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과 1의 세계에서 찾은 나의 ‘즐거움’

게임 중독 ‘금쪽이’에서 즐거움을 설계하는 개발자가 되기까지

by 누워 사는 개발자

읽기에 앞서


독자를 위한 용어 해설

엘리니아: 게임 ‘메이플스토리’ 속에 등장하는 요정들이 사는 숲 속 마을이다. 신비롭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특징이다.

오타쿠: 특정 분야(주로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에 깊이 몰입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C언어: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기초가 되는 언어로, 성능이 강력하여 시스템 개발이나 게임 엔진 제작 등에 널리 쓰인다.

Visual Studio: 프로그래밍 코드를 작성하고 실행해 볼 수 있는 '공장' 같은 프로그램(IDE)이다.

정보올림피아드: 수학의 정석처럼 컴퓨터 프로그래밍 실력을 겨루는 공신력 있는 알고리즘 대회이다.

Depth(뎁스) 카메라: 사물과의 거리를 측정하여 입체적인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특수 카메라이다.

Handgesture Tracking(핸드제스처 트래킹): 카메라가 사람의 손동작을 실시간으로 인식하고 그 움직임을 따라가는 기술이다.

해커톤: '해킹'과 '마라톤'의 합성어로, 짧은 시간(보통 1~2일) 동안 쉼 없이 아이디어를 짜고 실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대회이다.

AR/VR: 각각 증강현실(현실에 가상을 덧입힘)과 가상현실(완벽한 가상 세계 구축)을 뜻하는 차세대 영상 기술이다.


나의 부모님은 게임에 관대한 편이셨다. 명절이면 용산 전자상가에서 오빠와 함께 게임기를 구경하고 새로운 게임 팩을 고르는 것이 우리 가족의 특별한 이벤트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1박 2일 가족여행의 동반자는 닌텐도 보이었고, 나는 여행 내내 ‘포켓몬스터 골드 버전’의 엔딩을 보고 또 보았다.


집에 있던 한 대의 컴퓨터는 오빠와 내가 공유하는 작은 우주였다. ‘워크래프트’, ‘뿌요뿌요’, 그리고 주말 아침마다 공중파에서 방영해 주던 애니메이션 ‘별나라 요정 코미’의 게임 시디가 내 보물이었다. 인터넷이 보편화되던 시기, 나의 집념은 ‘메이플스토리’에서 꽃을 피웠다. 밤늦게까지 게임을 하는 것은 금지됐지만, 부모님은 “차라리 일찍 일어나서 하라”라고 하셨다. 나는 그 말을 충실히 따라 새벽 3시에 일어나 아무도 없는 새벽의 ‘엘리니아’ 숲을 홀로 누볐다. 레벨을 올리는 공략보다는 그저 평화로이 맵을 탐험하고, 우연히 만난 친구와 오목을 두는 그 여유로운 시간이 좋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게임 중독 금쪽이’로 방송에 나갔을 법한 열정이었다.


오빠가 중학생이 되고 나 혼자 하교 후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고학년 시절, 나의 세계는 더욱 깊어졌다. 여성 캐릭터들이 주축이 되어 화려한 액션을 선보였던 ‘그랜드체이스’에 매료되었고, ‘샤먼킹’이나 ‘강철의 연금술사’ 같은 조금은 어둡고 성숙한 애니메이션을 보며 소위 ‘오타쿠’로서의 기본 소양을 다졌다. 네이버 블로그에 오오츠카 아이의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걸어두고 소통하던 그 시절은 나의 감수성이 가장 예민하게 날 서 있던 시기였다.


코딩을 처음 접한 것은 순전히 “게임을 만들어 볼 수도 있다”는 학원 선생님의 감언이설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내가 마주한 것은 Visual StudioC언어, 그리고 ‘정보올림피아드 준비반’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입시의 세계였다. 게임은커녕 알고리즘과 사투를 벌여야 했지만, 그때 배운 논리적인 사고는 훗날 수학과 과학을 공부하는 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대학에 진학해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며 드디어 게임 제작 동아리에 발을 들였지만, 그곳에서 나는 뜻밖의 벽을 만났다. 게임에 정말 ‘미쳐있는’ 동기들을 보며, 내가 가진 열정이 그들의 광기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덴마크 교환학생 시절 게임학 강의를 들으며 한국 온라인 게임의 역사를 소논문으로 써낼 만큼 애정은 깊었지만, 만드는 이의 길은 조금 달랐다. 방황 끝에 픽사의 애니메이션 엔딩 크레딧을 보며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내 이름 석 자가 저 화려한 시각적 성취 뒤에 남기를 바랐다.


그 후의 삶은 치열했다. 컴퓨터 그래픽스 연구실에서 Depth 카메라를 이용해 Handgesture Tracking을 연구하고, 유학 자금을 벌기 위해 학원 강사 알바를 병행했다. 해커톤은 배고픈 대학생에게 식사와 스펙을 동시에 제공하는 최고의 취미였다. 비록 경제적 현실과 코로나19라는 변수로 인해 유학의 꿈은 잠시 접어두고 취업을 선택했지만, 그 과정에서 쌓아온 ‘치열한 흔적’들은 나를 좋은 회사로 이끌어 주었다.


과거 대기업 임원 면접에서 AR/VR과 게임이 한시적인 유행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은 날이 종종 생각난다. 나는 당당히 대답했다. 사람들이 ‘재미’를 추구하고 데이터를 ‘시각화’하고자 하는 욕구는 변하지 않는 본능이라고. 비록 그 면접에서는 떨어졌지만, 나의 신념은 여전히 확고하다.




평소 팔로우하며 지켜보던 ‘로그캐빈’님의 글을 읽으며, 나도 언젠가 꼭 한 번은 정리해보고 싶었던 ‘컴퓨터와 나의 일대기’를 비로소 마친다. 비록 그분의 기록처럼 깊고 넓은 서사는 아닐지라도, 나만의 궤적을 차분히 훑어보는 시간은 그 자체로 충분히 즐거웠다.


결국 나는 항상 내가 재밌어하는 것, 내가 가치 있다고 믿는 것을 만드는 과정에 매료되어 여기까지 왔다. 설령 내가 공들여 만든 앱이 큰 인기를 얻지 못하더라도, 그 개발의 여정 속에서 순수한 즐거움을 발견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듯, 결과라는 성적표에는 언제나 ‘운’이라는 필연적인 변수가 작용하기 마련이다. 통제할 수 없는 결과에 연연하기보다, 나는 그저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그 과정 자체를 온전히 즐기기로 한다.


그것이 새벽 3시에 엘리니아를 누비던 어린 소녀가 지금까지 코드를 짜고 있는 가장 확실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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