면서 과연 내가 제출했던 자기소개서는 어땠을까 궁금해서 그때의 자소서를 다시 한번 꺼내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너무 '있어 보이고 싶어요'라는 말이 들릴 정도로 어려운 단어, 있어 보이는 단어, 온갖 외래어들이 들어 있었다. 내가 내세울 게 없었던 걸까. 솔직하고 진솔하기보단 자신감 없는 나를 화려한 단어들로 포장해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자기소개서뿐 아니라, 너무 어려운 단어를 써가며 설명하는 기사나 강의는 조금 경계하게 된다. 특정 분야에서 쓸 수밖에 없는 단어나 상식선 이외에, 필요 이상의 용어나 배경지식을 과하게 쓰는 것을 경계하게 된 것이다. 문장을 다시 써보면 굉장히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지금 인턴분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도 굉장히 경계하게 된다. 텍스트로 말을 하든 구두로 말을 하든 내가 의도한 바가 잘 전달되었는지, 그들이 잘 이해할 수 있게 내가 잘 전달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되새겨 본다. 그런 게 쌓이고 쌓이면서 나도 점점 말을 쉬우면서도 조리 있게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사실 아직도 매일매일 노력 중이다)

@unsplash

말을 잘한다는  말을 잘해 보이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이 알아듣기 쉽게' 말하는 것이다. 말은 입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귀를 위해 존재하는 이다. 내가 아무리 혼잣말로 하면 아무 의미 없다. 녹화를 해서 누군가에게 들려주든, 바로 앞에서 이야기하든. 누군가에게 '전달'되어야 비로소 말은 의미가 생긴다. 그렇기에 말은 입이 아닌 귀로 들어갈 때를 생각하며 해야 한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청자를 위한 말하기는 더더욱 쉽지 않다.


그래서 더 노력해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케터의 관점에서 바라본 '경험을 소비한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