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바운더리에 대해: 점선과 실선

당신은 나에게 '점선'인가요, '실선'인가요?

by 데브 마인드

이 개발자의 사고방식 #10


나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별다른 생각 없이 다가가서 말을 붙이는 편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무조건 가서 말을 붙이거나, 뭔가 주제를 끌어내어 대화를 이어가거나 하진 않는다. 단지, 말을 거는 데에는 주저함이 없을 뿐이다.


누군가와 대화라는 터치가 상호 간에 이뤄지는 정도의 관계라면 그 사람에 대한 나만의 바운더리가 생긴다. 엄밀히 말하면, 이 바운더리는 '여기까지 접근은 불허한다'는 스스로의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1. 첫인상이라는 직관의 영역

딱 보면 느낌이 팍 온다. 이런 걸 첫인상이라고들 한다. 처음 볼 때, ‘아,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군!’이라고 속으로 생각한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그 사람의 바운더리와 나의 바운더리가 순식간에 생성된다.


그러다, 첫인사를 하고, 대화를 하게 되면 바운더리가 수정된다. ‘이런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저런 사람이었군.’ ‘아! 이런 면모도 있었군.’


계속 대화할 때마다, 관계가 지속될 때마다, 이 바운더리가 계속 수정된다. 이렇게 계속 수정되는 점선의 바운더리가 나로부터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실선의 바운더리가 된다.


2. 실선의 함정: 편안함과 게으름 사이

실선의 바운더리는 웬만해선 다시 수정되지 않는다. 실선이 되면 편해진다. 그리고 동시에, 게을러진다. 더 이상 그 사람을 파악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니까.


내가 그 사람에 대해 오해를 하건, 정확히 판단을 했건 그런 건 중요치 않다. 나는 이미 그 사람에 대해 판단을 했고, 그 판단대로 그 사람을 대할 것이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이다. 지금 와서 보면, 나는 생각보다 사람을 자주 틀리게 봤다. 그런데도 틀렸다는 사실보다, 이미 그어버린 실선을 지우는 게 더 귀찮았다.


이런 모순적인 태도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 바로 회사다. 회사에서 점선은, 편리하면서도 고달프다.


새로운 사람이 회사에 오면, 그 사람이 신입이건, 경력이건 바운더리가 생긴다. 그 바운더리가 왔다 갔다 하는데, 익숙해져서 그런지 웬만하면 초기 점선이 실선으로 굳어 버리는 거 같다.

하지만, 그건 좋지 않다. 나를 위해서도 그렇고, 그 사람을 위해서도 그렇다. 고정관념에 휩싸이게 되고,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그런 것이 드러난다.


3. 점선의 관계가 주는 멋짐

간혹 그런 사람이 있다. 점선의 관계가 오래도록 유지되는 사람. 바운더리가 계속 바뀐다. 이런 사람을 만나는 것은 참 멋진 일이다.

그 사람이야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이 사람은 내 바운더리 안으로 깊이 집어넣는다. 바운더리 밖에서만 노는 사람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얼마든지 허용한다.

하지만, 그 사람이 그렇게 들어오지 않는다. 점선의 경계에서 노크를 한다. 예의를 아는 것이다. 더 마음에 든다. 참 사랑스럽다.


이 관계의 바운더리는 집에서도, 친구 관계에서도 형성된다. 오랜만큼 바운더리는 대부분 상호 간에 실선이 되어 있다. 이 관계는 잘 바뀌지 않는다. 아버지는 평상시는 참 좋으신 분인데, 술만 잡수면 개차반이 된다는 바운더리도 있다.


4.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하여

나는 내가 고안한 이 점선, 실선 바운더리가 참 마음에 든다. 나는 이미 실선이 된 바운더리를 점선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타인을 보는 바운더리도 그렇고 타인이 나에 대해 구축한 바운더리도 점선으로 바꾸도록 노력한다.


그런데 마음을 먹고, 딱 만나면, 아니나 다를까가 될 때가 대부분이다. 성경에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점선의 관계를 가져가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된다

.

마지막으로 생각해 보니, 모든 관계가 실선인 사람을 우리는 '꼰대'라고 부르는 거 같다.

사람들이 나를 점선으로 봐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여전히 많은 사람을 너무 빨리 실선으로 만든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나를 점선으로 봐준다면, 그럼 좀 '꼰대'에서 '덜꼰대'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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