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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뎁씨 Feb 04. 2020

크레파스


'크레파스에 흰색은 왜 있는 거야?'
세상이 하얗지 않아서
'그러면 검은색은 왜 있는 거야?'
마냥 검지만도 않을 거야


흰색과 검은색. 두 단어만으로도 너는 나에게 선명히 기억된다.


아주 잠깐이라는 만큼의 시간이었지만 너와 있으면 검은색 크레파스만으로도 행복했다. 검은 크레파스를 들고 잠시라도 밝은 곳을 덧칠하는 재미가 있었다. 웃었다. 크레파스는 항상 모자랐다. 칠하는 속도보다 가파르게 피어나는 밝은 것들이 있었다. 밝아지는 행복을 멈출 수는 없었다. 행복만큼 커져가는 소란이 잦아드는 기분이 들면 단지 꿈꾸고 있다고 믿었다. 마저도 꿈같았다.


아침이 오고 찾아올 줄 아는 것들이 달아나것들을 더더욱 잡아둘 계는 없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나의 일이 아님에도, 어떻게든 달아나는 것들을 기억하는 방법으로는 가장 알맞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진기로 가장 완벽하게 찍어내는 것보다 어색하 종이를 긁으며 새겨내는 방법이. 예쁘다. 세상에서 가장. 초승달이 뜨는 것 같은 눈썹과 그 아래로 뜨는 별 같은 눈. 거기서 활짝 웃으렴. 


를 참 많이 괴롭혔던 게 있다면 전화기랄까. 어느 날 누가 서운하다고. 눈동자가 그대로 떨어지는 것처럼 커다란 물방울을 뱉어내는 것처럼 울었다. 떨어진 눈물이  바닥에서 다시 튀어 오를 것처럼. 쏟아지는 장마보다 또렷하게.  


뭐 그런 걸로 우냐고. 번거로운 짜증이 났다. 뭐 그런 걸로 서운하냐고. 나는 내 생각도 없냐고, 시간도 없냐고. 그냥 늦잠 좀 잘 수도 있는 거고, 일이 밀릴 수도 있는 거고, 그냥 피곤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말들이 나에게 돌아오고 있을 때, 다시 보지 못할 거라는 상실에 대한 예보와, 상실이라는 단어가 이별이라는 단어와 점점 닮아서 물들어갈 때. 그것을 바라보고 있을 때. 이제 분간이 가지 않을 때. 앞으로 다가와 마주 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떨리지는 않았다. 호함도 그로 인한 불안도 아닌 너무나 사실이 충실히 그림으로 이행되고 있었다. 리의 여백이었다.


귀퉁이에 이름을 적어 넣음으로써 그림완성된다.  이름을 쓰고 돌아서면 효력이 성립되는 해지 계약처럼. 다만 이름을 쓰지 않고 갔으므로 인을 알지만 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었다. 때문에 이것은 너의 그림도 나의 그림도 아니다. 액자에도 어디에도 어울릴 수 없었다. 이름을 쓰지 않은 네가 그것을 잘 알고 있어서 렇게 했다고 생각했다.


문자를 보냈다. 느낌표는 어느샌가 둘 사이에서 사라졌다. 이 점점 짧아지고 그만큼 내가 더 많이 말을 해야만 할 것 같고, 말을 하고, 끊을게- 라는 말 대신 말없이 그만큼 간격이 보이는 것은 너무나 사실이었다. 보고 싶다, 라는 말은 못 하고 이제 오후 세시가 될 거 오늘 나는 서운해서 울었다. 누군가 눈물이 많았던 이유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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