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아직도 청춘인 어른들의 공간
평균 연령이 어쩌면 50은 거뜬히 넘는 것 같은 가맥집이었다. 꿈이라는 주제에 한껏 신이 난 우리는 이 흥을 이대로 마무리할 순 없다며, 2차 장소를 고민하다 '아마 거기쯤'이라는 두리뭉실 목적지를 정해놓고 길을 걸었다. 그러다 왜 인지 모르게 "이쪽으로 들어가 볼까?" 하며 운명적인 이끌림처럼 시장에 들어섰다.
나는 예상하거나 계획하지 않은 선택을 할 때, 그리고 그 선택이 탁월했을 때 아주 큰 쾌감을 얻는다. 오늘처럼 저장해 둔 맛집을 향해 길을 걷다가 별 이유 없이 이끌리는 곳에 가는 그런 선택이다. 기대하거나 예상하거나 상상하지 않은 새로운 경험을 여는 느낌이랄까. 바쁜 일상에서 항상 안정되고 보장되는 선택을 하다가 하는 소소한 일탈 정도가 되시겠다.
뭔가 운명적인 이끌림인 것 같았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려니 살짝 망설여진다. 들어갈까 말까. 가짜 레트로를 유행처럼 소비하는 곳은 아닐까 걱정도 한다.
'아니, 2차로 맥주 한 잔 더하러 가는 건데 뭘 그렇게 고민하는 거야. 악의 소굴이라도 될까 봐?'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난다. 2차 장소 하나 고르는 걸 이렇게 고심하고 있다니! 그렇게 시장의 작은 골목, 좁은 아스팔트 계단을 올라갔다.
'술 마시고 실수하면 인생 한 방이겠는데.'
문을 열자 우리는 깨달았다. 우리의 이 선택이 맞았다는 걸.
"평균 연령이.... 50대는 되겠는데..? 우리 그 머리털 난 애기들 같아.."
나는 가짜 레트로는 싫다. 한동안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며,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젊은 사람들에게 레트로가 소비될 때 나는 을지로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여긴 그냥 어른들의 비밀 장소 같았다. 화려하지 않은 안주들에 과자에 가벼운 술 한잔을 곁들이고 있는 어른들을 보며 괜한 위로를 받는다.
사회에서 언제부터인가 어리지 않은 나이가 되고,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이리저리 치이며 살기 십상이었는데.
내가 실수를 해도, "괜찮아 어릴 땐 넘어지면서 크는 거지! 안 다쳤어?"라고 나를 일으켜 주실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자리를 잡고 메뉴를 고민한다. 분명 배가 불렀는데 그래도 왠지 골뱅이 정도는 먹어야 할 것 같다. 골뱅이 소 12000원에 소면 추가 당첨. 그리고 술을 가지러 냉장고 문을 열었다. 빨간 뚜껑의 참이슬을 보고선 강인한 어른들의 세상... 임을 새삼 깨닫는다. 우린 대학생 때 추억, 참이슬과 카스를 꺼냈다.
"우리 학교 앞에서 그때!!!! 그때 기억나?"
"요즘은 낭만이 정말 없는 거 같아!!! 그때가 좋았어!!!"
어른들이 왜 한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또 하면서 그때를 추억하는지, 그 당시에는 낭만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왜 지나고서 그때의 낭만을 계속 찾는지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술 한잔하고 있자니, 생일 축하 노래가 들린다. 옆 테이블 이모(?)님이 생일이신가 보다. 구석에서 조용히 생일 축하를 전하며 박수를 친다. 케이크가 먹고 싶은 건 아닌데, 분명히 케이크를 나눠 줄 것 만 같은 예감이 든다. 이런 케이크는 나눠 먹어야 제맛이라며. 예감은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묻지는 않았지만... 오십몇 번째 생일이라고 하시며 케이크를 전해주신다.
케이크를 받고 있자니, 10년 전의 내가 진하게 떠올랐다. 대학생 때 자주 가던 술집들이 생각난다. 너도 친구 쟤도 친구 우리 모두가 친구가 되어 의기투합하던 그 시절. 생일에는 2차 호프집에 가서 케이크 초불기를 하는데, 술집에서 만난 친구들 덕에 케이크를 집에 가지고 들어간 적은 많지 않았다.
우리 테이블에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즐거운 릴레이처럼 옆테이블에서도, 옆옆 테이블에서도 그렇게 함께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었고, 고맙다며 그 케이크를 함께 나누었다. 그게 우리의 청춘이었다.
인현 시장 어딘가에서 만난 가맥집에서 우린 20대 추억을 다시 만났고, 낯선 이에게 생일 축하를 건네었고 그리고 다디단 케이크 한 조각을 받았다. 참 따뜻한 시간이었다.
나는 우연히 들어선 을지로 어딘가에 있는 가맥집이 참 좋다. 그곳은 나이가 들어도 들지 않아도 여전히 모두가 청춘인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