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라는 파도 대신, 오늘이라는 모래사장을 지키는 법

배포 버튼을 누른 뒤의 마음으로

by 누워 사는 개발자

모건 하우절은 그의 저서 《불변의 법칙》에서 결과에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운'이 강력하게 작용한다고 말한다. 노력의 총량과 결과의 크기가 언제나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때로 허망함을 주지만,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해방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이제 결과를 보지 않기로 했다. 결과는 내 영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것이다.


배포 버튼을 누른 뒤의 마음으로

개발자로서의 삶도 이와 닮아 있다. 코드를 짜고,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한 뒤 '배포' 버튼을 누른다. 그 버튼을 누르는 순간까지가 나의 몫이다. 배포가 끝난 뒤에는 물을 떠놓고 기다리는 심정으로 지켜볼 뿐이다. 잘 되면 좋은 것이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면, 그다음의 성패는 오롯이 세상의 몫으로 남겨두는 법을 배운다.


복직 후 첫 릴리즈. 그날도 빌드가 난리가 났다. 빨리 배포해야 하는데. 이 팀 저 팀에서 빌드가 깨진다.

폭풍이 지나가는 점심시간. 서버에 빌드를 돌려놓고 기다리고 있다.

예전엔 서버에 빌드를 돌려놓고 기다리는 시간에 아무것도 못했다. 불안하기 때문에 컴퓨터 앞을 못 벗어나고 의미 없는 유튜브 콘텐츠나 봤다.

복직 후 첫 릴리즈의 그날은 달랐다. 빌드를 돌려놨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다) 나는 초밥을 배달시켰다. 그리고 반신욕 물을 받았다. 서버의 결과는 점심시간이 지난 내가 해결하겠지. 점심시간의 나는 따뜻한 물을 즐기고 초밥을 먹을 것이다.

불안감에 컴퓨터 앞을 벗어나지 못하든, 반신욕을 하며 아무 생각을 안 하든, 결과는 모르고 심지어 이미 정해져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냥 반신욕을 하며 아무 생각을 안 하는 게 낫지 않나.


결과에는 '운'이 많이 작용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 할 것인가?


결과에 '운'이 많이 작용한다고 해서 내 노력이 헛된 것 같고 무기력해질 때가 있다.


무기력해 있으면 이뤄내는 것에 가까워지는가? 지금까지의 경험상 아니다. 약을 잘 챙겨 먹고, 나 자신의 건강을 챙기고, 주변을 챙기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챙겼을 때 이뤄내는 것에 가까워진다. 그렇게 하나하나 쌓아가다 보면 어느새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루진 못해도 가까워져 있을 수도 있다.


내가 삶의 지침으로 여기는 문장이 있다. 영화 <마션>의 명대사이다.


At some point, everything's gonna go south on you. EVERYTYING's gonna go south and you're going to say, “This is it. This is how I end.” Now you can either accept that, or you can get to work. That's all it is.


You just BEGIN. You do the math. You solve one problem, and you solve the next one, and then the next.


And if you solve enough problems, you get to come home.


(오역 의역 주의) 어느 순간, 한계에 닿았다고 생각된다. 한계에 닿아서 당신은 "이게 끝이다"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당신은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행동을 취하느냐를 선택한다. 그것이 다이다. 그저 시작해라. 생각하라. 하나의 문제를 풀고, 그다음 문제를 풀고, 그다음 문제를 풀라. 그리고 충분한 문제를 풀었을 때, 집에 돌아갈 수 있다.



지금, 여기라는 유일한 진실


이런 깨달음은 우울증이라는 깊은 늪을 지나며 더욱 선명해진다. 삶과 죽음에 대해 치열하게 고찰하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촘촘한 의료 시스템과 나를 놓지 않는 주변 사람들의 보살핌은 나를 다시 이 세상에 묶어둔다. 떠날 수 없다면 살아가야 한다. 그것도 잘.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내가 찾은 답은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그냥 일상을 지키는 것'이었다. 일상을 유지하고 현재에 머무는 것. 과거는 이미 지나간 데이터이고, 미래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불확실한 코드일 뿐이다. 지나온 시간에 후회라는 주석을 달지 않고, 오지 않은 미래에 불안이라는 버그를 심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최적화다.


그저 매일의 루틴을 지키며 오늘을 살아간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 날은 예상치 못한 행운에 웃기도 하고, 어떤 날은 예고 없는 슬픔에 잠기기도 할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인생이라는 거대한 프로그램의 일부임을 안다.


누군가는 비웃을 지도 모르는 내 인생의 목표. 바로 자연사이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오늘을 충실히 실행하다가, 언젠가 자연스럽게 시스템이 종료되는 날을 맞이하고 싶다.

이전 27화사적인 딸 대신 사무적인 성인이 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