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북 없는 일주일: 폐쇄병동 입원기

가장 완벽한 로그아웃, 그리고 시작된 내부 디버깅

by 누워 사는 개발자

모든 연결의 해제 (Disconnect)


대학병원의 무거운 철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나의 '로그인'된 삶이 종료되었다. 보호병동에 입원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일은 세상과 소통하던 모든 장비를 반납하는 것이었다. 2019년 커리어를 시작한 이후 단 한 번도 몸에서 떼어놓은 적 없던 스마트폰과, 분신과도 같았던 맥북이 내 손을 떠났다.


충전기 선조차 위험물로 분류되는 그곳에서, 나는 전선 하나 없는 완벽한 무선(Wireless)의 상태가 되었다.


처음에는 금단 현상처럼 불안이 엄습했다. 지금 쏟아지고 있을 슬랙 메시지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멈춰버릴 프로젝트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더 이상 응답할 수 있는 도구가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아주 오랜만에 기묘한 해방감이 밀려왔다.



주석 처리된 삶의 민낯 (Legacy Code)


세상과 단절되자 업무와 성과라는 주석으로 가려두었던 나의 민낯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20대 초반부터 나를 괴롭혔던 우울의 뿌리, 그리고 차마 들여다보지 못했던 가정의 아픈 서사들이 적나라하게 눈앞에 펼쳐졌다. 디지털 소음이 사라진 병동의 정적 속에서 나는 피할 곳 없이 나의 '레거시 코드'들을 마주해야만 했다.


폐쇄병동의 시계는 사회의 시간보다 훨씬 느리게 흘렀다.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약을 삼키고, 다른 환자들과 섞여 대화를 나누는 단순한 일과들이 반복되었다.


평소라면 '비효율'이라 생각했을 이 시간들이, 실상은 과부하로 타버리기 직전이었던 내 엔진을 식히는 소중한 '인터벌(Interval)'이었다.




작은 성취로 채우는 시스템 최적화


복잡한 알고리즘을 설계하던 머리로 내가 한 일은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다. 병동 안에서 제공되는 종이에 연필로 고양이 캐릭터를 그리거나,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계절의 변화를 관찰하는 일.


우울증은 나에게서 '실행력'을 앗아갔지만, 병동의 단순한 규칙들은 나에게 아주 작은 단위의 '성취'를 허락했다.


제시간에 약을 먹는 것, 이불을 반듯하게 개는 것과 같은 로우 레벨(Low-level)의 작업부터 하나씩 다시 수행해 나갔다. 맥북은 없었지만, 나는 내 마음이라는 기기 안에서 오랫동안 쌓여있던 정크 파일들을 비우고 초기 설정값을 재조정하는 작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멈춤이 아닌, 리부트를 위한 충전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개발자로서의 커리어에 비하면 찰나와 같았지만, 나라는 사람에게는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정지 기간이었다. 병실 침대에 누워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고양이들을 떠올렸다. 빨리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보다,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고쳐서' 돌아가고 싶다는 의지가 앞섰다.


때로는 시스템을 완전히 셧다운하고 플러그를 뽑아야만,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결함이 보인다.


폐쇄병동에서의 일주일은 그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나는 이제 다시 세상으로 로그온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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