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눈금, -4에서 +2까지의 거리
내 마음이 어디쯤 있는지 몰라 막막하던 때가 있었다. 슬픔인지, 무기력인지, 아니면 그저 존재 자체가 지워진 상태인지 알 수 없던 폐쇄 병동 시절, 나는 종이 위에 '에너지 레벨 그래프'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 그래프는 찰나의 기분이 아니라, 적어도 하루를 관통하는 에너지의 총량을 나타낸다. 기준이 생기자 치료 일지를 쓰는 것이 한결 수월해졌다. 모호했던 '우울함'이라는 단어 대신, 오늘은 -3이었고 어제는 -2였다는 명확한 숫자로 나를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노트에 적어놨던 내 그래프를 젬미니(Gemini)가 정리해 주었다.
Lv2: 하이 상태.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김. 모든 사람이 나를 긍정적으로 봐줄 것 같고, 나를 잘 이해해 줄 것 같다는 느낌.
Lv1: 좋은 상태. 평범한 상태에 '사람이 좋다'는 느낌이 더해진 상태.
Lv0: 평범한 상태. 내일이 오는 것을 당연하게 여김.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심적 여유가 있음. 식사량이 적당하고 수면의 질이 좋음. 사람을 만날 때 꽤 즐거움을 느낌.
-1: 살짝 다운. 미래보다는 현재 상황에 집중하느라 여유가 없음.
-2: 더 다운. 자극적인 것에 집착하게 됨. 폭식할 가능성이 있으며, 자기혐오(내가 싫음)를 느낌.
-3: 깊은 다운. 죽음이나 자살에 대해 적극적으로 생각함.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짐.
-4: 최악 (병원 필수) 무감각 상태. 맛있는 것이나 멋있는 것 등 어떤 것에서도 즐거움을 느끼지 못함. 죽고 싶다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그럴 에너지조차 남아있지 않은 상태.
기록을 시작했을 때 나의 위치는 -4였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고, 죽고 싶다는 생각마저 할 에너지가 없어 그저 누워만 있던 최악의 상태. 하지만 매일의 일상을 꾸역꾸역 지켜내다 보니 어느덧 -1의 언저리를 밟아보기도 했다.
물론 삶은 순탄치 않다. 회사 업무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마음의 균형이 깨지면 숫자는 다시 -2, -3으로 곤두박질친다. 아쉽게도 내게는 자고 일어나면 곧장 회복되는 마법 같은 회복 탄력성은 없다. 그저 묵묵히, 지루할 정도로 반복적인 일상을 유지하다 보면 아주 조금씩 숫자가 다시 올라올 뿐이다. 매일 우울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결국 나를 구원하는 것은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라 '지켜낸 일상'이라는 것을 매일 배운다.
슬프게도 최근 몇 년간 내 그래프가 0 위로 올라간 적은 거의 없다. 내게 0, 1, 2라는 숫자는 지금의 감각이 아니라 기억의 산물이다. 우울증이 아니었던 시절 느꼈던, '평범하게 사람을 만나고 미래를 계획하던' 그 시절의 나를 복기하며 써 내려간 상상의 영역이다.
4년째 매일 아침저녁으로 약을 삼키며 생각했다. '과거의 나로 돌아가는 건 이제 불가능한 일 아닐까?'
외래 진료 날, 교수님께 나의 에너지 레벨 그래프를 보여드렸다. "입원할 땐 -4였는데, 지금은 보통 -2에서 -3 정도예요. 가끔 -1까지 가기도 하고요."
그리고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던 일말의 희망과 두려움을 담아 여쭤봤다. 저는 정말 회복될 수 있을까요? 어느 정도까지 좋아질 수 있을까요? 교수님은 특유의 유쾌하고 명쾌한 말투로 답하셨다.
"+1에서 +2 정도는 가야 하지 않겠어?"
그 말은 마치 "당연히 치료될 수 있다"는 확언처럼 들렸다.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하지만 다시는 닿을 수 없을 것 같았던 '평범한 상태'가 교수님에게는 당연히 도달해야 할 목표 지점이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내 마음속엔 작은 고양감이 일었다. "+1, +2 정도면 저는 정말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사실 +1과 +2의 상태는 로또 당첨처럼 대단한 행운이 필요한 일이 아니다. 누군가는 매일 숨 쉬듯 느끼고 있을, 그리고 과거의 나 또한 매일 누렸던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다. 그 '당연한 일상'이 다시 나의 현실이 될 수 있다는 희망. 나는 오늘도 -4의 기억을 뒤로하고, 언젠가 만날 +2의 나를 향해 아주 느린 걸음을 옮긴다.
우울의 늪에 깊이 침잠하다 보면, 모든 감정이 시커먼 덩어리로 뭉쳐 나를 짓누르곤 한다. ‘그저 힘들다’는 말로는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그 막막함 속에서 나만의 에너지 레벨 그래프를 그리는 일은, 내 마음의 해상도를 정밀하게 높여가는 작업과도 같았다. 이 그래프를 그리며 깨달은, 나만의 지표를 가졌을 때의 유익함은 세 가지다.
첫째, 감정을 객관화할 수 있다. “죽고 싶다”는 극단적인 생각이 밀려올 때도, “지금 내 에너지가 -3까지 떨어졌구나”라고 숫자로 치환하면 감정과 나 사이에 아주 미세한 틈이 생긴다. 그 작은 틈이 나를 통째로 무너지지 않게 지탱해 주는 안전거리가 된다.
둘째, 나를 보호하는 ‘심리적 안전장치’가 된다. 내가 -4 단계에 ‘병원 방문 필수’라고 명시해 둔 것처럼, 어느 지점에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지 스스로 매뉴얼을 갖게 된다. 판단력이 흐려지기 전, 이성적인 상태에서 미리 약속을 정해두는 것이다.
셋째, 미세한 회복의 증거를 발견하게 한다. 0 이상의 고양된 상태가 아닐지라도, -3에서 -2로 올라선 그 작은 변화는 내가 오늘을 ‘살아내고 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되어준다.
당신의 오늘 에너지 레벨은 몇 점인가? 꼭 거창한 그래프가 아니어도 좋다. 타인이 정의한 ‘행복’이나 ‘정상’의 기준이 아니라, 오직 나만이 읽어낼 수 있는 컨디션의 눈금을 하나씩 그려보았으면 한다. 비록 지금은 마이너스의 영역을 서성이고 있을지라도, 숫자로 기록되는 그 모든 순간은 결국 우리를 플러스의 세계로 안내하는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우리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 +2의 일상을 누리게 될 그날을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