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려낸 은인 같은 물건을 묻는다면 블루투스 스피커라고 말하고 싶다. 그 이후로 파란 잉크가 들어있는 펜과 무늬 없는 빤질한 종이, 그 뒤로 간절함 정도가 따라오겠지.
새로운 직장으로 출근을 했고 어느덧 두 달이 지났다.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도 느꼈지만, IT 개발자 일을 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대충 적당한 경력이었지만 슬플 만큼 얼어있다는 취업시장이 크게 차갑지는 않았다. 다만 이직하여 새로운 직장에 다니게 되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나에게서 자유롭게 음악이 차지하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버렸다는 것 정도.
보통 IT 개발자들은 각자의 일에 충실하고 책임을 다한다면 '방목'하는 곳들이 많은데, 이곳은 꽤나 보수적이다. 정장을 입고 출근을 하고 있다. 대학교 3-4학년 내내 무거운 정장을 입고 다녀서 다시는 입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넥타이도 풀고 조금은 풀어져가는 중이라고.
이전 직장에서는 일하면서도 이어폰을 계속 꽂고 살았다. 근무태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개인의 삶을 계속 유지해가면서 일을 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숨을 참고 전복을 따오는 것만이 해녀가 아닌, 수평선의 하늘을 바라보며 돌과 바다 표면의 미역을 훑어오는 해녀도 있는 것처럼. 하지만 새로운 곳에 와보니 그럴 수는 없게 되었다. 숨을 참는다면 이제 나에게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남아 있을까.
음악은 당신에게 어떻게 맴돌고 있는지. 라디오나 유튜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대로. 흘러나오는 대로 틀어두는 편인지, 아니면 철저한 선곡을 통해서 틀어가는지.
난 유튜브나 재즈 라디오, 혹은 길거리를 걷다가 들려오는 노래 중에 귀에 걸리는 노래가 있다면 같은 노래를 꽤 오래 틀어두는 편이다. 어느 날은 며칠을 틀어두기도. 한 노래를 오래 틀어두는 이유는 기분 전환이라기보다 자꾸 전환되는 기분을 붙잡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여행을 할 때도 한 도시를 지겨울 만큼 오래 머무르는 성격이다. 항해를 마치고 닻을 내리는 느낌으로. 나는 돛보다 닻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 그것이 좀 더 다정하고 좋은 마음에 가깝다고 믿고 있어서.
그러니 내가 나의 공간에 닻을 내리고 사는 방식을 말해보려고. 절대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당신의 기분에 따라 어디 정말 독방에 혼자 꼭 갇혀 잠시 가라앉고 싶다면 밀폐형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선택하고, 새로운 공간에서 이것저것 기분전환을 한다면 적당한 울림이 있는 스피커가 좋다. 그래서 두 가지가 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학생들에게는 조금 부담스럽겠지만, 돈을 번다면 나를 위해서 10-20만 원 정도를 모아 마련해보자. 보험 든다고 생각하고. 정말 당신을 오래오래 좋아지게 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굳이 꼭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스피커를 좀 더 추천하겠다.
내가 쓰고 있는 스피커 필립스 BT-50 과 헤드폰 SONY MDR-7506 / 온라인 기준 약 5만원 & 13만원
핸드폰을 사면 끼워주는 기본적인 이어폰 말고 5만원이 좀 넘는 이어폰을, 10만원 내외의 블루투스 스피커를, 20만 원 내외의 헤드폰 정도로도 삶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크게 바뀐다. 물론 한번 향상된 삶이 시작되면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 갈 수는 없지만.
적당한 브랜드를 추천하자면 JBL, SONY, BOSE 정도가 가격도 품질도 편안하다. 물론 더 비싼 브랜드도, 모르는 브랜드이지만 화려한 스펙을 자랑하는 제품도 많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잘 아시는 분들께서 판단하시는 것이 좋겠다. 아시는 분은 아시는 대로 구매하시면 좋고(그리고 이 글을 읽지도 않겠지만) 살면서 음향기기에 전혀 관심이 없고, 위의 세 브랜드 제품을 들어본 적이 없는 분이라면 추천한다.
내가 써보지 않은 브랜드를 추천할 수 없으니까. 수십 가지 브랜드를 써봤지만 정말 딱 적당한 선에서 보편적이면서 견고하고 AS 적당하다 생각되는 브랜드로 나열해본다. 개인적으로 정말 못써주겠다고 생각한 브랜드들도 있지만 그것들을 알려주면 민사소송에 휩싸일 것 같아서.
왼쪽 상단의 2개는 JBL, 왼쪽 아래쪽은 BOSE, 오른쪽은 SONY의 제품들
대형 교보문고나 백화점에 간다면 이어폰/스피커를 청음 할 수 있는 매장들이 많이 있다. 음향기기는 음색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본인의 취향에 맞는 것이 중요하니 들어보고 사는 것이 좋다. 백화점이 너무 비싸다면 가서 들어보고 인터넷으로 주문해도 되니까. 전반적으로 BOSE 제품은 저음이, SONY 제품은 중-고음이 조금 더 선명한 경향이 있고, JBL제품은 중간쯤 되는 느낌이다.
방 한켠에 무엇이든 스피커로 소리를 틀어두면 많은 것들이 살아난다. 핸드폰이나 노트북에 달린 좁고 작은 출력장치를 억지로 뜯고 나오는 소리보다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건강한 아이들을 데려다 놓으면 그 진동에서 많은 것들이 느껴지게 된다. 떨림은 항상 당신을 조금 더 구해줄 테니까. 그러니 듣기보다 연주하기를, 부르기를, 좋은 사람을 만나 말을 나누기를. 그 진동이 만족스럽게 마음 한켠을 사각사각 털어내기를, 마음 아픈 일들에게서 조금씩 나아져 가기를.
인생 노래들이 분명 있을 거고, 그 흐름이 너무나 편안해서 자꾸 그곳으로 간다.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매여있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누구는 말하지만, 삶은 새로운 곳으로 매일 나아가더라도 마음은 내가 편안한 그곳에 오래 머물러도 간혹 다시 되돌아가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것대로 나를 건강하게 하겠지.
지금도 난 이 글을 쓰면서 노래를 듣고 있다. 아까 말했듯 한 노래를 오래 틀어두고 있다. 그것이 나의 수많은 바다에서 자꾸 또 다른 바다로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두고 있는 닻과 같아서. 노래를 새롭게 틀 때는 내가 그 바다로 떠나고 싶을 때이니까, 언제는 너가 처음 왔던 그 날처럼 너가 떠오르지 않는 노래를 틀어서 종일 듣게 되는 날이 오겠지.
노래도 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많은 시를 읽어나가야 하는데 자꾸 한 단어 한 글자에 집착하는 모양 같아서 조금은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중이긴 하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인다는 것은 마음이 쓰인다는 걸까. 왜 자꾸 당신은 멀어지려고 하면서 자꾸 나와 무엇 하나씩 이어지는 것인지. 다른 것은 다 물었고 묻지 못했어도 답은 들은 것 같은데 딱 한 가지 묻지 못했다. 아마 이건 용기가 생겨도 묻지 못할 것 같다. 선명한 선을 마주 보고 있고, 나쁜 말이 있고, 나는 그저 너 한정 서툴렀던 것뿐.
요즘 나는 무슨 노래를 듣고 있을까. 이것들을 적어보는 것도 좋은 기록이 되겠지. 나도 모르는 새 나를 살리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것들.
Kenshi Yonezu - Lemon
콜드 - 마음대로
Little Mix - Secret Love Song
Guns and Roses - November Rain
Billie Eilish - Wish You Were Gay
Ellegarden - No.13
A Lovely Night - Lala Land OST.
잔나비 -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들려오는 것들은 마치 새로운 공간으로의 여행이고 출발이고 때로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그래서 어떤 방향으로라도 기쁘게 생각한다. 그러므로 출퇴근길 전철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단지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이어폰을 꽂는 마음은 놓아준다. 당신에게도 이제 이어폰을 꽂는 그 시간과 방에서 홀로 노래를 틀어두는 시간이 조금 더 소중해 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