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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뎁씨 Jan 24. 2020

초코칩 쿠키


손바닥이 넘치도록 크고 두툼한 초코칩 쿠키


칩 한 알 한 알이 손톱만 하고


아몬드가루가 이빨 사이로 스며


그날. 초코칩 쿠키


입속. 가득. 고소함. 틈없이.



기억이 난다


백화점 1층의 청과물 마트 앞에 


청록색 간판의 작은 카페가 있고


엄마는  그 작은 카페에


그때 과자 한 봉지 300원할일텐데


한 개에 천원이 넘던 커다란 초코칩 쿠키를 하나 시켜서


퉁퉁한 여직원이 오븐에서 한번 더 데워와서


갈색 냅킨 한 장에 올려서 


웃으며 작은 손에 쥐어주 그 카페에


혼자 앉혀놓고


엉성한 장바구니 사이로 쓸려갔다


쿠키를 다 먹을 때쯤에는 오겠지


그보다


쿠키를 다 먹고 나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


쫓아내지 않을


또 시켜먹으려면 돈이 있어야 할 텐데


얼굴만큼 컸던 쿠키 하나가 시간보다 빠르게 사라지던


체크무늬 반바지 하얀 티츠 입은 어떤 아이


쿠키를 다 먹고는 메뉴판에


밀싹을 갈아서 넣었다는 스무디는 무슨 맛이지


저 웅징거리는 기계는 무슨 주스를 만들어내는 거지


맞은편 테이블에 뚱뚱한 대머리 아저씨는 점박이 셔츠 단추를 풀어헤치고 늘어지게 자카르타 포스트를 읽. 재떨이에 담배가 몇 개.


아이보리와 회백색 무늬가 정신없는 타일 바닥을 내려다본다. 다리를 그네를 태운다. 엄마는 언제 왔을까 그날이 고아가 되려던 날이었겠지 아마.


.


눈이 맺히려는 검은 하늘이 뜬 날에


빛보다 사람이 빠르게 걸어 길이 어지러운


카페 2층. 창가.


검은 머리


검은 롱 패딩 


검은 운동화


뒷모습


모든 것이 펭귄이지. 예쁘지. 떠오르지. 너무나 많이 스쳐가지. 보고 싶지.


그것이 기억나는 마지막이었지.


따듯한 핫초코를 양손으로 


붙잡고 


앉아있으면


사라지는 


핫초코


의 입김 속으로


초코칩 쿠키가 생각이 난다


아주 연한 카페라떼와 잘 어울렸을 텐데


밀크티라도


그냥 우유에라도 


푹 담기면 좋았을 텐데


그것만 조금 슬펐다




말라진 머스킷이 느껴지는 다르질링 홍차


 마멀레이드 향이 스치는 폭신한 마들렌


쌍계사 풍경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적적한 녹차


복작이는 종로 낙원상가 떡집의 바람떡, 


늦잠을 푸질러 잔 오전 11시의 콜롬비아 수프리모 싱글 오리진 커피


손끝에서 입으로 사라지는 글레이즈드 도넛. 


초코칩 쿠키 말고도 어울리는 것들은 이렇게도 많은데. 나는 이제 우유도, 커피도 마시지 못하니까. 그러면 삶의 아름다움 1/3 정도를 어울리지 못하게 빼앗긴 느낌이려나.


기다리는 사람은 초코칩 쿠키 이후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고 떠나는 사람은 초코칩 쿠키 하나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고 결국 어느 쪽이든 짐이 되겠지 괜찮겠지 이제 손에 없는 초코칩 쿠키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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