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생각에 잠긴다. 베를린의 하늘을...
그 당시 나의 얼어붙은 정신과 육체를 파고들었던 그 맑고 성스러운 노래가
무슨 노래였는지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그것은 아마도 굳어버린 영혼까지 생명을 불어넣는 옛날 찬송가임이 틀림없으리라.
나는 그 이후로 다시는 그런 노래를 듣지 못했다.
나는 향기로운 숲 속, 푹신한 이끼 위에 누워 나른한 팔다리를 쭉 펴고, 초록 잎들 사이로 끝없이 펼쳐진 푸르른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생각에 잠긴다. 베를린의 하늘을...
나의 기억이란 것은 마치 엄청난 파도에서 빠져나와 아직도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과도 같다. 내가 확실히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베를린 돔[Berliner Dom]에서 울려 퍼지는 천상의 소리라 하겠다. 물론 전에도 천사들은 천상의 소리를 내게 들려줬을 테지만 말이다.
비 오는 10월 어느 날이었던가? 독일의 날씨가 그러했겠지만, 뺨이 너무나 차게 느껴진 날이었다. 두꺼운 외투를 걸쳤는데도 불구하고 오싹오싹 몸이 떨리고 추웠다. 아니면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내 마음속에 무엇인가가 그 천사의 소리에 대해 좀 더 귀를 기울이도록 재촉한것 같다. 마치 나의 내부에서 새로운 생명이 싹터 내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기분처럼. 그 소리가 어디에서 들리는 소리인지 관리인에게 물었더니, 관리인은 성당 안에서 부르는 성가대 노랫소리라고 했다. 그 당시 나의 얼어붙은 정신과 육체를 파고들었던 그 맑고 성스러운 노래가 무슨 노래였는지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그것은 아마도 굳어버린 영혼까지 생명을 불어넣는 옛날 찬송가임에 틀림없으리라. 나는 그 후 다시는 그런 노래를 듣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도 베토벤의 아다지오나, 안드레아스 숄의 독일 바로크 가곡이라던지, 베를린 필의 교향곡 연주를 들을 때면 그때 그 천상의 소리가 내 영혼 속으로 스며들어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만 같다.
나의 눈에 비친 베를린 대성당은 독일의 역사만큼이나 지극히 모순적이다. 국가사회주의에 무릎을 꿇었던 나라에, 국민적 정체성이나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그렇게 심한 어려움을 겪은 나라에 어찌 이다지도 낭만적이고 화려한 성당이 있는 것일까?
낭만적? 화려함? 이런 단어들은 이 성당을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으면 우중충한 베를린 하늘에 가려, 빗물이 스며들어 어딘가에 이끼가 끼어, 당장이라도 곰팡내가 날 것 같은 검게 그을린 외벽에 가려 찾아볼 수가 없다. 하지만 돔 꼭대기에는 금빛 십자가가 있고, 돔의 끝자락에는 하늘에서 금방 내려온 천사들이 앉아 있다. 우중충한 외벽과는 대조적으로 에멜랄드 빛으로 빛나고 있는 돔과 천사들, 성인들이 하늘의 축복을 찬양하고 있으며, 헬레니즘[Hellenism] 시대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나 안티오크[Antioch]의 장대함을 연상케 하는 새로운 경쾌함과 화려함, 따뜻함을 갖추고 있다.
일층과 이층은 이상하게 절단된 엔타블라처[Entablature]로 연결되어 있는 듯하고, 중앙 입구는 높고 긴 통로의 아치형 입구로 내부로 들어가지 않아도 예배당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옆으로 돌아가면 마치 고대 신전의 정면 형태를 연상케 해, 축제처럼 흥겹게 보이고 화려함과 움직임이 가득한 건물이 되기를 바랐던 것처럼 보인다.
엔타블라처[Entablature] :
고대 그리스, 로마 건축에서 기둥에 의해 떠받쳐지는 부분들을 총칭하는 용어로, 기둥의 윗부분에 수평으로 연결된 지붕을 덮는 장식 부분이다.
독일 제국주의에 입각한 빌헬름 제국 시대의 성당으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호엔촐러른[Hohenzollern] 가문의 중앙교회라는 역사적인 배경을 가진 탓일까? 성 베드로 성당을 모방하여, 한때는 "북쪽의 바티칸"이라는 야유를 받았지만, 고전주의니 네오클래식[Neoclassic]이니 하는 미술사적 양식을 무색하게 할 만큼, 베를린이라는 모순적인 도시에 온전히 흡수되어 보는 이들에게 야릇한 슬픔을 전해주는 것만 같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중세 성당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하늘의 영광을 연상시키기 위해 얼마나 신중히 보석과 금과 치장 벽토[stucco] 등으로 호화스러운 장관을 나타내려 했는가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내 취향으로 보면 이런 현란한 장식이 너무나 세속적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대의 교회나 성당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내가 절실한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너무나 많았지만, 애써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제단 위에는 촛불이 켜져 있고, 분향의 향기가 동량 속에 감도는 가운데, 오르간과 성가대의 선율이 나를 별세계로 인도하여 장엄한 미사에 참석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했을 정도이니...
치장 벽토[stucco] :
"스투코"라 불리는 건축물 실내 벽 마감재. 14세기 이탈리아에서 개발 되어 로마와 르네상스 시대에 많이 쓰였던 회반죽을 말한다. 굳고나면 딱딱해져서 건물의 방화성과 내구성을 높이고 아름답게 만든다.
거기에는 사방이 성경의 구절로 가득 차 있고, 그 위에는 음악을 연주하며 천상의 축복 속에서 여려 형태로 일렁이고 있는 천사들이 있다. 그 천사들은 설교단 위에도 머물러 있었으며, 113개의 관으로 된 파이프 오르간 위에도 있었다. 모든 것이 움직이고 춤을 추는 듯하였으며, 심지어는 벽조차 가만히 있지 않고 즐거운 리듬에 맞추어 흔들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 성당 안에는 "자연스러운" 것이나 "정상적인" 것은 전혀 없고, 또 그런 것을 의도하지도 않는 듯하다. 마치 보는 사람에게 천국의 영광을 미리 맛 보이기 위해 마련되어 있는 듯한 것처럼... 나는 내 나름의 규칙과 기준이 전혀 통하지 않는 별세계에 들어서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중세 초 미술에 맡겨졌던 단순한 역할, 즉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역할 이상으로 미술이 종교에 얼마나 많은 공헌을 했는지 짐작하겠지만, 글을 못 읽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심지어 너무 많이 읽은 사람들까지 설득하거나 개종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것 같다. 수많은 건축가와 화가, 조각가들이 성당을 보는 이로 하여금 압도할 만한 장관과 위용을 갖춘 웅대한 걸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소집이 되었을 것이다.
돔의 정상까지 잇는 270개의 계단은 냉기가 감돌고 을씨년스러워 보였지만, 정상까지 올라간 순간 둥근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햇살이 이리저리 춤추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광선은 너무나 밝아 쳐다볼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 빛은 마치 내 영혼 깊숙이 파고들어 내면에 있는 모든 것을 빛내고, 향기를 풍기고, 노래하고, 진동하는 것 같았다.
이런 것들이 베를린 대성당에 대한 기억들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베를린에서 스쳐간 얼굴과 눈빛이 떠오른다. 그 외에 정원과 연 초록빛 잔디와 오래된 귀중한 스테인드 글라스들... 대체로 이런 것들이 빛바랜 나의 처음 몇 페이지의 기억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들이다.