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의 사이즈, 책임의 사이즈
예전에 내가 게임을 만들었을 때다.
업데이트를 계속하고, 해외 지원을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게임은 잘 됐고, 자잘한 보상도 따라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야근 수당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땐 경험도 많지 않았고, 그냥 재미있게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꽤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내가 뉴스를 본 건지, 누군가에게 들은 건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주 건전하다고 생각했던 그 게임을 통해 청소년들이 성매매를 한다는 이야기였다.
가출한 청소년들이 밖으로 나오면, 특히 여학생들은 선택지가 많지 않다. 모두가 비행청소년은 아니지만 여러 가정 문제로 집을 나왔을 때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것이 결국 성매매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였다.
꼭 그렇게 비극적인 경우만은 아니더라도, 악용되는 사례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때 처음 들었던 생각은 이것이었다.
"아니, 내가 하는 일에 이런 일이 있다고?"
정말 많이 놀랐다. 그래서 동료에게 어렵사리 이야기를 꺼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의외로 담담했다.
“모르셨어요? 시청 앞에 가면 그런 목적으로 서성이는 학생들 많아요.”
나는 몰랐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임원진에게 건의했다. 이런 친구들을 돕거나, 정화하는 캠페인이나 지원 프로그램을 작게라도 해보면 어떻겠냐고. 돌아온 답변은 짧았다.
“우리는 아직 그런 걸 할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니다.”
그들이 말한 ‘사이즈’는 매출의 크기였겠지만, 내가 생각한 ‘사이즈’는 책임의 크기였다.
내가 수천만 원, 수억 원을 들이자는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었다. 수십만 원, 많아야 2~3백만 원 정도. 아니면 게임 내 공지 하나라도 띄우자는 정도였다. 무엇을 하든 ‘할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해 보는 태도만 있었어도 나는 그걸로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답은 에둘러 자르는 말뿐이었다. 내심 실망했다. 결국 아무 조치도 없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넘어갔다.
내 나이대 사람들은 스타크래프트를 잘 안다. 그때는 정말 나라 전체가 들썩였다. 밤새 게임하다 회사에서 졸고, 전략을 짜고, 친구들 다 모여 PC방에 가고. 대한민국 남자들이 군대 다녀온 보람을 가장 크게 느꼈던 시기였는지도 모르겠다.
게임업계에 있는 사람들은 더 잘 알 것이다. “인기 있는 게임을 분석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업무 시간에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사장까지 나서서 같이 했다. 분석이 목적이었는지, 재미가 목적이었는지 어느 순간부터는 구분이 흐려졌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게임이 국가 차원의 전략적 무기가 아닐까?' 한 세대가 게임에 몰두하면서 국가 발전을 저해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꼭 게임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무슨 일이든 비슷하다. 호사다마(好事多魔). 좋은 일이 있으면 마(魔)가 낀다.
마가 끼는 것 자체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하지만 낀 마를 어떻게 대처할지는 내 선택이다. 일이 잘 풀리기 시작하나? 마는 반드시 낀다. 예외는 없다.
중요한 건 그때 어떻게 할지 미리 고민해 두는 것이다. 마에 휘둘리지 말고, 그냥 흘러가게 두지도 말고, 가능하다면 벗겨내고 제거해야 한다.
그때의 나는 솔직히 비겁한 선택을 했다. 조직의 결정 뒤로 숨어버렸으니까. 지금이라면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을까? 확신은 없지만, 적어도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이 되었든 조치는 할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한다. 일단은 마가 끼는 것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기분 좋게 잘 나가는 일부터 만들어야겠다.
#이_개발자의_사고방식 #게임업계 #책임 #조직문화 #일이잘풀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