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견디기 어려운 고독과 격렬한 책임을 동반한다.
나와 에히리 프롬과의 첫 만남은 대학교 때였다.
우리 학교는 새로운 르네상스의 시대를 열자!라는 이념을 갖고 인문학을 굉장히 중요시했고
그에 필수 교양으로 배우는 수업에서 에히리프롬을 사랑의 기술에서 처음 만났다.
[사랑의 기술]은 한국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회자되는 책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책은 바로 [자유로부터의 도피]이다.
음, 제목부터 자유니 도피니 벌써 반항아 같은 게 마음에 들었다.
근데 이 제목을 자세히 보면 조금 이상하다.
자유로의 도피가 아닌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니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자유는 모두가 찾아 헤메이고 갈망하는 대상인데, 왜 자유로부터 도망을 가는거지?
그 물음표에서 시작해 나는 20대에 나만의 에히리프롬을 만났고,
자유가 주어진 30대 중반, 한 겨울의 스타벅스에서 2012년 에히리프롬을 다시 소환했다.
프롬은 자유는 인간에게 선물이자 부담이라고 내게 말했다.
인간은 자유를 갈망하지만, 막상 자유가 주어지면 실존적 불안을 느끼게 되고 그 책임의 무게에 압도당한다고 말이다.
'자유는 불안 그 자체구나.'
자유와 불안, 무질서함과 확장. 자유의 개념이 나에겐 엔트로피와 비슷한 개념으로 다가온다.
머리에 느낌표가 번뜩이는 순간이었다.
알고 있는 지식들이 나만의 경험과 이야기 속에서 재정립 되고 나의 삶에 의미와 깨달음으로 남는다.
우리는 사회의 Sterotype을 답답하다 여기고 이 곳을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어쩌면 자유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사회와 규범, 조직, 흔한 '보편'으로 도망가있던 게 아닐까.
퇴사. 나를 규정하는 타이틀이 사라지고 느끼는 해방감은 찰나였고, 그 자리를 대신 한 건 불안이었다.
자유와 불안이 함께 올 줄은 알았는데 이렇게 큰 패키지로 올 줄이야.
나를 설명하는 한 줄의 글, '출신, 학교, 회사'가 나의 삶에서 그 동안 의미하는 게 무엇이었을까.
에히리프롬은 그런 나에게 자유를 불안함 그 자체라고 말한다.
불안에 둘러 쌓여있던 나는 불안을 마주하기로 결심했다.
그제서야 나를 잠식할 것만 같았던 거대한 불안이 그저 항상 함께 있었던 당연한 불안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은 자유와 안정 그 어딘가에서의 균형의 문제인가.'
자유와 불안. 여기에서의 나는 어떻게 균형을 찾을 것인가?
자유가 주어진 나에게 남은 과제이다.
“자유란 개인의 고유성과 개성을 실현하는 것 그 이상이다.”
그렇기에, "자유는 견디기 어려운 고독과 격렬한 책임을 동반한다."
살면서 그런 위로가 있다. 원래 그런 거니까 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담백한 위로.
나는 에히리프롬을 통해 담담한 위로를 받고 또 불안한 하루를 담담히 버티는 힘을 얻는다.
나는 따뜻하지 않은데 따뜻한 그런 위로, 에히리프롬의 담백한 위로가 참 좋다.
참고. 자유로의 도피는 세계 2차대전과 나치즘의 배경에서 쓰여진 정치심리학의 책이다...
(작가는 위로하지 않았는데 나는 위로 받는 중. 모든 건은 해석하기 나름이라 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