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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렌 Mar 31. 2018

소름

눈을 뜨자마자 침대 맡의 컵을 들어 물을 한 모금 마신다. 물이 정신을 차리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일종의 의식으로서 행한다. 집을 나서면서 하늘이 어스름하게 밝아오는 것을 본다. 매일 조금씩 조금씩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할 만큼씩만 더 밝아지고 있다.


아침마다 가던 카페 앞에 와서는 조금 망설이다 근처 다른 카페로 향한다. 요즘은 익숙함을 피해 새로운 카페를 찾아다니는 중이다. 커피를 마시며 일기를 쓰고 글을 읽는다. 집중해 있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훌쩍 지난다. 마음 먹은 출근 시간이 다가올 수록 더욱더 글에 붙잡혀 있는다.


일하는 시간은 대체로 지루한 줄을 모른다. 그것이 재미있어서라기 보다는 집중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이어서이다. 이따금 밥을 먹거나 물 한 잔을 위해서 일어나는 것을 빼면 자리에 계속 앉아있는다. 어쩌면 나는 앉아있지만 앉아있지 않다고도 할 수 있다. 하루가 어둑어둑해질 시간이 되어 정신이 돌아온다. 그리곤 문득 소름이 끼치는 것이다. 나는 무엇에 내 정신을 쏟아내었던 것일까.


저녁에는 하기 싫은 일들이 있다. 책을 읽는다거나 영어 방송을 듣는다거나하는 무언가를 배우는 일들 말이다. 사실 이 시간쯤이면 나의 인내심은 바닥이 나 있기 때문에 즐거움 그 자체인 것들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흐름이 좋을때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고 토론을 하면서 또 다른 활력을 얻지만, 때로는 음악을 들으며 더 우울해져서는 혼자 방에서 기타 줄이나 튕기며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그 보다 안 좋을 때는, 게임에 빠져 남은 저녁시간을 삭제한다.


그리곤 다시 눈을 뜬다. 물을 한 모금 마신다. 어제보다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밝아진 하늘을 본다. 일기장에 글이 안써진다고 하소연한다. 정신은 다시 자리에서 떠난다. 그리고 어느날 문득, 내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소름이 끼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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