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나는 오늘 생각을 멈추기로 했다
작년 말, 결국 우울증이 깊어진 것은 생각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내 마음은 좀처럼 '현재'에 머물지 못했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후회 속에 침잠하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불안을 끌어다 쓰며 스스로를 갉아먹었다. 연초에 세상을 떠난 동료의 소식, 그리고 먼저 가신 할아버지의 빈자리는 그 어두운 생각들에 '죽음'이라는 그림자를 짙게 드리웠다.
우울증의 끝이 자살이라는 파멸이라면, 역설적으로 나는 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생각을 비워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처절한 생존 게임이다. 생각을 비워내지 못하면 내가 먹힌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도구들을 꺼내 들었다.
첫 번째 도구는 수영이다.
물속에 들어가면 오직 물을 가르는 감각에만 집중하려 애쓴다. 하지만 불쑥불쑥 다른 생각들이 범람한다. 그럴 때면 '아, 지금 또 생각이 범람하고 있구나' 하고 객관적으로 나를 인지한다. 그리고 다시 온 힘을 다해 물을 가르는 손끝의 감각에 의식을 집중한다. 물 밖의 소음과 내 머릿속의 소음을 차단하고 오직 현재의 움직임만 남기는 과정이다.
두 번째 도구는 반신욕이다.
책에서 배운 생각을 비우는 방법으로 반신욕이 있었다. 반신욕은 나에게는 확실한 해방감을 준다. 욕실이라는 좁고 따뜻한 공간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허락된 나만의 요새다. 내가 사랑하는 고양이조차 들어올 수 없는 그 완벽한 고립 속에서, 나는 비로소 타인의 시선과 세상의 속도에서 벗어난다. 뜨거운 물에 몸을 맡기면 엉켜있던 생각의 실타래도 조금씩 느슨해진다.
세 번째 도구는 소설이다.
에세이나 자기 계발서는 결국 다시 나의 현실이나 삶의 태도를 돌아보게 만든다. 하지만 소설은 다르다. 영상 매체보다 훨씬 높은 밀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면서도, 나를 현실과는 전혀 동떨어진 세계로 데려다 놓는다. 타인의 삶, 혹은 존재하지 않는 세계의 이야기에 몰입하는 동안 나의 남루한 현실은 잠시 잊힌다.
마지막 도구는 '우주의 기원'이다.
하루를 마감하고 침대에 누우면 어김없이 자책과 후회의 굴레가 시작된다. '오늘 왜 그런 실수를 했을까', '내 인생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답 없는 질문들이 나를 괴롭힐 때 나는 유튜브를 켠다. 화면은 보지 않고 오직 소리만 듣는다.
예전에는 위로가 될까 싶어 부처님 말씀이나 자기 계발 콘텐츠를 찾기도 했지만, 요즘은 나의 과거도, 미래도, 심지어 지구의 운명조차 아무런 상관이 없는 '우주의 기원'이나 '양자역학' 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광대한 우주의 시간 속에서 나의 고민은 한낱 먼지보다 작아진다. 나라는 존재의 비대해진 자아를 우주의 크기에 희석해 버리는 것. 그 무심한 음성들을 길잡이 삼아 나는 비로소 생각을 멈추고 잠에 든다.
나에게 생각을 비우는 일은 사치스러운 명상이 아니다. 내일의 나를 살게 하기 위한, 오늘도 목숨 걸고 행하는 가장 치열한 의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