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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가 내려앉기 전 재즈바에서 와인 마시기

비어있는 재즈바에서 나만의 사색 즐기기

by 데비안

일요일 아침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전기장판 아래에서 따뜻했던 몸이 금세 차가운 공기를 맞는다. 창문 밖 날씨는 매서웠다.


영하라는 날씨지만 오늘은 결혼식 때문에 외출을 해야 하는 날. 일요일 아침을 무엇으로 채우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욕조에 물을 받았다.


따뜻한 물에 몸을 녹이니 몸도 마음도 한껏 나른해진다. 욕조에 팔을 걸쳐놓고 핸드폰을 끄적인다. 쉽게 소모되는 것들에 더 이상 나의 관심을 뺏기지 말자 다짐했던 게 무색하게,

핸드폰은 나의 정신을 너무 쉽게 흐뜨러뜨린다.


'이 정도면 ADHD 아니니..'


욕조에 누워서 수십만 가지 생각을 하다가 고양이의 재촉에 몸을 일으켰다. 몸의 물기를 닦아 내고선 옷을 입고 고양이를 둘러멨다. 고롱고롱하는 예쁜 할아버지 고양이에 얼굴을 비비적거리며 포근함을 한 껏 즐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귀찮은 듯 애옹 성질을 낸다. 고양이를 내려놓으니 자기의 공간으로 피신한다. 나는 이어서 나들이 아닌 나들이 갈 생각에 혼자 여러 계획을 짠다.


'강남이니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알라딘도 가고, ZARA에서 쇼핑이나 해볼까? 아님 Jazz 들으러 가도 좋겠군. 북카페에서 책을 한참 읽어도 좋겠어.'


여러 저러 생각을 잔뜩 하면서 한껏 멋을 부려본다. 결혼식을 빙자한 나의 서울 혼자 놀기이다. 집 밖을 나서니 매서운 날씨에 옷을 잘못 선택했나 고민도 잠시 하고선 발걸음을 옮긴다.


결혼식은 반짝반짝한 신랑 신부의 예쁜 모습으로 끝이 났다. 결혼이란 무엇일까 한참 생각을 하다 식장을 나섰다. 낮보다 훅 추워진 날씨에 이대로 집을 갈 것인가, 나들이를 할 것인가 한차례 고민을 한다.



'그래도 예쁜 오늘의 나를 집에만 둘 순 없지!'


집에 가서 얼른 씻고 전기장판에 누워서 귤을 까먹고 싶은 마음을 예쁘게 차려입고 혼자 하는 나들이가 이겼다. 버스를 타고 알라딘 강남점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오는 알라딘엔 사람이 많았고 책장들을 지나다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책 제목과 표지가 마음이 들었는데, 책 제목은 ALONE이었다. 다음 주엔 이 책을 한껏 읽어봐야겠다.


친절한 직원 덕에 싱글벙글 웃으며 알라딘을 나섰다. 이제 다음 행선지를 정할 차례. 머릿속으로는 제법 치열한 고민을 이어갔다.


'핸드폰 배터리가 20%면... 집 갈 때 버스카드는 찍을 수 있으려나..?'


삼성페이로 모든 걸 해치우는 나에게 핸드폰 배터리가 떨어지면 나는 돈을 낯선 타인에게 빌려야 할 수준이었으나 치열한 머릿속과는 달리 내 발은 재즈바로 향했다. 머리 보다 발이 하고 싶은 걸 따라가는 그런 날로 해야겠다.


5층 입구에 도착하자 오늘의 공연은 저녁 8시부터 시작이라는 안내판이 서있다.


'2시간이나 기다릴 수 있을까? 그냥 집에 갈까?'


그런데 이번엔 내 손이 재즈바의 문을 연다. 오늘은 머리보다는 내 손과 발의 소리를 따르기로 한다. 예약을 하지 않아, 앉을 수 있는 자리는 뒤에 두 자리뿐이었다. 바 앞에 있는 뒷자리에 앉아서 텅 빈 무대와 좌석을 바라본다. 2시간 뒤에는 어떤 열기가 이곳을 가득 채울까. 2시간을 기다릴지 말지는 이후 나에게 맡기자며 메뉴판을 뒤적인다.


와인을 즐겨 마시는 나는 와인을 글라스로 시킬지 바틀로 시킬지 한 세월 고민을 하다가, 바틀을 시키면 영락없이 발이 묶일 것 같아 쇼비뇽블랑 한 잔을 시켰다.


'더 마시고 싶으면 또 주문하지 뭐.'


핸드폰은 내려두고 어두컴컴한 재즈바에 앉아 멍하니 무대를 바라본다. 리허설을 하는 것도 아닌데 스피커로 들리는 피아노 소리가 제법 생동감 넘친다. 내가 재즈를 만났던 순간, 좋아하게 된 순간들을 회상하다 보니 문뜩 나의 오늘이 너무 빠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 들었다고 느끼고 싶지 않은데, 매 순간을 이렇게 내 나이로 재단하고 있다니. 바보 같다 너도 참.'



흘러가는 시간들이 아쉬워 손으로 한 움큼 잡아보려 하지만 잡히지 않는 요즘이란 생각을 한다. 어둡지만 잊고 싶지 않은 이 마음을 남겨보겠다며 가방 속에 일기장을 꺼내고, 쇼비뇽 블랑을 한 모금 입에 머금는다.

산미가 도드라지지 않고 적당한 당도와 프루티 한 아로마가 청춘처럼 느껴진다. 탄닌감 넘치는 레드와는 달리 달큰 한 가벼움이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생각과 글쓰기 그리고 재즈바의 분위기와 음악을 오가다 보니 사람들이 제법 들어온다. 들어오는 사람 죄다 커플들이었는데, 오늘의 이 감성은 커플들의 데이트에 침범당하기 싫다는 생각이 든다.



'예쁜 데이트는 응원하지만, 오늘의 나는 혼자의 바이브가 좋아.'


가득 찰 이곳보다 비어 있는 이 순간으로 나를 채웠으니 재즈를 만나기 전에 집을 가기로 결심하고 재즈바를 나선다.


'재즈바에 와서 재즈 연주를 듣지 않고 가다니. 유별나지만 그래 그게 너지 뭐'


가벼운 코웃음을 흘리며 강남역 거리로 나섰다. 바쁜 사람들 사이에서 나만의 즐거운 고독.


나는 한껏 재즈에 취하는 것도 너무나 사랑하지만, 재즈가 내려앉기 전에 재즈바에서 혼자 와인 마시는 걸 매우 좋아한다.


오늘의 나의 취향 찾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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