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참 멋지네요

진짜로

by 데브 마인드

요즘 나는 백 명쯤 되는, 혹은 그보다 더 많은 할아버지들과 같은 그룹 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흔히 할아버지라고 하면, 사람들은 먼저 고집 센 노인네나 꼰대 같은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런데 나는 이 영감들이 참 귀엽다.
그리고, 참 멋있다.


이분들이 대단한 학식을 갖춘 것도 아니다.
기품이 넘치는 것도 아니다.
가만히 입 다물고 있으면 제법 멋있어 보이는데, 입을 열면 분위기가 확 깨질 때도 많다.
성격도 하나같이 제각각이다.


어떤 분은 “라떼는 말이야”를 입에 달고 산다.
그러니 사람들이 슬슬 피한다.
젊은 사람에게 “니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라는 말을 듣고 가슴이 먹먹했다고 하셨다.
그래도 “어린노무 새끼가” 하고 맞받아치지 않고, 점잖게 넘겼다고 한다.


어떤 분은 아주 멋쟁이다.
옆에서 농담을 던지면 씨익 웃는데, 이가 숭숭 빠져 있다.
웃음이 끝나면 또 멋있다.
참 이상하게도 그렇다.


어떤 분은 설명을 해 놓으면 알았다고 하신다.
그리고는 결국 당신 마음대로 하신다.
그것도 또 귀엽다.


그런데 이 귀여움이라는 것이, 그냥 철없는 귀여움은 아니다.


집에 가시다 트럭에 치여 병원 신세를 진 분도 있고,
친구들을 먼저 떠나보낸 분도 있다.
아파서 수술한 분도 있고, 암 수술을 한 분도 있다.
배우자가 사고를 당하고, 다치고, 아프고, 그렇게 삶이 무너질 만한 일들을 다 겪은 분들도 있다.
어떤 분은 일흔이 넘어서도 화물차를 몰며 전국을 다니신다.
예전보다 운행 횟수는 줄었다고 담담하게 말씀하시지만, 그 말 속에는 이미 한 사람의 인생이 들어 있다.


그 안에도 서열이 있고, 그룹이 있고, 서로 눈치를 본다.
늙는다고 사람이 갑자기 성인이 되는 것은 아닌가 보다.
여전히 비교하고, 서운해하고, 뭉치고, 삐치고, 챙긴다.


보다 보면 돈이라는 것, 가난이라는 것이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도 보인다.
어릴 때의 가난은 사람에게 그늘을 만들고,
늙어서의 가난은 사람을 추레하게 만든다.
그 현실은 꽤 잔인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여러 생각이 들었다.
안쓰럽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때로는 우습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을 두고 계속 보다 보니, 앞의 생각들은 조금씩 흘러가고 결국 하나만 남았다.


이 노인들은 참 멋있다는 생각.


젊어야 예순이고, 많게는 아흔을 넘는 이 사람들이
그 긴 시간을 대체 어떻게 살아냈을까.
지금의 저 얼굴과 말투와 습관과 고집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


노인들에게는 편협함도 있다.
그건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넉넉함도 있다.


어린 자녀를 키우는 부모, 특히 첫째를 키우는 부모는 아이의 실수를 그냥 넘기기 어렵다.
계속 바로잡고, 혼내고, 가르친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런데 요령이 없을 때도 많다.


반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다르다.
손자 손녀가 뭘 해도 허허 웃는다.
조금 버릇없이 굴어도 “허허, 이 녀석” 하고 만다.


이게 쉬운 일인가.


카페나 식당만 가도, 아이가 조금만 부산스러워도 얼굴을 찌푸리고 욕부터 하는 젊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이 노인들은 대체 어떻게 그렇게 넘길까.


아마 세월이 그렇게 만든 것 아닐까 싶다.
살면서 맞은 풍파들이 사람 안의 단단한 오만함과 편협함을 조금씩 깎아낸 것 아닐까.
그래서 모난 부분은 남아 있어도, 그 위에 덮이는 넉넉함 같은 것이 생긴 것 아닐까.


또 요즘은 잘 안 보이는 어떤 풍미도 있다.
그 시절의 의리라고 해야 할까.


이 츤데레 같은 영감쟁이들은 자꾸 뭘 챙겨준다.
안 먹는다고 해도 챙기고, 안 쓴다고 해도 챙긴다.
밥 먹었냐고 묻고, 인사했냐고 하고, 괜히 한 번 더 들여다본다.
사람이 없을 때 뭐가 나오면 슬쩍 남겨 두었다가 건네준다.
어디서 뭘 주워 왔는지 자꾸 뭘 하나씩 준다.


겉으로 보면 궁상맞아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건 그 세대 방식의 애정 표현이다.
서툴고 투박하고 촌스러워도, 결국은 마음이다.


물론 가관인 순간도 많다.


할머니보다 할아버지가 혼자 남으면 참 볼 만하다.
영감 죽고 할멈만 있으면 그럭저럭 굴러가는데,

할멈 죽고 영감만 있으면 정말 가관이다.
그런데도 또 살아낸다.
어찌어찌 버틴다.
이겨낸다.


소리는 또 얼마나 지르는지.
목청도 좋다.
하는 짓은 또 얼마나 애 같은지.
그 나이를 먹고도 “이 새끼, 저 새끼”가 툭툭 나온다.
정말 나이를 똥구멍으로 처먹은 것 같은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이런 모습이 정겹다.
귀엽다.
그리고 조금은 이해가 된다.


아마 나도 나이를 좀 먹은 모양이다.


나는 원래 무뚝뚝한 사람이다.
말도 많지 않다.
부모님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무슨 일을 하셨는지, 어떤 굴곡이 있었는지, 어떤 순간에 어떤 판단을 하셨는지, 나는 잘 모른다.


그런데 요즘은 그게 좀 궁금하다.
묻고 싶다.
그리고 부모님이 당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걸 듣고 싶다.


조금만 잘해줘도 그렇게 기분 좋아하는 이 노인들을 보고 있으면,
그냥 말 한마디 부드럽게 하고, 예예 하고 받아주면 될 일을
끝내 못 해서 큰소리가 나는 장면들이 더 아프게 다가온다.


이 노인들이 뭐가 그렇게 멋있는 걸까.


아마 살아낸 것이 멋있는 거다.
버틴 것이 멋있는 거다.
지금보다 훨씬 거칠고 척박한 시간을 건너와, 여기까지 온 것이 멋있는 거다.


그리고 사실 이 세대는 우리나라 인구도 많이 불렸고,
말도 안 되게 발전도 많이 시켰다.
좋든 싫든, 지금 우리가 누리는 많은 것들이 저 세대의 등을 밟고 올라온 결과이기도 하다.


물론 그 공로만으로 모든 것이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고집도 있고, 답답함도 있고, 틀린 말도 많이 한다.
그런데도 나는 자꾸만 이 말을 하고 싶어진다.


당신들, 참 멋지네요.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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