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고생스럽다

개고생

by 데브 마인드

요즘 참 고생스럽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다.


실제로 고생스러우니 고생스럽다는 생각을 갖게 됐겠지. 괜히 멀쩡한데 "참 고생스럽다"는 말이 나오겠는가. 뭔가 팍팍하고, 뭔가 안 풀리고, 몸도 마음도 축 처질 때 그런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것 아니겠나.


이 글 쓰는 것도 생각보다 고생스럽다.


글을 미리 써두고 있다가 올리는 게 아니라, 여러 일을 하다가 그때그때 써서 올리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금세 돌아온다. 아니, 분명 며칠 남은 것 같았는데 정신 차려 보면 또 돌아와 있다. 글이라는 게 좀 한가한 틈에 우아하게 앉아서 쓰면 좋겠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 일 하다가, 저 일 하다가, 머릿속에 잠깐 걸리는 생각을 붙잡아서 쓴다. 그러다 보니 여간 고생스러운 게 아니다.




고생이란 게 뭘까?


고달픈 생활을 고생이라고 할 것 같다. 그럼 또 고달프다라는 건 뭘까?


사전을 들춰보지 않아도 대충 느낌은 안다. 고달프다고 하면 왠지 이미지가 있다. 뭔가 팍팍하고, 칙칙하고, 밝은 빛보다는 흐린 형광등 아래 같은 느낌. 뭔가를 하는데 일은 안 풀리고, 잔고는 없고, 내일을 그려봐도 지금의 이 고달픔이 또 그대로 이어질 것 같은 느낌.


남 좋은 일만 잔뜩 하고, 정작 내 것은 없고.
해놓은 것은 많은 것 같은데 이상하게 손에 남는 것은 없고.
몸은 몸대로 지치고, 마음은 마음대로 푸석푸석해지고.
허허, 곤란하구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다윗이 생각났다.


다윗하면 대개 골리앗과 싸워 이긴 용감한 소년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림도 그렇고, 설교도 그렇고, 대체로 승리의 상징처럼 소비된다. 작은 자가 거인을 이긴 이야기. 믿음으로 이긴 이야기. 그런데 조금만 길게 보면, 다윗은 개고생의 대명사이다.


정말 그렇다. 가만히 훑어보면 저 사람 인생은 아주 그냥 개고생 연대기다.


장남 우대, 남아 선호 분위기가 진한 집안의 막내 아들로 태어나서, 집안의 중심도 아니고, 들판에 나가 양이나 치는 역할을 맡는다. 밖을 돌며 양치면서 살았으니, 낭만적으로 말하면 목동이지, 현실적으로 말하면 위험하고 외롭고 티도 안 나는 일이다. 늑대도 만나고, 사자도 만나고, 곰도 만나고, 그런 것들과 맞서며 살았다니, 이게 무슨 평화로운 유년기인가.


그렇다고 형제들에게 인정받는 것도 아니다. 아버지가 중요한 자리에 아들들을 세울 때도 처음부터 중심에 있는 인물이 아니다. 그런데 갑자기 선지자가 와서, 이 막내가 왕이 될 사람이라고 기름을 붓는다. 이쯤 되면 이제 인생이 확 풀릴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보면 골리앗 사건도 그렇다. 다 큰 전사들도 벌벌 떠는 거인을 어린 다윗이 나가서 잡아버린다. 여기까지만 잘라 놓으면 완벽한 상승 서사다. 무명 소년이 나타나 영웅이 되고, 나라를 구하고, 이제 꽃길이 펼쳐질 것 같은 흐름이다.


그런데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이어지지 않는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오는 길에, 백성들이 "왕이 죽인 적은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적은 만만이다" 이런 식으로 노래를 부른다. 칭찬은 칭찬인데, 듣는 왕 입장에서는 열불이 날 말 아닌가. 결국 속 좁은 왕이 그 말을 듣고 다윗을 죽을 때까지 괴롭힌다.


원래는 공주와 결혼시키겠다고 공표를 해놓고, 실제로는 부마로 편히 앉히는 것이 아니라 자꾸 죽을 자리로 보낸다. 위험한 임무를 던져주고, 저기 가서 죽든 살아오든 해보라는 식으로 사람을 몬다. 그런데 또 웃긴 게, 다윗은 그걸 다 살아서 돌아온다. 보내면 살아 돌아오고, 맡기면 또 해내고, 죽이려고 던져 넣은 미션을 자꾸 클리어해버린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부마로 삼는다. 하지만 부마가 되었다고 끝이 아니다. 같이 밥 먹다가도 수시로 빡돌아서 다윗을 죽이려고 창을 던지고, 칼을 던지고, 발작하듯 분노한다. 이쯤 되면 상사 하나 잘못 만난 수준이 아니라, 그냥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조직 생활이다.


결국 다윗은 튄다. 살려고 도망간다. 그 말을 왕이 듣고, 또 대노해서 죽이라고 군대를 보낸다. 그 과정에서 다윗을 조금이라도 도와준 사람들까지 홧김에 죽여버리니, 내가 살려고 움직였는데 나 때문에 누가 죽는 상황이 된다. 살아남았다고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전국에 현상수배가 걸리고, 동굴 생활을 하며 이리저리 숨어 다닌다. 오늘은 여기, 내일은 저기. 밤에 자도 푹 잘 수가 없고, 사람을 믿어도 될지 모르겠고, 신고 하나 들어오면 또 뛰어야 한다.


신고가 들어와서 외국으로 도망갔더니, 거기서는 또 그 나라 신하가 "얘가 예전에 우리 편 많이 죽인 놈 아니냐, 죽여야 하는 것 아니냐" 하고 나온다. 그래서 미친놈 흉내를 내며 겨우 탈출한다. 왕이 될 사람의 커리어에 "미친 척해서 목숨 부지함" 같은 항목이 들어간다. 이 정도면 진짜 개고생이다.


찌질이 부랑자들, 갈 데 없는 사람들, 빚진 사람들, 마음이 원통한 사람들이 다 모여들어 같이 다닌다. 듣기 좋게 말하면 공동체의 리더지, 현실적으로 보면 다들 사연 많고 불안정한 사람들 데리고 버텨야 하는 것이다. 나라 없는 왕, 집 없는 리더, 끝없는 도망자 같은 시간이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다윗을 따르는 사람들이 머무르던 마을에 적이 쳐들어온다. 약탈하고, 가족들을 다 납치해간다. 당연히 사람들은 다윗 탓을 한다. 심지어 다윗을 따르던 사람들이 다윗을 죽이려고 한다. 밖에서 쫓기고, 안에서도 흔들린다. 사람 인생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꼬일 수 있나 싶다.


그러다가 다윗을 죽이려던 왕이 전쟁에서 죽으면서, 결국 다윗이 왕이 된다. 이제 좀 풀릴 것 같지 않은가. 고생 끝 행복 시작. 그런데 또 아니다.


왕이 되면 다 끝나는 줄 알았더니, 이번에는 신하들이 서로 2인자 자리를 두고 싸우고, 질투하고, 경쟁자를 제멋대로 죽여버려서 입장을 난처하게 만든다. 왕인데도 모든 걸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왕이라서 더 많은 눈치를 봐야 하고, 더 복잡한 계산 속에 살아야 한다. 왕 되고 나서도 계속 전쟁이다.


그러다 잠시 궁에서 쉬다가, 부하의 아내가 목욕하는 것을 보고, 선을 넘는다. 같이 자고, 임신이 되고, 그 일을 덮으려고 부하를 사지로 몰아 죽인다.


여기서부터는 개고생이 단순한 외부의 고난이 아니라, 자기 죄로 인해 더 깊어진 고난이 된다. 사람이 남 때문에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고, 자기 욕망 때문에도 망가진다는 것이 참 씁쓸하다. 결국 그 일은 드러나고, 전염병이 돌고, 그렇게 낳은 아이는 또 죽는다.


그렇게 끝도 아니다. 또 다른 다윗의 아들이 배다른 누이를 강간하고, 그 누이의 오빠는 그 일로 분노해서 형제를 죽인다. 집안이 무너진다. 왕궁이 안전한 곳이 아니라 비극의 중심이 된다.


급기야 아들에게 쫓겨 피난을 간다. 왕이 되어도 아들한테 쫓겨 도망가는 인생이다. 피난 가는 중에 예전 왕의 신하가 따라오면서 욕이란 욕은 다 하는데, 그것도 듣고 간다. 왕인데도 마음대로 못 한다. 강한데도 약하다. 높은 자리에 있는데도 비참하다.


말년에도 편하지 않다. 또 부하가 다른 아들을 왕으로 세우려고 쿠데타를 준비한다. 솔로몬이 왕이 되면서 그게 겨우 저지되지만, 끝까지 조용히 늙는 팔자는 아니었다.


내가 생각나는 대로 적어서 다 맞는지, 순서가 딱 맞는지도 모르겠다. 몇 군데는 섞였을 수도 있고, 세부는 다를 수도 있다. 그런데 큰 그림은 맞는 것 같다. 다윗은 영광의 사람인 동시에, 개고생의 사람이다.


저렇게 개고생했는데,
나보다 더 고생했는데,
나는 아직 괜찮다?
그런 생각을 잠깐 한다.


죽음이라는 것이 난무하던 시절, 저렇게 개고생하고도 살아 있다는 것이 더 신기할 따름이다. 어떻게 저걸 다 지나왔을까. 어떻게 저 상태에서 계속 다음 날을 맞았을까. 어떻게 도망가고, 싸우고, 울고, 후회하고, 또 살아냈을까.




이런 개고생들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이 개고생은 언제 끝나는 걸까.


이 개고생을 이기고 버텨낼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그냥 단순히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인가. 술에 취해 이 시름을 달래면 되는 건가. 줄담배를 피우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가. 아이디어가 팍팍 떠오르나. 돈이 좀 들어오면 괜찮아지나. 누가 내 마음을 알아주면 좀 나아지나. 휴가 며칠 다녀오면 다 잊히나.


막상 또 그렇지는 않다. 술은 깨고, 담배는 꺼지고, 아이디어는 또 실행 앞에서 막히고, 돈은 들어와도 다른 문제가 생긴다. 인생이 그렇게 간단하게 풀리면 다들 덜 괴롭지 않겠나.


새벽부터 일어나 누울 때까지, 하루의 고단함은 왜 오는 걸까. 안 와도 될 텐데 말이다. 누가 부탁한 것도 아닌데 매일 온다. 몸으로 오고, 마음으로 오고, 생각으로 온다. 어떤 날은 일로 오고, 어떤 날은 사람으로 오고, 어떤 날은 미래에 대한 막막함으로 온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게 있다.


또 이렇게 한번 쏟아내고 나면, 뭔가 시원하다.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잔고가 갑자기 차오르는 것도 아니고, 일이 갑자기 술술 풀리는 것도 아니고, 내일이 갑자기 찬란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조금은 시원하다.


가슴께에 걸려 있던 것이, 아주 약간은 내려간다. 머리 위에 떠다니던 잡생각들이, 문장으로 한 번 빠져나오면 조금 정리가 된다. 축 처져 있지 않고, 다시 앞으로 나갈 수 있게 해준다. 아주 대단한 해결은 아니어도, 오늘 하루를 다시 밀고 갈 정도의 힘은 준다.


어쩌면 사람은 고생이 없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고생을 쏟아내고, 견디고, 버티고, 또 다음 날을 맞으면서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비법 같은 것은 없는지도 모르겠다. 대단한 깨달음 하나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인생 역전 한 방으로 사라지는 것도 아닐지 모른다. 그냥 어떤 날은 울컥하고, 어떤 날은 투덜대고, 어떤 날은 쏟아내고, 또 어떤 날은 묵묵히 버티면서 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남들은 어떻게 버티는지 궁금하긴 하다.


당신은 고달플 때,
개고생이 어깨를 짓누를 때,
어떻게 이겨내나?

비법 공유 좀 해줘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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