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heel of Fortune
너무나 멈춰있는 주말
운명이라는 말은 너무 거창해서 그 단어를 한동안 의식적으로 쓰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했다. 기분 좋게 또는 슬프게 마주치는 모든 것들에게 운명은 무슨, 내가 원래 가려던 방향대로 잘 가고 있을 뿐이라고 많이 위로해가며 걸어갔다. 그중에 너를 알아 매일 스치던 바람에 색이 조금 많이 물들었을 뿐.
삶은 마치 타롯카드의 운명의 수레바퀴이거나 개울에 물을 적시는 물레방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 슬픈 시간은 잠시 멈춘 수레바퀴 혹은 물레방아처럼 물이 아래로 떨어지는 시간일 거라고. 아마도 반 바퀴를 더 돌면 물이 차오르는 시간이 있을 테고, 어쩌면 반 바퀴를 끝으로 멈추는 바퀴일지도 모르겠지만, 시간처럼 모든 것이 흐르고 있다면 분명 처음처럼 또 마음이 차오르고 다시 또 기쁘게 흘러가는 시간이 올 것 같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번의 그 한 바퀴가 마저돌면 모호한 나의 모든 생각에 너라는 믿음이 생기겠지.
시골길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물레방아를 마주치면 나는 저것이 지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세상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그 한 바퀴만큼을 기다리고 있는 중일지도. 그 한 바퀴가 작은 모래시계만큼일지, 지구가 발레처럼 우아하게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도는 만큼일지, 아니면 곡예단이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만큼일지, 또는 무엇이 무엇을 도는 만큼일지. 그것의 크기만큼 지금 나의 우주에서 벌어진 사건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증명할 수 있겠지.
그러니 지금 무겁게 멈춘 만큼 그 시간이 소중하기를. 바퀴를 굴려줄 수는 없겠지만 멈춰있는 동안만큼은 같이 서로의 예전의 기쁜 일들을 이야기하며 따듯한 차 한잔을 나눌 수 있기를. 그러니 모든 지금은 반드시 필연일 거야.
요즘 분위기가 좋지 않아 출퇴근을 제외하고는 강제로 갇혀있는 삶이다. 원래 집 밖을 잘 나가지 않는 성격이지만 그렇다고 갇혀 사는 것은 또 다른 슬픔이다. 나외의 모든 것들은 잘 흘러가는 기분이다. 사실 나도 흘러가고 있는 중일 텐데, 마치 카시오페아의 빛이 지구로 와서 별이 되는 사건처럼. 달리는 기차의 바깥의 풍경과 밖에서 바라보는 기차는 누구보다 빠르게 가고 있지만 그 안의 나는 누구보다 멈춰있는 것처럼.
토요일에는 늘어지게 방 안에서 밀린 흑백 영화를 보고, 재즈 라디오를 틀고 낙서를 하거나 치킨을 시켜놓고 눕거나 한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도 나는 이렇게 있겠구나 생각을 한다.
비브르 사 비 (Vivre Sa Vie, 자기만의 인생). 최신영화와 명작 영화 사이에서 고민하는 요즘, 선택 없이 바깥에 나갈 수 없는 시간이 어쩌면 감사하다.
나도 한때는 일요일이라면 단정하게 교회를 갔다. 그곳에서 목사님이 전하는 말들이 나에게 도움이 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졸거나 전화기를 만지고 있다가 다 같이 기도하자는 시간이 오면 그저 삶에서 내가 기대하지 않은 나쁜 일만큼은 일어나지 않게 해 주세요 하는 부적 같은 시간이었다. 반기는 사람들, 서로와 서로가 너무나 친한 사람들, 제각각 신앙이라는 재산이 풍부한 그곳에 가난한 나는 어울리지 않았다.
번번이 종교가 달라 돌아서는 연인들의 소식을 들었다. 종교는 변할 수 없는 진리의 생각이라고, 삶의 환경이라고, 그것은 마치 운명처럼 극복해내지 못하는 차이일 거라고 토닥이며 이 올바른 사람들 안에서 좋은 운명을 만날 거라고.
이상했다. 인간과 신의 사랑을 믿는 증표인 종교가 인간과 인간이 믿는 사랑을 갈라놓는다면 사랑을 전한다는 종교라는 건 대체 무엇 때문에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 무엇이든 한쪽을 버려야만 하는 것이 있다면 나는 그것이 종교의 일은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사랑이 만들어내는 운명이라는 단어는 예쁘게 지켜지기를.
멈춰있는 주말 하루를 요즘 이렇게 허비하고 이렇게 쓴다. 늘어지는 형태이거나 편지의 형태이거나 그림의 형태이거나 노래의 형태이거나 꿈의 형태이거나 어디로든 기도하는 마음이거나 하는 내가 쓰는 모든 것들, 그저 간절한 그것들. 그것들을 전하는 일을 누군가 반드시 하고 있을 것이다. 매일밤 하늘이 하고 있을 것이고, 아니라면 바람이, 어둠이, 아침이, 떨림이, 그들조차 그것들을 전하지 못한다면 아직은 미지의 작은 양자들로 하여금 가장 생각나는 너에게 어떻게든 가고 있을 거라고. 그것이 우주니까.
믿고 있다. 무언가 간절함이 있다면 그것은 떨어뜨리는 방향보다 이어주는 쪽에 더 가까울 거라고. 생각과 계산에 무수히 실패한 적 많아도 예감과 믿음은 틀린 적 없다. 나는 계속 과학자가 될 수 있을까.
슬픔을 예민하게 느낀다면 웃음도 예민하게 느껴보고 싶다. 너무나 멈춰 있는 주말. 그것이 언제든 다시 수레바퀴처럼 굴러갈 거라고 믿는다. 기다릴게. 그러니 그동안 모두가 건강하길.
너무 멈춰 있어서 멀어지는 것들이 느껴진대도 운명이라면 그것이 어느 날 모자를 붙잡아야 할 만큼 빠르게 굴러서 눈 앞에 데려다 줄 거니까. 그런 미래를 행복하게 기다리고 있다. 비가 오고 있다면 곧 그칠거야. 힘든 시간이 있다면 분명 너에게도 언제든 달릴 준비가 된 멋진 운명의 수레바퀴가 있을 거야. 내가 보증할게,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니까. 그저 어떤 단어로라도 그저 내가 그리고 너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며.
좋은 주말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